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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Mar 29. 2022

휠체어를 타고 달리는 남자

상황 회피형 인간으로 살지 않기



#1.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달리기를 하고 출근하는 게 습관이 됐다. 평일·주말 할 것 없이 비가 오지 않으면 밖에 나가서 달린다.

'인싸'들이 쓴다는 '나이키 런' 어플을 자연스럽게 켜서 달리는 나 자신이 제법 인싸같이 느껴지기도 한다.(뿌-듯^^)

사실 나는 혼자 달린다.. (출처: 나이키 런 클럽)


사실 처음부터 달릴 생각은 없었다.

달리는 걸 별로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출근하는 것도 힘든데 굳이 이른 아침부터

달리기로 몸을 혹사시킬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한가로운 주말 오전,  

브런치 앱을 켜서 이런저런 글을 읽다가

알고리즘에 이끌려 우연히 어떤 작가님의 글을 읽게 됐다.

'현존을 위한 달리기'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달리기를 싫어하셨다던 작가님은 '달리면서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말씀하셨다.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육체적 고통 자체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음(현존)을 느끼게 해주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당시 시간을 물쓰듯 낭비하며 살던 나는,

뭐 하나 끈덕지게 못하고 매번 작심삼일만 반복하며 무기력증에 빠지는 스스로에게

이골이 났던 나는,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2. 나, 살아있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징조라더니..

처음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에 나가는 건 더 힘들었다.

(이때 침대 안에서 인생의 고뇌란 고뇌는 다 겪은 것 같다.^^)


큰맘 먹고 나가서 달리기 시작하면

새로운 고통이 찾아왔다.

평소에 꿈쩍도 안 하다가 갑자기 달리려니

숨이 찼고, 무릎과 다리도 아팠다.

처음 며칠은 심한 근육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달리기 전과 달릴 때는 그렇게 고통스럽더니

달리기를 끝낸 후 해가 뜨는 아침 풍경을 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성취감만족감 밀려왔다.

내가 한 거라곤 아침 일찍 일어나 고작 30분 달린 것뿐인데, 마치 엄청난 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 분 더 자보겠다고 침대에 누워 뒤척이는 대신 밖으로 나와서 뛰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작가님이 말한 대로 달리기는 정말로 '현존'을 가능케 했다.

그렇게 나는 달리기에 완전히 푹 빠져 들었다.



#3. 열정적인 아침과 무기력한 밤



아침에 달리다 보면 온갖 생산적인 아이디어떠오른다.  

머릿속에 브런치에 올릴 글감이 수북이 쌓이고, 기발한 사업 아이템도 넘쳐난다.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의욕이 샘솟는다.


'오늘도 생산적인 아침이군!'


혼자 흡족해하며 집으로 돌아와 출근 준비를 하고 활기차게 집을 나선다.

'오늘 하루도 파이팅!!!!'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현실을 마주한다.


최대한 긍정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하려고

노력하고 자기 암시를 해봐도 한계가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솔직히 회사 일은 재미없다.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공부해야 할 것도 가봐야 할 곳도 너무 많은데,

머릿속에 쌓인 글감도 얼른 세상에 내보내고 싶은데,

현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8시간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내 시간은 기껏해야 내 일상의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회사를 때려치울 용기조차 없는 나는 내가 놓인 상황 탓만 하며

퇴근 후의 시간을 무기력하게 흘려보내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열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아침과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밤의 연속이다.




#4. 휠체어를 타고 달리는 남자




비록 내 밤은 무기력할지언정 아침만은 활기차게 시작하기 위해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오늘은 부쩍 따듯해진 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들으며 신나게 달렸다.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며 달리고 있는데

휠체어를 탄 어떤 남성분이 열심히 바퀴를 굴리며 내 옆을 유유히 지나가는 게 아니겠는가?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휠체어를 타고 열심히 달리시는 남성분

휠체어를 탄 그 남성분은

벚꽃엔딩을 들으며 뛰는 둥 마는 둥 설렁설렁 뛰는 나를 가볍게 앞질렀다.

휠체어 바퀴를 굴리는 그분의 두 팔은

내 튼튼한 두 다리보다 빨랐다.


나를 앞질러 가며 점점 멀어져 가는 그를 보니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휠체어를 사용하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움직임이 제한되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휠체어 때문에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휠체어는 오히려 자유를 주지요. 휠체어가 없다면 저는 침대를 떠날 수도, 집을 나설 수도 없을 테니까요."

- <아주 작은 습관의 힘>中-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다가올 수 있는 그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뿐히 뛰어넘는 그분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퇴근 후의 시간을 무기력하게 흘려보내는 것을 전부 회사 탓으로 여기며 불평·불만만 늘어놓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5. 상황 회피형 인간  



휠체어 바퀴를 열심히 굴리며 힘차게 달리는 그를 보면서 얼마 전 나를 달리기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작가님의 블로그에서 본 '상황 회피형 인간'에 대한 글을 떠올렸다.  


상황 회피형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황 회피형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고 싶지만 사회 정세 등에 비추어 현실적으로 곤란하기 때문에 이내 포기하는 사람'을 말한다. 어떤 일이건 현실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자신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런데 상황 회피형 인간은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빠르게 이해하고 그 점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그 결과 자신이 바라는 목표가 무모하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쉽게 포기한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간절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다르게 반응한다. 어려움 앞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진지하게 공부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다.


어떤 상황이건 나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자. 그 편이 더 좋다. 바라는 바가 있어도 쉽게 포기하는 사람과 다시금 용기를 내어 시작하는 사람과의 차이가 바로 이런 믿음에서 시작된다. 큰 성과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과 좌절을 거듭하는 사람, 평범한 사람의 차이가 바로 그러하다.




그렇다. 나는 명백한 상황 회피형 인간다.

겉으로는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사실 나는 그동안 끊임없이 상황 탓, 주변 탓하며 살아왔다.

내가 무기력한 건 회사가 내 시간과 자유를 전부 빼앗아 가기 때문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건 회사에서 시킨 일만 하느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틀렸다.

모든 건 내 선택의 결과이,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휠체어를 타고 달리는 남자분을 본 순간,

나는 더 이상 남은 인생을

상황 회피형 인간으로 살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나를 유유히 앞지른 그분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벚꽃엔딩 대신 빠른 비트의 노래를 틀고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보니 올해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고 페이스(5분 35초)를 기록했다.


달리기 시작한 이후 최고 기록 달성..!


앞으로 힘든 일이 닥치거나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너무 힘들어서 남 상황 탓을 하고 싶어질 때,

휠체어를 타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던 그분을 떠올리며 다시 힘차게 달릴 수 있길.


흡사 라라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새벽 풍경
달리기를 마친 후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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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core-cure/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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