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밝혀진 병

by Moon

어렵게 뇌파 검사를 마치고 약 한 달이 지난 시점, 우리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결과를 듣기 위해서였다.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잠을 못 이룰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우리는 아이를 있는 그 자체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결과도 상관이 없었다. 나의 지식 부족도 도움이 됐다. 최악의 경우를 아무리 상상해 보려 해도, 아는 게 없으니 머릿속 시나리오는 늘 빈곤했다. 빈곤하니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바보가 왜 감기에 걸리지 않는지 궁금하면 나라는 사람과 몇 분만 이야기 나누면 된다.


병원으로 가면서 나와 아내가 바라던 건 ‘제발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좋겠다’가 아니었다. ‘제발 이번에는 시원하게 답을 들었으면 좋겠다’였다. 병원들을 다니며 우리는 단 한 번도 명쾌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늘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기만 한 ‘가능성’의 사슬들 속에 점점 엉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현대 의학의 한계에 봉착한 것이 자명해 보였는데, 의사들은 그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검사 끝나면 저 검사 권해주고, 저 검사 끝나면 또 다른 검사를 언급하는 것의 반복. 질병의 뿌리에 도달하려는 노력이고, 그러므로 반드시 지나야 하는 절차였기 때문에 의사들이나 의학 분야를 원망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결과 없이 반복되기만 하는 검사의 과정 자체에 지쳤었던 것이다.


새벽부터 충주에서 출발해 서울의 교통 체증을 뚫고 병원에 도착했고,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긴장도 되지 않고 기대감도 없으니 졸려웠다. 발달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의 부모가 맞나 싶을 정도의 느슨함이 스스로 우스웠다. 그럴 때면 대기실에 있는 다른 아이들을 본다. 막내와 비슷해 보이는 아이들도 있고, 더 아파 보이거나 멀쩡해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너희들, 일반 소아과에서 봤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아이들과 여기 아이들이 분출하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걸 알고 있으니 나오는 소원이다.


‘특수’나 ‘특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여기 아이들이, 일반 소아과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과 다른 점은 눈 마주침이다. 일반 소아과에 첫째나 둘째를 데리고 갈 때면, 기다리고 있는 동안 대기실의 다른 아이들과 눈 인사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끔은 말을 섞을 때도 있다. 통통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내 다리에 부딪힐 때 귀엽게 수그리며 사과하는 아이도 있고, 엄마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다가도 내가 ‘그거 뭐니?’하고 물으면 자기 캐릭터 자랑하는 아이도 있다. 내가 어지간히 신기하게 생겼는지 멀리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눈 마주치면 배시시 웃는 녀석들도 가끔 있다. 어떤 경우든 ‘눈을 마주칠 줄 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막내도 그렇지만 이 특수 병원 분과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 눈을 마주칠 줄 아는 아이들은 드물다. 이런 형태로나 저런 형태로 부모와만 꼭 붙어서 다른 이와 소통하는 법을 아직 익히지 못한 존재들이다. 내가 나의 시선으로 아무리 아이들의 눈을 더듬어 찾아도 올려다보지 않는다.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그 눈빛에서 ‘속이 꽉 찼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무언가 공허하다. 그 빈 공간을 채우려 여기 부모들은 인생을 투자하고 있을 것이다. 난 몇 시간, 몇 킬로미터, 몇 그램을 더 보충해야 할까. 우리 막내 뇌 속에 그것들이 도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안고 궁둥이를 토닥이면서 나는 아이 귀에다 대고 ‘사랑해’를 여러 번 넣어줬다. 내가 아는 건 이것뿐이다.


차례가 되어 진찰실로 들어갔더니 뇌 사진 두 개가 붙어 있었다. 하나는 우리 아이의 것, 다른 하나는 정상 아이의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가운데를 탁 짚으시면서 “여기가 문제였네”라고 진단하셨다. 가만히 보니 정상 뇌에는 없는, 희끄무레한 점들이 보였다. MRI가 아니었다면 흔한 사진 노이즈 아닌가 반문했을 정도로 사소해 보였다. 아니었다. “회백질이 퍼지질 않았어요. 원래 가운데 있다가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뇌 바깥쪽으로 퍼져야 하는데, 자녀분의 경우 아직 가운데에 조금 남아 있어요.”


그러면서 선생님은 설명을 대략 이어가셨다. 회백질이 뉴런의 신호 전달에 중요한 것이며, 그게 제대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신호 체계가 엉키므로 당연히 신체를 움직이거나 뇌를 쓰는 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대 의학으로는 이 회백질의 위치를 바꿀 수 없다고도 못을 박았다. 약을 쓸 수도, 수술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회백질 이소성이라고 하는데, 흔히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에요. 자료도 많이 없어요.”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린 것일까. 일단 여러 번 반복된 검사 후 모처럼 진단다운 진단이 나왔고, 심지어 병명까지다 나왔으니, 마음 한 편으로는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현대 의학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수확이 적지 않았다. 이제 온갖 진찰과 검사와 작별하고 재활에만 전념하면 되겠다 싶었다. 아니었다. 선생님은 끝을 선언하지 않았다. “회백질 이소성은 결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지, 이유가 아니에요. 우리는 이유를 찾아야 하죠. 회백질 이소성이 왜 나타나는지를 한 번 더 검사해서 알아내야 해요. 유전자 검사를 할 테니 예약 잡아놓고 가세요.”


