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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 바닷가 놀이터

by 무량화


엊그제 밤하늘에 둥두렷 떠있는 만월을 보았다.

달력을 보니 음력 이월 보름.

보름 무렵은 사리 때로 달의 인력이 가장 강해져 조수(潮水) 간만의 차가 아주 심한 때다.

갯마을에서 얼마나 살았다고 조금, 사리, 물때 헤아려가며 얼씨구나! 비닝봉지 하나 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물이 저만치까지 쭉 빠졌다.

바닷물이 제일 많이 빠진다는 사리 때라 미역 밭이나 다름없는 바위들이 마구 드러났다.

바다가 주는 무상의 선물이 질펀하게 깔려있었다.

누구라도 잠시 수고 보태면 자연산 미역을 얻어 갈 수 있는 거였다.

바닷물에 손을 집어넣고 미끈거리는 미역 줄기를 끊어 비닐봉지에 신나게 따넣었다.

흡착판같이 생긴 뿌리를 바위에 단단히 붙이고 거센 파도 견디며 자라난 미역.

과도 준비해 왔으면 한결 손쉬웠을 텐데 예리한 돌을 주워 미역줄기를 자르자니 영 어설펐다.

하기야 수렵채취 시대 원시인 도구로는 돌칼이 제격 아니겠나.

철썩이는 파도 소리 생음악 들으며 두어 시간 쭈그린 채 미역 따는 비바리 아닌 할망,

세월 잊고 나만의 샹그릴라에서 노닐다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기에 해변으로 나왔다.

덤으로, 바위 틈새에 달라붙어있던 참고동도 델꼬와 삶아서 삔침으로 빼 묵고...^^

이 놀이에 흠씬 취해 맥 빠지는 코로나 시국, 한 사나흘 또 살맛 나겠군.

물미역 말려 건미역 차곡차곡 쌓아뒀다가 혹시.... 어쩌면 미국행 뱅기표 살 수 있을지도.

이 미역이야말로 진짜 신뢰할 수 있는 오리지널 자연산이거든.

자연산 미역은 연안 앞바다 바위에 붙어서 자란 돌미역을 이르는 말.

수중에 떠도는 미역 포자가 자연스레 바윗돌에 붙어 성장한 미역이다.

마을 어업계에서는 포자가 잘 붙을 수 있도록 바위에 붙어있는 잡초를 제거하는 기세(바위 닦기) 작업을 해주므로 미역포자가 많이 붙어 자랄 수 있게끔 해준다고.

물살이 센 부산 기장 앞바다에서 자라는 미역은 큰 파도가 거칠게 칠 때마다 쉬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에 쫄깃거리는 차진 식감에다 맛이 좋기로 소문났다.

해서 예전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진상품이었다.


자연산 돌미역은 색깔이 짙은 데다 윤기가 있고 잎이 좁으면서 짧은 편이다.


미국에서 돌아와 부산에 거처를 잡으며 우연히 택한 이곳.


우연이라기보다는 사막에서 살았기에 바닷가 조용한 곳을 찾았으며 지하철이 닿는 지역이라 서슴없이 정한 곳이다.


시간 널너리한 은퇴자라 지하철을 타고 부산 골목골목을 훑어볼 작정이었다.


부산에서 근 이십 년을 살았지만 못 가본 장소가 많아 이참에 샅샅이 누벼볼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자리 잡은 이곳은 기장이 바로 이웃이고 건넛동네가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 배경지인 학리마을인 일광이다.



달음산 푸른 품에 넉넉히 감싸 안겨 앞마당은 동해 포구 청정해역인 해 뜨는 고을.

새로운 환경이라서 작년 내내 진기한 놀이터로 삼았던 갯가 풍경이다.

바다와 5분 거리라 별장 삼아 지냈던 거처는 밤이면 이슬 내리는 소리라도 들릴 듯 고요했다.

동으로 나아가면 다시마 산지인 이동마을이 나오고 서구풍의 카페 로드가 이어진다.

맞은편 바다 건너는 학리 포구, 대대로 갯마을 터전에 의지해 온 어촌이다.

해변에 내려가 동쪽으로 가면 방파제가 있고 미역 양식장이 펼쳐졌으며 해녀들은 전복을 딴다.

