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 집은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보다 추위가 더 이르게 찾아온다. 게다가 산자락에 있기 때문에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집 겨울 난방비는 도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다. 실직한 지 8개월 차에 접어든 아빠는 벌써부터 으슬으슬한 아침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옆에 자고 있는 세 살짜리 막내는 추위에 아직 취약하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부터 이때를 위해 기도해 왔다. 난방비를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다. 그랬더니 번역 의뢰가 하나 들어왔다. 확정된 건 아니었지만 대략의 액수가 이번 겨울을 날 정도는 됐다. 한 가지 걸리는 건, 의뢰를 준 회사가 10년 넘게 연을 맺어온 곳인데, 이곳도 영세하여 번역비가 항상 늦게 입금된다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6개월이나 지급이 지연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난방비로 쓸 이 번역비가 겨울 지난 다음이 오지 않도록 간구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됐는데,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번역비가 아니라 번역할 원고가 오지 않았다. 원래는 추석 전에 모든 원고를 받아 번역까지 마쳐 넘기는 스케줄이었다. 가스비를 충분히 쟁여둔, 풍성한 한가위를 맞는 게 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추석이 코앞인데도 내가 받은 원고는 1/4 분량뿐이었고, 또 다른 1/4이 추석 직전에 도착했다. 그래서 내 편에서는 총원고의 절반 정도만 완료해 추석 끝나고 넘길 수 있었다.
일이 되어가는 걸 보자니, 아무래도 불길했다. 이건 단순히 원고가 지연된다는 문제가 아니다. 원고가 지연된다는 건 원작자나 편집자(내 의뢰인) 사이에 의견 조율이 잘 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때문에 인쇄와 제본으로 마무리되는 전체 프로젝트 일자가 변경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가 된다. 번역가는 그 커다란 흐름 안의 일부이며, 보통 아무런 힘 없이 의뢰인들이 정하고 변경하는 기간에 떠밀려가야 한다. 지불 일자도 그 커다란 흐름 안에 포함돼 있고, 일이 이렇게 더뎌진다면 당연히 지불 일자가 미뤄질 것도 뻔한 일이었다.
(의뢰를 한 회사가 악의적으로 지불을 지연하거나 프로젝트 기한을 늘리는 건 아니다. 이 회사는 장인정신이 투철한 곳이라, 원작자의 원고를 있는 그대로 받아 작업하지 않는데, 그 때문에 저자와 의견 조율을 하느라 어마어마한 시간을 보낸다. 이번에도 번역가인 나한테 넘길 원고를 중간에서 손보느라 일이 늦어진 것이었다. 아마 내 번역도 꼼꼼히 볼 것인데, 다행히 나한테 원고가 넘어올 때쯤이면 정해진 프로젝트 기한을 상당히 많이 써버린 터라 큰 태클이 걸리지는 않는다.)
마음이 서서히 조급해졌다. 날이 빠르게 식어져 가고 해가 짧아지는 게 체감될수록 더했다. 8개월 동안 수많은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이 온 곳은 하나도 없었다. 매체를 창간하기도 했지만, 이제 막 시작한 인터넷 매체에 광고를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번역비가 유일한 수입이었는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아 약이 오른다. 주여, 우리 집 추운 거 아시지요? 이번 겨울을 따듯하게 나게 해 주세요. 내 기도는 갈수록 절박해졌다. 변하는 건 없었다.
나는 삐쳤다.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상했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답도 없고 신호도 없는 그분이 원망스러웠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이 기간에 한 달 1독도 완료했었다)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자는 것이었다. 한 작은 전문 분야 신문사였는데, 내가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산업에 속해있기도 했다. 드디어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나 싶었고, 날름 서울로 올라가 인터뷰를 치렀다. 가족들은 집에서 열렬히 기도했다. 내려오는 길에 난 합격을 의심치 않은 채 넉넉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군것질까지 했다.
연락이 오기로 한 날, 전화기는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가족들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난 절망했다. 그때 그 과자 사 먹지 말고 아낄 걸,부터 시작해 면접 때 내가 했던 말들을 하나하나 복기하면서 뭐가 잘못됐던 건지 추적했다. 아내는 분명히 ‘기쁨과 보람을 얻을 면접’이라는 응답을 받았다고 했는데, 불합격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나의 삐침은 극에 달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화를 내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해주세요’라는 게 ‘어떻게 하란 말씀인가요?’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 너덜 해진 마음으로 주일을 맞았다. 이런 때일수록 예배에 힘을 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를 써봤다. 막내를 보느라 예배를 온전히 드릴 수 없어서인지 말씀들이 조각조각 들어왔다. 나에게 하려는 주님의 말씀을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했다. 오후 예배 시간, 아내가 모처럼 교대를 해줘서 드디어 주님 앞에 자유롭게 앉을 수 있게 됐다. 마침 기도 시간이었기에 울분을 토하듯 부르짖었다. 제발 내가 알아듣게 말씀해 달라는 게 내 요청 사항이었다.
