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도에 따라 그 하루 일정이 정해진다.
바다로 갈 것인지 산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미술관 같은 실내로 향할 것인지.
그날은 하늘 꾸므레하나 대기가 맑아 서쪽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한림에 있는 월령리, 해안가 따라 풍력발전 바람개비 돌고 선인장 떼 지어 군락 이룬 마을이다.
드넓은 태평양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열대지방으로부터 둥실 떠밀려온 선인장이 자생하는 야생 군락지다.
손바닥 선인장 꽃 진 다음 붉은 열매 백년초 거느리고, 해안가 바위틈과 부락 돌담 사이 곳곳에 퍼져 산다.
오직 한국에 하나뿐인 선인장 자생지로 일대가 천연기념물 제429호로 지정돼 있다.
막 집을 나서려는 참에 도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쪽 일출봉 지나 종달리 세화리 해안길을 걸어보려는데 함께 가겠느냐고 물었다.
이름이 사랑스러워 언제이고 가보려던 마을이 종달리다.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당장 흔쾌히 동행을 결정했다.
하도리 카페가 이어진 해변에서다.
날씨 쾌청하다면 바닷빛 환상적이겠으나 그럴 때 다시 찾으면 되므로 아쉬울 거 없어 두 팔 내저으며 설렁설렁 걸어갔다.
해변 끼고 걸으며 바다 건너 우도를 배경으로 잔잔히 펼쳐진 풍경들을 즐겼다.
문득 딸내미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이 사진, 바다를 배경으로 한 램프 아래 널빤지에 앉아 그루밍 삼매경에 빠진 까만 냥이.
한참 전, 딸내미가 LA로 떠나 처음 독립된 개체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입양한 냥이도 새카맣다.
뉴저지에서 아기 길냥이 두 마리를 거두어 민종이 & 턱시도라 부르더니 이번엔 만불이란 이름을 달아주었다.
그러니까 벌써 20년 가까이 된 세월이다.
별명이 철학자이던 점잖은 만불이도 그새 늙어 치매기가 왔다는데 그마저 귀엽다니 숫제 냥이에 중독된 집사다.
그 녀석 외에도 친구가 맡겨 키우게 된 살구와 조카가 키우다가 대학가며 놔둔 부시까지 있다.
작년에 이미 떠나보낸 요요, 하루는 딸내미가 하얀 너울 쓴 고양이가 무지개 위에 올라앉은 사진을 보내왔다.
샘이 많은만치 스트레스 자주 받던 요요는 만불이보다 나이가 적은데도 이처럼 먼저 무지개 다릴 건넜던 것.
어디서건 고양이를 만나면 그래서 자동적으로 딸내미가 생각난다.
거기서 얼마쯤 더 걷자 별방진이라는 성곽이 나타났다.
역사 유적지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눈 초롱해지는 지라, 의외의 만남이 생광스러워 넓고 긴 성 안팎 찬찬히 살폈다.
걸핏하면 노략질하러 나타나곤 하는 왜구에 대비해 축성했다는 성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었다.
단단하게 쌓은 두터운 성벽 아래 들꽃 함빡 펴 해맑은 표정으로 한들한들 반겼다.
성 너머 마을 안쪽으로는 뜻밖에도 백년초 열매 단 선인장이 밭 가득 그들먹했다.
서쪽 월령리 대신 오게 된 이곳인데 선인장 군락지라니.
사람은 감동을 먹고 산다지 않던가, 의외의 풍경이 준비돼 있음에 감격해 마지않으며 감탄사 안으로 쟁였다.
그래서 선물 그 자체인 삶의 어느 하루 일기는 감사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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