서쪽으로는 호수같이 잔잔하고 얕은 바다, 거기서 주민들은 미역이며 참고동 홍합을 건진다.

군소라는 이름의 흉측하게 생긴 해물을 처음 본 것도 여기인데 제상에도 오르는 귀물이란다.

음력 보름 무렵이면 사리 때라 하여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시기로 바다가 주는 무상의 선물이 질펀했다.


만조 때 바다에 내려가면 해변 가장자리에서 미역과 까사리도 조금씩 채취할 수 있었다.

자급자족한 찬거리로 저녁상 만들어 놓고 흠흠 흐뭇해하며 미역국을 떠먹으면 동해 바다가 그 맛 속에 그득 담겨 있었다.

누구라도 조금의 수고만 보태면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할 수 있기에 사나흘은 조히 바다에 가서 엎드려 살다시피 했었다.

철썩대는 파도 소리 생음악 들으며 세월 잊고 나만의 별천지에서 즐겼던 시간들.

신이 나서 매일 따다가 널어놓은 물미역들로 집안에는 미역 냄새가 배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날마다 원시인 흉내만 내는 건 아니고 바둑돌 산지인 바닷가에서 수석을 찾기도 했으며
주변 갈맷길 따라 무진무진 걷다가 고리원자력 앞까지 당도한 적도 있었다.

대중교통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니 왕복 길 걸어야 했으므로 결국 녹초가 되었지만.

마스크 착용하지 않아도 괜찮은 야외라 아무튼 쾌청한 날이면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인근 마을마다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따라서 집 근처야 물론 어디에 근사한 노거수가 서있는지 해신당은 어디짬 있는지 무리 진 갯메꽃 나리꽃 해당화 피는 장소도 일 년 지내는 동안 빠삭하게 꿰었다.

솔은 가슴섶이나마 해수욕장 펼쳐져 여름내 파도와 태양의 파티가 열리던 곳,

물론 코로나 정국으로 비치파라솔 대신 지난해는 가족단위 피서객이 친 텐트만 드문드문.

부산 시내와 연결된 지하철이 있어 교통 편리하면서도 아직은 시골 느낌 물씬한 지역이다.

그런가 하면 고산의 자취 남아있으며 소설가 난계의 흔적 짙게 스며 문화 향훈에도 젖을 수 있는 곳.



흔히 정이월 유달스레 찬바람은 옷섶으로 파고든다 하였다.

꽃샘추위도 만만찮은 때로 정이월에 큰독 터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그러나 갯마을 정이월은 완연한 봄으로 날씨가 온화했다.

해풍도 부드러웠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니 여러 대중 모이는 장소를 기피하는 세월, 대신 탁 트인 공간인 바다로 사람들이 꽤 찾아온다.

바닷바람도 쏘이지만 바다 내용을 좀 아는 이들은 바위에 올라 미역을 따고 톳, 파래, 까사리를 채취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놀이가 얼마나 재미진진한지 갯바위에 찰박대는 물결소리 들으며 바닷물 휘적이노라면 세상만사 다 잊게 된다.

그 순간은 럭셔리한 리조트에서 즐기는 요트놀이 못잖은(해본 적 없지만) 행복감으로 천상낙원 부럽지가 않다.

말 그대로 시간을 맘껏 엔죠이하며 이번 물때엔 주로 까사리를 따모았다.

갯바위에 지천인 까사리, 아예 군락지다.



까나리는 홍조류로 바위에 바짝 붙어서 사는 데 까시리(풀가사리), 까막살이(까막살), 진도바리(진두발), 개내이(갯냉이)라고도 불린다.

속이 훤하게 비치는 얕은 수심의 청정해역 갯바위에서 자라는 까사리는 오돌오돌하며 까슬까슬한 해초다.

비벼도 먹고 국으로도 먹고 무치거나 볶기도 하며 전으로 굽기도 하는 데다 비빔밥처럼 각종 음식에 고명으로 얹어 먹을 수도 있는 까사리라는데.

전에 부산에서 십수 년 살았어도 미역이나 파래, 김, 톳만 알지 그 외는 듣도보도 못한 초대면 까사리다.

통영에서는 여러가지 국에 넣어 먹는다고 하며 전라도 해안지역에서는 파래랑 말려 자반으로 먹는다고 한다.

