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아이 혈관을 도무지 찾을 수 없어 수없이 주사 바늘로 찌르기만 하고 정작 뇌 MRI 촬영에는 실패했었다(https://brunch.co.kr/@anotherphase/42). 하지만 그냥 그렇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언젠가 꼭 성공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이가 왜 더디게 자라는지 알아야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치료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입원 기간 동안 한국에서 첫 손에 꼽히는 병원들에 문의를 넣었고, 그중 한 곳에 예약을 잡아두었다. 단 이번에는 주사가 아니라 먹는 마취약을 쓰고 싶다고 강조했다.
막내처럼 어린아이들에게 먹는 마취약을 쓰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했다. 너무 어려서 독한 약을 쓸 수 없으므로, 사실 말이 ‘마취’약이지 실상은 수면을 조금 더 유지시켜 주는 약에 가까웠다. 즉, 병원에서 주는 약을 아이가 뱉지 않고 잘 삼킨다 해도, 그것 먹고 곧바로 곯아떨어지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아기가 잠들기 직전에 약을 먹이고, 촬영실 근처에서 재우는 데 성공해야 한다. 그렇다는 건 아이가 막 졸려워서 애쓰는 시간에 딱 맞게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 전날부터 아이가 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되, 너무 자지는 못하게 시간을 정교하게 조정하고, 또 병원에 오기 전까지 아무리 졸려워해도 잠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모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까다로운 조건인지.
그래도 우리에게는 도전해 볼 만한 일이었다. 막내가 집, 즉 충주에 있었다면, 딱 졸려워할 시간에 서울에 있는 병원에 도착한다는 걸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지난번에는 주사로 마취하는 방법을 택해 그 고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아이와 아내가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출발지와 도착지가 모두 서울이었다. 내비로 찍어보니 두 병원은 30~40분 거리에 있었다. 어떻게든 차 안에서 놀아주면 아이를 깨워둘 만한 시간이다. 특히 나는 아이랑 놀아주는 데에 자신이 넘치는 아빠였다.
촬영 예약 시간은 점심이 조금 넘은 2시였다. 입원 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는 12시~1시 사이에 낮잠을 자곤 했다. 즉 버티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2시는 아이가 매우 졸려워할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여유롭게 오전 일찍 충주에서 출발해 점심쯤 재활 병원에 도착했다. 그동안 아내는 아이가 오전 수업을 받으면서 지나치게 피곤해하지 않으면서 또 지나치게 느슨해지지 않도록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었다. 수업 내용까지 조정할 수는 없었으니 중간중간 주는 간식으로 긴장의 끈을 죄고 있었다. 너무 배부르면 식곤증이 올 것이고, 너무 배고프면 날카로워질 것이니, 딱 적당한 양만 먹이면서 잠들지 않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까지 적당히 먹이고 1시에 길을 나섰다. 길이 막히는지 40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내비는 예고했다. 그런데 막내는 이미 졸려웠다. 차에 타자마자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카시트에 앉히면 곧바로 잠들 태세였다. 평소 같았으면 잽싸게 재웠을 텐데, 그래서 조금은 평화로운 드라이빙을 즐겼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뒷자리에서 아이와 같이 타고 아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아내는 스스로를 카레이서로 부를 정도로 속도감 있는 운전을 하는 편으로, 본인보다 10년 먼저 면허를 따 이제는 유치한 속도감보다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우선시하게 된 남편의 완숙한 운전 스타일을 매우 답답해했다. 이렇게 급하게 어디로 가야 하는 날 건방지게도 대선배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못했다. 게다가 차 뒷좌석에서 아이를 40분 동안 정신없게 만드는 것도 여자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중노동이었다.
아내는 막힌 서울 대로들을 지그재그로 달렸다. 그렇지만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시간 단축이 된 건 아니었다. 핸들 운영은 분주했는데, 내비의 시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뒤에서 나는 아이가 어떻게든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느라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먼저는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자고 싶어 칭얼거리던 막내는 잠시 정신이 팔렸다. 장난감을 쥐고서 신기한 듯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집중 시간이 길지는 못했다. 금방 싫증이 난 아이는 장난감을 바닥에 던지고서는 다시 뒤로 벌러덩 누웠다. 재우라는 제스처였다.
몇 가지 다른 장난감들로 2차, 3차 시도를 했지만 이미 꺼진 아이의 관심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입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 눈앞에서 얼굴을 돌리고 도리도리 까꿍을 하고 숨바꼭질을 하면서 왁! 욱! 껙! 꾹! 까!와 같은 소리들을(아니, 비명들을) 냈다. 제발 아빠에게 시선을 돌리고 잠을 깨라,라는 부탁에 가까웠다. 몇 가지 소리가 아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이가 헤에 하고 웃기 시작했다. 오, 통한다, 통한다, 아내가 앞을 보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왁욱껙꾹까를 반복하며 신명 나게 뒷자리에서 푸닥거리를 이어갔다. 땀이 슬슬 나기 시작했고, 아이의 웃음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벌써 질렸나 싶어 얼른 시간을 확인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출발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고 있었다. 장난감과 ‘아빠 장난’이라는 비장의 아이템을 썼는데도 10분을 채 못 보낸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시간의 흐름이 더욱 더디게만 느껴졌다. 땀이 삐질삐질 나면서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가, 뭘 더 해야 하는가... 열기를 식힐 겸, 여유를 좀 찾을 겸, 창문을 살짝 열었다. 살짝 열린 사이로 바람이 휙 들어오는데, 그게 꽤 강렬했다. 더운 날, 차도 속도를 못 내는데 그 바람이 왜 그렇게 강력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바람이 아이 얼굴을 직격 했고, 아이가 상반신을 들썩들썩할 정도로 즐거워했다.
