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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한라산 아래 연둣빛 메밀밭
by
무량화
Sep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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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추의 푸르른 하늘 아래 자태 한층 또렷한 한라산.
어딘가 나서보라고 창천이 유혹하나 한시에 수업이 있으니 시간이 애매하다.
어중간하지만 그 막간을 이용할 수 있는 장소를 찾다 보니 효돈과 머잖은 신례리라면 괜찮지 싶다.
서둘러 메밀꽃 축제 중인 산간동로 쪽 신례리 공동목장으로 향했다.
메밀꽃을 만나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호흡 가빠지며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풍광 떠올리자니 감흥으로 벅차올랐다.
봄철 벚꽃 장관 이루는 이승악 오르는 길목 신례리 공동목장에 오늘은 메밀꽃이 서설(瑞雪)내린 듯 뽀얗다.
흐드러졌다고 표현하긴 뭣하지만 한라산이 배경으로 받쳐줘 와우! 감탄사 터졌다.
달빛 내린 듯, 소금 뿌린 듯, 하다는 메밀밭 서정적이긴 하나 가벼운 맘으로 청추의 맑고 푸른 공기 즐겨봄도 좋지 않으랴.
달빛 흥건한 산길이라는 정감 어린 배경 아닌 들 어떠랴.
딸랑거리는 나귀의 방울소리 흘러 다니지 않은들 어떠랴.
단지 하얀 메밀꽃이 주는 서정적 분위기에 젖어보면 될 따름.
그랬다.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의 명문들이 바위에 각인시킨 듯 뇌리에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가는 조붓한 산길.
장돌뱅이 일행은 허생원과 조선달 그리고 동이다.
붉은 대궁에 흰꽃 가득 핀 채로 나부끼는 메밀꽃은 허리께까지 차올라 남실거린다.
갓 보름이 지난 달빛은 푸르스름하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교과서에서 처음 이 글을 읽으며 메밀꽃 향에 스르르 그냥 취해 들었더랬는데.
하늘거리며 순한 풀 내음 같은 향기 풀어낼 거만 같은 느낌.
고향인 충청도 외갓집에서도 작으나마 콩밭 귀퉁이에다 메밀 농사도 지었다.
잔치 때 청포묵을 쑤기도 하였지만 메밀 자체가 차고 껍질 서늘해서 베갯속으로 최고였기 때문이다.
메밀은 성질이 찬 식품이라 어쩌다 여름철 별미로 메밀 소바를 먹긴 하나 즐기진 않는 편이다.
소음인에 깡마른 체질과는 궁합이 맞지 않아서다.
그와는 별개로 소설 영향인지 메밀꽃 명소는 일부러 때맞춰 찾아다닌다.
몇 년 전 봉평에서 본 메밀꽃은 새하얀 데다 대궁은 붉고 키가 컸다.
그에 비해 바람 거친 제주 메밀은 기후와 토질 달라서인지 작은 키에 연두 대궁이다.
이모작 농사라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제주에서는 모밀, 모멀이라 부르는 메밀.
봉평에 메밀밭이 많다지만 전국 최대 메밀 주산지로 알려진 제주이기도 하다.
메밀은 화산석 투성이인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다.
제주 지역의 토속음식인 '빙떡'은 제사상에도 오르는 데 떡 치고는 좀 특이하다.
메밀가루 반죽을 프라이팬에 얇게 부쳐서 그 안에 무채 살짝 볶아낸 소를 넣어 돌돌 말아낸 빙떡의 맛은?
주재료인 메밀이나 무 본성이 그러하듯 맛이 워낙 심심해서 니맛도 내맛도 아닌 밍밍한 맛이 매력이랄까.
그 맛은 여리여리 가녀린 메밀꽃과 대조되는, 강건하고 담박한 제주인의 성정과도 닮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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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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