전설같이 흐릿한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양식을 늘리려고 해초를 뜯어다 죽을 끓이거나 밀가루 범벅을 해 먹으며 끼니 겨우 때우게 해 주었다는 까사리.




비닐봉지 가득 따온 까사리로 난생처음 먹어보는 까사리무침과 김칫국을 끓여봤다.

이웃이 들려준 요리법 설명만으론 고개가 갸우뚱, 검색 결과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끓인 김칫국.

우뭇가사리가 그러하듯 까사리를 김칫국에 넣어 끓이니 원 형체가 사라지며 국물이 젤리처럼 변했다.

오래 끓일수록 점도가 높아지는 특이한 까사리, 개운한 맛으로 먹는 김칫국인데 국물이 걸쭉해지니 내 입맛엔 별로였다.

우뭇가사리는 끓여서 우무묵인 한천의 주원료로 쓰이듯, 까사리 역시 센 발음이라 그렇지 같은 과(科)인 게 분명했다.

가벼운 기분으로 살구꽃 피는 마을에 앉아 '살구꽃이 필 때면~~'노래 따라서 흥얼거리며 어깨 흔들흔들했더랬는데......

창가에 활짝 폈던 살구꽃 이파리 벌써 지고 도로변 벚꽃 하롱하롱 봄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육칠십 대나 기억할까.

여자애들이 깡총깡총 뛰면서 고무줄 놀이할 때 부르던 노래다.

꽃고무신에 노란 호박단 저고리 옷고름 날려가며 단발머리 나풀거리던 아이가 이제 왕할머니 됐다.

IMF때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안겨준 박찬호와 박세리처럼, 세계적 재앙인

코비드로 뒤숭숭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 건 미스터트롯 한바탕 신나는 무대였다.

뽕짝으로 불리던 트로트는 왜색이란 주홍글씨가 달린 데다 간드러지거나 청승 떠는 곡조에 가사까지 차량 맞아 싫었다.

헌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내동 외면했던 트로트의 재발견이랄까.

리듬과 창법도 다양한 데다 무엇보다 흥겹고 신명 나게 놀이판처럼 즐기는 젊은이들의 끼가 볼만했다.

그중에서도 기가 막히게 휘돌아 꺾이는 이찬원 노래는 차지고도 맛깔스러워, 코비드로 축 처진 기분을 잠시나마 업시켜줬다.

구성지게 불러제끼는 진또배기로 무대를 장악한 순둥이 같은 유기농 미소는 찬원이의 트레이드 마크다.

해맑아 구김살 없는 표정이 마냥 귀엽게 보였던 건 우리 손주하고 같은 나이의 대학생이라서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지도.

찬원이 노래는 바깥세상의 시름을 잊고 어깨 들썩이게 만드는 흥꾼으로의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냈다.

찬원이가 노래한 진또배기는 실시간 검색어로 떠오르기도 했다,



영동지방에서 솟대를 가리키는 방언으로 보통 마을어귀 높다란 장대 위에 목조각 오리가 서있는 게 진또배기다.

새는 천상계와 지상을 이어주는 수호신 되어 마을의 평안과 풍년에 대한 염원을 실은 토속신앙의 상징으로 마을을 지켜준다.

집에서 삼십 분쯤 가면 학리 포구가 기다리는데 그 길목에 늙은 홰나무가 지키는 오래된 해신당이 있다.

기우뚱 낡은 기와채를 페인트로 화장시켜 놓음으로 옛스런 멋을 잃은 해신당인데 집뒤 고목 나뭇가지가 마치 솟대 같다.

음력 2월 초하룻날부터 스무날 사이에 갯마을에서는 해마다 이 자리에서 풍신제(風神祭)를 지냈다건만.

바람 거느린 영등(靈登) 할미가 심술을 피면 살림 말짱 도루묵이라, 험한 바다 바라보고 사는 어촌에서는 꽹과리 치며 울긋불긋

오색깃발 내세운 영등굿판 벌여 한해동안 뱃길의 무사안녕을 빌었다.

폭풍우 피해를 면하게 도와주고 집안에 만복 내려주길 기원하는 마을굿이었다.

코로나로 난리굿판인 세상이라 올핸 무형문화재라는 동해안 영등굿판 구경하긴 애진작에 글렀다.

대신 산책 삼아 날마다 다녀오는 바닷가에서 세찬 파도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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