오, 횡재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아이를 깨워둘 수 있게 됐다. 나는 창문을 내렸다 올렸다 하면서 아이가 바람을 맞을 수 있게 했다. 아이가 반응을 보였다. 창문 쪽으로 가까이 가고 싶어 했다. 창문을 잡고 아이가 설 수 있도록 했다. 아이가 바람을 맞으면서, 열린 창문 사이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꺄아 꺄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잠이 확 달아난 눈치였다. 아이의 웃음소리에 긴장이 풀렸다. 이대로 쭉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제발 이렇게만 있어다오,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아내도 백미러로 힐끗 뒤쪽을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내의 마음도 나와 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발... 이렇게만...
앞으로 25분 정도 남았다고 내비에 표시돼 있었다. 하지만 나나 아이의 집중력이 25분이나 유지될 리 없었다. 나도 어느새 창문 조작을 기계적으로 하고 있었고, 아이의 웃음도 잦아들고 있었다. 갑자기 아내가 “여보!”하고 다급하게 외쳤다. 막내를 확인하니 창문에 시선을 둔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고개를 까닥까닥하면서 조는 게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으려 했다. 아내가 이번에는 앙칼진 버전의 “여보!”를 외쳤다. 아, 맞다. 깨워야지. 아이를 흔들었다. “잠들면 안 돼! 일어나!”
아이가 화들짝 눈을 떴다. 잠이 잠깐 들었던 듯했다. 아이가 졸린 눈 너머로 상황을 살피려는 듯 앞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다시 꾸벅 고개를 떨궜다. “잠들면 안 돼! 일어나!” 나는 아이를 위로 번쩍번쩍 올리며 헹가래를 쳤다. 아이가 다시 눈을 떴다. 막내는 원래 위로 던졌다 받는 놀이를 좋아한다. 내가 자기를 높이 올릴수록 기뻐한다. 아이 셋이 다 그랬다. 나는 아이 저글링 선수다. 하지만 여기는 자동차 안. 막내를 던질 수 있는 높이는 극히 한정적이다. 아이에게 평소의 즐거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는 한두 번 기대에 찬 눈치로 잠을 쫓는 듯하더니, 이내 싱거움을 느끼고 졸려했다.
내가 얼마나 “잠들면 안 돼!”를 외쳤는지 앞에서 아내가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애랑 할 게 없어? 왜 계속 똑같은 것만 하고 똑같은 말만 해? 내가 다 졸릴 지경이네.” 그러더니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막내야, 엄마 어딨 게?” 그러더니 순간 얼굴을 뒤로 확 돌렸다가 다시 앞을 봤다. 아이가 엄마 얼굴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니 놀랐다. 아내가 그 행동을 반복하면서 아이가 잠시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운전자가 20분 넘게 그렇게 운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목에도 상당한 부담이 가는 동작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까 한 거였다. 차 안은 어색하게 조용해졌다.
나도 위기를 맞았다. 막내를 깨워야 하는데, 나도 졸렵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차에 엉덩이만 붙이면 잠드는 체질이었다. 내비를 확인하니 아직 한 15분 남았다.
“여보. 우리 15분 정도는 재워도 되지 않을까? 어설프게 잠들다 깨면 더 졸렵잖아?”
“절대 안 돼. 이번 예약 어렵게 잡은 거야. 혹시 잠이 깨기라도 하면 낭패야.”
“아... 15분이면 잠 안 깨.”
“안 돼. 당신도 자지 마. 다들 일어나, 얼른!”
남은 15분 동안 아이와 나는 비몽사몽 끌어안았다가, 창문으로 얼굴을 반쯤 내밀었다가, 장난감을 던지고 받았다가, 왁욱껙꾹까를 여러 번 외치면서 필사적으로 일어나 있으려 노력했다. 그 사이사이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아이는 여지없이 까무룩 졸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나는 전우를 살리는 군인처럼 “일어나! 잠들면 안 돼!”를 외쳤다. 하지만 지금도 그 15분의 기억은 선명하지 않고, 뭔가 뿌옇다. 그 시간의 더딤 역시 감각적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1분 1초가 그렇게 느렸던 적은 내 삶에 없었다.
주차장에서부터 나와 아내는 촬영실까지 내달렸고, 미리 준비된 마취약을 아이는 무사히 삼켰다. 그리고 촬영실 옆에 마련된 작은 방에 우리 가족은 전부 들어가 소등했다. 완전히 깜깜한 공간에서, 막내는 기절한 듯 뻗어버렸다. 미동도 없었다. 새근새근 코 고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리고 고대하던 뇌 MRI를 찍는 데 드디어 성공했다. 오랜만에 성취감이 느껴질 정도로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