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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30. 2024

아무도 노래 부르지 않았다

몇 년 전 앙코르와트에 간 적이 있다.

원한다 하여 수시로 가질 수 있는 여행 여건이 아닌지라 기회가 주어져 여행 목적지를 선택할 때면 신중해진다.

아름다운 휴양지며 빼어나게 장엄한 자연경관이나 불가사의로 일컬어지는 지역도 물론 가고 싶다.


지만, 가장 흥미롭게 관심을 끄는 우선 순번 첫째가 역사기행이다.

한국 나간 김에 잠시 막간을 이용, 여행을 준비하며 앙코르와트와 서안을 두고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고른 곳이 앙코르였다.

밀림 깊이 파묻혀있던 석조 문화의 진수인 앙코르와트,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그곳 이야기는 진작에 여기저기다 썼지만, 관광지 주변에 진을 친 외다리 장애인의 구걸 장면은 언급지 않았다.

다리를 잃은 장애인은 청장년은 물론 킬링필드의 참화를 몸으로 겪은 세대가 아닌 눈 해맑은 어린이들에게도 꽤 있었다.   

앙코르 사원 가는 길목에 있던, 외국 재단이 지원하는 대규모 어린이 병원이 세워져야 할 정도로 흔한 장애아들.

피아간 서로를 죽이려고 도처에 묻어두고 난리가 끝난 다음에도 제거하지 않은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었다는데,

여전히 땅속에 묻혀있는 지뢰가 무수하다는 그곳이다.

영화를 통해서도 보았다시피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20세기 최대 비극의 현장, 이에 관해 다들 보고 들어 알고 있는 바이리라.

1975년 정권을 잡은 크메르 루주(Khmer Rouges:붉은 크메르) 군은 1979년까지 통치하는 동안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200만 명을 학살했다.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는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군이 저지른 학살행위에 의해 죽은 시신들을 한꺼번에 묻은 집단 매장지라고 백과사전은 설명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아예 더미로 쌓여있는 백골탑도 당시 여행 코스에 들어있었다.



그 이전, 한국이 전쟁을 치르던 1950년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에 쌀을 지원할 정도로 먹고살기 어렵지 않은 안정된 나라였다.

그러나 한 국가가 오늘날 어떻게 최빈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다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
현재 대한민국에 흐르는 이상 징후에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유학지 파리에서 폴 포트는 당시 유럽 지식인 층에 만연된 이념인 사회주의에 심취, 공산당에 가입한다.

말수 적고 조용하나 편집증적 과대망상자였던 폴 포트는 비유하자면 강남좌파에 속하는 금수저 출신이었다.

프랑스에 의해 조종되는 군주제 아래서 고통받는 민중을 해방시켜 캄보디아에 유토피아를 실현하려는 일에 착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60년대부터 충성스러운 측근을 배치해 두고 치밀한 준비 끝에 밀림 지역 원주민을 포섭, 불온한 혁명사상으로 채워진 열혈 투사를 비밀리에 키워냈다.

마침내 1975년 4월 17일 새벽, 야행성동물처럼 크메르 루주군은 도 프놈펜을 접수한다.

바로 그 전날 프놈펜에서 미 해병대가 미대사관을 떠났으며 세계가 캄보디아를 포기하자마자 그들 세상이 도래하게 된 것.

중국에서 눈여겨본 문화혁명을 본떠 도시 소개령을 내려 농촌 강제 이주가 시작되었으니, 가족해체 비극이 도처에서 생겨났다.

그때부터 캄보디아 전역은 생지옥으로 변해갔다.

폴 포트는 앙코르 와트 문명을 이상형으로 삼았다.

과거의 옛 영화를 재현시켜 8백 년 전 석기시대로 되돌아가게 되기를 그는 처음엔 꿈꿔왔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현실 밖의, 말 그대로 이상향일 따름.

그의 사상에 반하는 지식인과 지주층을 조직적으로 제거, 즉결처분했다.

인민들이나 최측근까지도 혁명에 방해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살해했다.

그는 한마디로 혁명에 미쳐 야수가 된 침묵의 살인마였다.    

1970년대라면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고 대구에서 아이 키우며 살 때인데 지구 한쪽에선 이런 참상이 일상화되었다니....  

폴 포트 정권이 프놈펜에 입성하자 시민들은 처음엔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하지만 그 후 더 이상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라는  마지막  내레이션은 긴 침묵 끝에 문자로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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