또 검사라니! 유전자 검사하고서 뭔가 나와도 또 그 이유를 찾겠다며 검사하려나. 이 검사의 굴레는 언제 끝날까. 힘이 탁 풀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날 막내와 나, 아내가 피를 뽑아 제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채혈을 위해 따로 상경하지 않아도 되었고, 6개월 뒤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올 때까지 내방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좀 아쉬웠지만, 그만큼 병원에서 깊이 파헤쳐볼 계획이라니 이해할 수 있었다. 셋은 피를 뽑힌 채 6개월 동안 오지 않을 병원을 나섰다.


재활을 하다 보니 6개월은 눈 깜짝할 새 흘렀다. 병원에 가는 날이 당도했다. 익숙한 고속도로를 지나, 익숙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익숙한 분위기의 대기실에 도착했다. 익숙한 문을 지나, 익숙한 선생님 앞에 앉았다. 선생님은 아이를 계속 주시했다. 당시 아이는 옹알이도 하지 못하고 소리만 꺅꺅 지르던 때였다. 그 소리 지르는 것에 선생님은 주목하셨다.

“소리를 좀 많이 지르네요?”

“네, 요즘 좀 그래요.”

“역시...”

‘역시?’


뜸을 들이시던 선생님은 컴퓨터 화면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우리 부부에게 설명을 시작하셨다. “드디어 찾았어요. 염색체 쪽에 문제가 있었어. 염색체라는 게 대단히 정교한 순서로 정리돼 있는데, 그중에 아주 작은 것 하나가 바뀌어 있었어요. 엄청나게 많은 톱니바퀴가 맞물려서 돌아가는 게 뇌라면, 이 아이는 톱니바퀴 딱 하나가 잘못된 거예요.”

“그게... 없나요?”

“아냐. 있긴 있어요. 톱니바퀴가 아닌 다른 게 있어서 그렇지. 비어 있는 것보다는 나은데, 그래도 톱니바퀴가 아니니까 삐걱대면서 돌아갈 수밖에 없죠. 그래서 느리고, 뭔가 다른 거야.”


그러면서 선생님은 혼잣말처럼 이렇게 외쳤다. “원인을 알게 되니까 이제 속이 좀 시원하네.” 그건 의학자로서 한 말이었다. 못내 아이의 상황이 궁금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서는 곧바로 의사로서, 나와 아내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위로였다. 그 선생님 방식의 위로.

“이건 누구 잘못도 아니에요. 돌연변이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요.” 시선은 여전히 컴퓨터 화면을 향한 채였고, 말투는 빠른 편이었다. 그분의 의료 행위 중 상당히 껄끄러운 지점을 지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병을 탐구하고, 의학 지식을 쌓고,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 방법을 택하는 데에는 능숙하지만 유독 낯 간지럽게 위로하는 데 약한 유형인 것이 눈에 보였다. 유전자 검사 후 많은 부모들이 서로를 탓하며 원망하고 결국 갈라서기까지 한다는데, 그걸 염두에 둔 말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속사포처럼 저 짧은 위로를 끝낸 선생님은 곧바로 조언을 이어갔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우리가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설명을 보충하려는 것이었다. “이 아이와 비슷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200명도 되지 않아요. 2015년에 처음 관련 논문이 발표됐을 정도로 새로운 케이스죠. 아직 연구 중이고, 우리도 그래서 아이가 어떻게 될지 잘 몰라요. 병명도 따로 없을 정도죠. 의학 코드만 있고. 다만 그 200명도 안 되는 환자들의 경우 폭력성과 비만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고 해요. 아까 소리 막 지르는 것도 연관이 있을 거야. 그런데 그건 어렸을 때부터 잘 가르치면 완화될 수 있다고 봐요. 먹는 것도 식단 조절하면 비만을 피할 수 있고.”


쓴 약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음식은 다 잘 먹는 우리 슈퍼스타 둥글둥글 퉁퉁이가 왜 그런 무난한 식성을 가졌는지 납득이 됐다. 요 근래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도 떠올랐다. 선생님의 위로는 어설펐지만, 가이드라인은 가장 실용적이었다. 의학자들이 병에 대해 더 밝힐 때까지 시간이 한참 걸릴 테지만, 그동안 우리가 뭘 주의해야 할지가 분명해졌다. 아이를 안고 궁둥이를 토닥이면서 나는 아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둥둥아. 너 내일부터 다이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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