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도 주마등이 보이더라

by Moon

난 내 첫걸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기억력이라는 면에서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첫 발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게 가능할 리 없다. 대신 우리에게는 다른 기억들이 있다. 처음 학교란 곳에 입학했을 때 낯선 분위기 속에서 줄을 서 있던 기억, 처음 부모님 집을 나섰던 기억, 처음 내 통장에 내 힘으로 번 돈이 입금됐을 때의 기억, 처음 몰았던 자동차, 그 옆에 처음 태웠던 사람에 대한 기억... 사람의 삶은 온갖 첫걸음들로 점철돼 있다. 새록히 기억할 수 있는 그 수많은 걸음들이 우리를 일으키고, 다시 걷게 하고, 앞으로 달리게 한다.


우리 막내도 자기의 첫걸음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우리 가족에겐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막내가 커서 자기 첫걸음을 기억한다는 건,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유전자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기억력을 선물했거나,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이 날 정도로 너무 늦게 걸음을 익혔다거나. 전자의 가능성은 없다시피 하고, 후자의 가능성은 농후한 상황에서, 아이가 자기 걸음을 망각한다는 건 그만큼 일찍 걸었다는 뜻이 된다. 한 때 인생 최대 목표였던 걸음이라는 행위가 어느덧 아이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걸음으로부터 아이는 차곡차곡 자신의 첫걸음들을 쌓아갈 것이다. 병원 밖에서 처음 자기 또래들을 만나고, 친구 집에 처음으로 놀러 가고, 처음 우리 품에서 벗어나 자기의 꿈을 좇고, 막내 이름으로 판 도장으로 첫 통장을 개설하고, 어쩌면 내가 젊은 날 몰았던 차를 타고 처음 면허증도 따고, 그 옆에 누군가를 처음 태우고... 그 아이의 인생도 그렇게 평범한 기억들로 채워져 가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란다. 모든 부모가 그럴 것이다. 죽는 순간 주마등처럼 펼쳐진다는 기억들을, 부모는 희망이라는 형태로 살아있는 아이들 눈 속에서 매일, 이르게 본다.


아이가 먼 병원에 있어 그 눈을 매일 볼 수 없었던 나는 다른 곳에서 그 ‘이른 주마등’을 찾아야 했다. 시대가 좋아 동영상이나 영상 통화 따위로 제법 해결이 됐다. 병원 생활에 익숙해지고 그곳 보호자들과 친해진 아내가, 점점 영상을 드물게 보내고 영상통화마저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게 유일한 문제였다. 그래서 난 같은 영상을 보고 또 보며 질리지 않는 마음을 갖추게 됐다. 덩달아 막내 영상을 수도 없이 본 첫째와 둘째는, 영상에 녹음된 모든 소리들을 순서대로 외우기까지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막내 영상을 옆에 틀어놓은 채 일하고 있었다. 갑자기 카톡이 울렸다. 모처럼 아내가 동영상을 보냈다는 걸 알고 부리나케 전화기 화면을 켰다. 순간 세상이 진공상태로 변했다. 숨이 턱 막혔다. 그러다 주변이 조용해졌고, 그 어떤 소리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공기의 농도가 높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농도가 높아 책상에 앉은 채로 자맥질을 하면 내 몸이 떠오를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정말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앞으로 영원히 질리지 않을 영상이 하나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막내가 첫걸음을 내디뎠던 것이다.


물론 오로지 자기 두 발의 힘으로만 걷는 건 아니었다. 아이용 걸음 보조기를 두 손으로 꼭 붙들고 있는 상태였고, 허리에 힘을 더 받으라고 복대 비슷한 띠가 팽팽히 조여져 있었다. 다리의 힘으로 서 있다기보다 보조기를 붙들고 있는 팔힘으로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 몸은 심하게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언제 고꾸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각도였다. 하지만 고꾸라지지 않았다. 막내는 아주 힘겹게, 그리고 아주 느리게, 첫 발을 떼고 바로 앞을 짚었다. 보조기를 두 팔로 밀었다. 약간 기우뚱했지만 버텼다. 뒷발을 앞으로 옮겼다. 다시 기우뚱했지만, 또 버텼다. 동시에 보조기를 앞으로 밀었다. 그렇게 세 걸음만큼 이동했다.


아내의 ‘우와!’하는 소리가 영상 배경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아내다웠다. 반면 나는 혼자 책상 앞에서 ‘억’하고 외마디 소리를 냈다. 숨을 급히 들이키니 나는 소리였다. 나다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억’ 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것으로 바뀌었다. 영상을 세 번 정도 본 후에야 내 뇌가 정보를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상황 파악이 된 것이다. 아이가 처음 걸었다는, 그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나는 둔하기 짝이 없었다. 나답지 않은 소리에 첫째와 둘째가 놀라 달려왔다. 시대가 좋아져 자초지종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버튼 한 번 눌렀을 뿐인데, 아이들도 복제한 듯 나와 똑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날 우리 셋은 틈만 나면 그 영상을 돌려봤다. 잠이 들 때까지 그랬다.


아이들과 흥분해서 영상을 본 뒤, 아내와 어렵게 통화가 연결됐다. 그런데 아내는 의외로 차분했다.

“걸은 거야? 드디어?”

“에이... 그 정도 가지고 아직 걸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아니, 뭐야 이 냉담한 반응은.”

“보조기 쓰고도 몇 걸음 못 걸어. 갈 길이 멀어.”

“그래도 이게 어디야!”

“맞아. 너무 좋아. 그래도 아직 걸은 건 아니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내도 신이 난 게 분명했다. 뜸했던 영상 보내기를 그다음 날부터 이어갔기 때문이다. 전부 아이가 서툴게 걷는, 각도만 달랐지 거의 비슷한 영상들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영상들이 우리 눈에는 충격적으로 다른 모습이었고, 폭발적인 성장의 기록이었다. 영상이 거듭되면서 아이가 사용하던 걸음 보조기가 스리슬쩍 사라졌다. 대신 선생님들이 아이의 허리만 받친 채 걷는 걸 도왔다. 아이가 잘 걸으라고 발 앞에 축구공 같은 걸 놓고 차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앞으로 기울어져 기우뚱 걷던 막내는, 허리를 점점 꼿꼿이 세우고, 발을 까불어 공도 차더니, 무릎을 폈다 접었다 들썩거리기까지 했다.


난 그 영상들을 시간 순서로 모아 목록으로 만들어 재생시켜 두었다. 시간에 따라 아이의 걸음걸이가 굳건해지는 게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 말대로 아직 걷는 건 아니지만, 그날이 가까워지고 있었음을 의심할 수 없었다. 여성분이 ‘저기요..’ 말만 걸었는데 남자는 이미 상상 속에서 그 여자와 손자를 보고 이름까지 짓고 있다는 농담이 있다. 막내를 보는 내가 그랬다. 아이는 보조기 붙잡고 섰을 뿐인데, 나는 이미 그 아이의 미래까지 보고 있었다. 영상을 틀어놓은 화면 위로, 나와 같이 뛰고, 캐치볼을 하고, 내 품으로 곧장 달려드는 막내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지나갔다.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도무지 일을 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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