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별자리를 만든다(순례길)

마음을 깨우는 길

by 시안블루



어제는 흙먼지처럼 털어내고,
내일은 바람 속에 잠겨 있다

지금의 길만 바라보며 걷자,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내 안의 나'를 만났다



새벽에,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며

짐 싸는 소리에 잠이 깼다.


오늘은 서둘러 짐을 싸고

나설 필요가 없었다.


전망대에서 부르고스 도시를

한눈에 둘러보고 싶어,

새벽에 길을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립 알베르게는 아침 8시에

체크아웃해야 하며,

이틀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오전 8시 가까이 되자

불이 하나둘씩 꺼졌고 ,


나는 짐을 싸고 8시가 다 되어서야

깜깜한 숙소에서 나왔다.


부르고스 아침은 상쾌했고,

맑고 푸르렀다.


전망대에 오르니,

도시 전체가 한눈에 보였다.


부르고스는 그동안의 피로를 풀고,

역사적인 마을을 만끽할 만큼

충분히 매력이 있는 도시였다.


단연 부르고스 대성당은

햇살에 더욱 빛나고 있었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단체관광객이 많아졌다.


부르고스는 순례 여정의 중요한 중간 지점이다.


'육체의 순례가 끝나고,

영혼의 순례가 시작되는 문'이기 때문이다.


문 뒤에 위치한 대성당과 알베르게는

안식과 재충전을 위한 장소이다.


산타마리아 문의 파사드에는

부르고스의 상징적인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특히, 스페인의 국민 영웅이자 부르고스 출신인

엘 시드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어,

이 도시의 역사적 기념비 역할을 한다.


산타마리아 문은,

하나의 여정을 마치고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는 문턱이었다.


산타마리아 문을 통과하는 것은

순례자들에게 여정의 큰 성취를 의미한다.


길은 다시 열리고,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부르고스부터 레온까지는

카르티야 이 레온 구간이다.


끝없이 밀밭이 이어지는

지루하고 고독한 메세타 구간이다.


부르고스부터는 새로운 순례길이 시작된다.


그전까지는 걷는 순례자들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다양해졌다.


자전거를 타고 메세타 지역을

빠르게 벗어나는 순례자들,


이 구간을 점프해서

레온부터 걷는 순례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순례길 중 가장 고난의 지역,

바로 메세타 구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많은 순례자들이 부르고스에서

하루 더 묵으면서 피로를 풀었다.


나는 아쉬웠지만 하루 더 묵지 않고,

걷고 싶어 길을 나섰다.


오늘은 출발이 늦은 만큼

대략 11킬로미터 떨어진,

타르다호스까지만 걸을 예정이다.

순례길에서 20킬로 이상을 걷는 환경에

내 몸은 조금씩 적응되고 있었다.


내 몸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

조금이라도 무릎, 발목, 그리고 뒤꿈치가

조금이라도 신호가 오는 것 같으면,


다음 일정을 조정해서 무리하지 않았다.


육체적 고통에서 조금은 해방되는 것 같았다.


도시의 건물들이 하나둘 뒤로 물러나고,

나는 다시 순례자가 되었다.


부르고스를 벗어나자

길은 다시 조용해졌다.


오직 바람과 내 숨소리만이

길 위에 남았다.


타르다호스로 향하는 길은 평탄했지만,

마음은 묘하게 낯설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순례자의 삶은 단순했다.


오늘 얼마나 걷고 어디에 묵으며

무엇을 먹을지만 생각하면 되었다.


그래서 생각이 명료해진다.


그동안 하루하루 여행에만 집중하느라,

고국에 두고 온 걱정이

어느 순간부터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매일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어제의 무게도
내일의 두려움도
내려놓고,

'바로 지금'만 생각하니,
비로소,

마음이 고요해졌다.

하루에 충실한 삶,
그것이 까미노였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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