그때 주님이 문장 하나로 마음을 탁 치셨다. 선명했다.
‘너는 이제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도 쓸 수 없는 몸이야. 왜 그걸 모르니?’
사실 그때 내 마음이 혼탁했던 건, 난방비와 생활비 걱정 때문에 글도 한 줄 못 쓰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하자는 회사도 없고, 번역비도 점점 멀어지는 상황에서 내가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새로 시작한 매체뿐이었다. 그 매체가 사람과 기업들 눈에 띄고, 결국 수입의 경로로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콘텐츠가 존재해야 했다. 콘텐츠가 존재하려면 내가 최선을 다해 글을 쓰고 번역을 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삐치면서 나의 생산성은 제로에 가까웠었다. 그러면서 마음이 더 조급해졌고, 막막함이 나를 휘감았던 것이었다. 하나님의 저 속삭임은, 그런 맥락에서, 새 매체를 통해 앞날을 풀어가고자 하는 그분의 뜻을 나타내심과 동시에 나의 답답함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영역을 어루만지시는 것이었다.
‘너는 이제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도 쓸 수 없는 몸’이라는 건 ‘더 기도해라’ 혹은 ‘더 정진에 힘써라’와 같은, 수도승이 들을 법한 지시가 아니었다. 그때의 그 뉘앙스는 ‘새 매체에 내가 부을 것이 많다’는 약속에 더해 ‘내가 뭘 쓸지 하나하나 알려줄게’라는 계약 제시에 가까웠다. 꿈속에서 환상을 보고 일어난 야곱이 돌베개를 세워 기름을 붓고 ‘여호와를 내 하나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맹세한 것처럼, 나도 그 기도 시간에 ‘이제 주님을 편집장님이라 부르겠습니다’라고 맹세했다. 여태까지 새 매체의 편집장은 나였다. 나는 그 순간 평기자로 스스로를 좌천시켰다. 삐친 마음이 깔끔히 풀렸고, 그날 저녁 가족들과의 나눔을 통해 나의 상태를 공유하며 기도를 부탁했다.
월요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았다. 새 편집장을 모셨으니, 새 마음으로 일하자 다짐했다. 그때부터 난 책상 앞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 대신 ‘편집장님’이라며 기도한다. 그 새 아침, 편집장님은 놀라운 말씀을 주셨다.
“너희들에게 이 달은 일 년의 첫 달이 될 것이다.”(출 12:2)
이렇게 적절할 수가 있나. 최초의 유월절에 대해 설명하시는 본문 중 이런 말씀이 있었나 싶게 새롭고 놀라웠다. 편집장님,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우리 매체는 다시 시작합니다. 그날 나는 평소의 2~3배는 넘는 기사를 썼다.
게다가 그날 오후 면접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같이 일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아내의 ‘기쁨과 보람의 인터뷰’라는 기도 응답은 처음부터 사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세세한 조건을 맞추는 과정에서 연봉이 걸렸다. 그들이 제시한 연봉은, 내가 지난 회사에서 받던 것의 반도 되지 않았다. 영세한 인터넷 매체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고, 게다가 분야도 내겐 생소한 것이었으니(즉 그들 입장에서 나는 무경력이나 다름없는 자), 그럴 법했다. 다만 우리 가족의 생활을 생각하자면 모자랐다. 가족들과 상의해 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하루를 얻었다. 그때부터 아내와 나는 주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기도에 돌입했다.
내 기도는 간단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이 가라 하시면 가겠습니다. 그러니 가라 마라 얘기만 분명히 해주세요.’ 아마 아내도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날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도록 아무런 응답을 듣지 못했다. 아내도 분명한 답을 얻지는 못한 눈치였다. 그런 때는 보통 둘이 주님 안에서 말씀을 기준으로 대화를 해가면 되는 게 우리의 지난 경험이었다. 아내와 나는 대화에 돌입했다.
나는 가족의 수입을 담당하지만, 그 수입의 운영은 아내가 전담했다. 즉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이며 얼만큼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이 제시한 연봉이 나에게는 막연히 ‘낮은 금액’이었을 뿐이었는데, 아내에게는 ‘이만큼 낮다, 이만큼 더 필요하다’로 계산됐다. 조건이야 어찌 됐든 주님이 가라 하시면 간다는 마음은 동일했지만, 둘 다 그런 응답을 받지 못했으니, 우리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그런 맥락에서 객관적인 상황 파악을 위해 아내가 실시한 그런 계산이 필요했다. 대화를 통해 우리 한 달 생활비가 최소 이 정도는 있어야 하고, 따라서 이 정도 연봉은 오히려 다니는 게 손해라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퇴근 시간 전에 전화를 걸어 ‘최소 이 정도는 받고 싶다’고 제시하기로 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 회사로 보내시기로 하셨다면 길이 열릴 것이고 아니라면 막힐 것이었다.
오후 2시가 됐다. 나는 전화기를 집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기도를 좀 더 해보고 싶었다. 정말 주님이 나를 거기로 보내시고 싶으신 건 아닌지, 나나 아내가 주님의 음성을 놓친 건 아닌지 궁금했다. 아직 아무런 답이 없었다. 3시까지 기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통화는 4시까지로 미뤄졌다. 주님의 뜻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결정을 하고 싶어서 조심스러웠다.
4시가 됐다.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그때 주님께서 사실을 말씀해 주셨다. 사실 나는 조심스러운 게 아니라 무서워하고 있던 것이라고, 이것이 취직할 마지막 기회일까 봐, 이것마저 놓치면 가족들 먹여 살릴 수 없을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것이라고 말이다. 하나님의 진단이 정확했다. 나는 사실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면 그들이 거절할까 봐 무서워하고 있었다. 8개월 놀았으니, 다시 일하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이전보다 빠듯하게 살지언정 0원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주님은 실직 기간 동안 내가 했던 기도들을 상기시키셨다. 맞다. 나는 막내와 아내가 몸이 좋지 않기에, 가족들 가까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구했었다. 지금 이 회사에 다니려면 서울에서 매일 출퇴근을 해야만 했다. 가족들을 주말에만 봐야 했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아니었다. 또 나는 새로 시작한 매체를 통해 주님의 말을 할 수 있기를 기도했었다. 이미 틀이 다 갖춰진 기성 매체는 기자 개개인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발행하지 않는다. 편집을 거친다. 빨간펜을 긋는다. 창립 30주년이 다 되어가는 이 매체라면, 나 같은 신입의 말을 자유롭게 놔두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아니었다.
단지 연봉만이 아니더라도, 내가 해왔던 기도들이 이뤄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이 회사는 안 되었다. 이 회사가 아니라는 건, 그리고 내 기도를 통해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건, 내 기도가 묻힌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정말로 주님은 내가 가족 곁에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주님의 메시지를 자유롭게 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고 계신 거였다. 다만 나는 그게 어떤 모습일지 확실히 알 수 없을 뿐이었다. 믿음이 좀 부족할 뿐이었다.
“아직은 그 말이 이루어질 때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때가 올 것이다. 그 말은 꼭 이루어진다. 비록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참고 기다려라. 그 일은 이루어진다. 미루어지지 않는다.”(합 2:3)
마음이 편안해졌다. 안심이 됐다. 주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시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러자 주님은 더 많은 약속을 부어주셨다. ‘네가 기도한 대로 가족을 옆에서 돌보면서도 일할 수 있게 해 주겠다. 네가 나를 편집장(소규모 매체에서는 편집장이 곧 사장이기도 하다)이라 불렀으니, 내가 너에게 급여를 직접 주겠다. 이번 회사가 너의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지 마라.’
기다릴 게 없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 필요한 연봉을 두려움 없이 제시했다. 회사 측에서는 많은 금액이었고, 당연히 거절당했다. 그럴 줄 알았다. 주님이 가족 곁에서 일하게 해 주시겠다고 했으니, 예상했던 결과였다. 나는 거절하는 사장님을 축복하며 ‘다음 기회에 더 좋은 곳에서 만나기를 빌겠다, 번창하시라’고 말했다. 기분 좋게 통화를 마쳤다. 아내도 그럴 줄 알았다며 순적히 결과를 받아들였다. 나는 아직 겨울 대비를 하지 못했고, 수입도 없는 아빠지만, 마음이 마냥 무겁지는 않았다.
그날 밤 메일이 한 통 왔다. 번역 의뢰를 했던 곳이었다. 남은 원고의 편집이 다 끝났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받지 못했던 원고들이 동봉돼 있었다. 이제 나만 번역을 서두르면 이 프로젝트는 끝난다. 메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추석 즈음 끝냈던 절반에 대한 번역비를 미리 보내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그것도 바로 내일 보내겠으니 받을 계좌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약 2개월치의 가스비는 될 금액이었다. 남은 번역을 끝낸다면 우리 가족은 추운 4개월을 넉넉히 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직원은 사장을 잘 만나야 한다.
“가스비 잘 받았습니다, 편집장님. 이번 겨울이 벌써부터 따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참, 오늘은 뭘 쓸까요? 일단은 편집장님이 해주신 일부터 기록하고 싶습니다만... 어떠세요?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