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관이 없었다.
그냥 남이 좋다고 하는 삶을 추구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목표를 죽을 만큼 했다.
이유가 있었을까. 굳이 따진다면, 내가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 했던 상황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그 시기에 어린 동생에게 좋은 누나는 자립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게 삶에서 중 요치 않았다. 일단 어떤 일이든 금은동 단상에 올라 트로피를 쥐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설사 그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어떤 일이든. 내게 상을 주고 금을 주고 돈을 주면 되었다. 목숨을 걸고 이를 꽉 깨물고 달렸다. 간절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경주라면 중간에 사고로 죽더라도 필승만 외치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의 나는 분명 과속하고 있었다. 경주마처럼 옆을 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있었다. 앞만 바라보고 신나게 달리는 일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던 것이다.
과속하는 차량의 타이어가 더 심하게 마모된 듯 나는 점차 소모되고 있었다. 나는 얇아지고 흔적 없이 지워지고 있었다.
삶이 안정권에 들어서자 속도는 자연히 줄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부터 보면 만 10년 만이었다. 그때 나는 안락한 생활 속에서 행복함을 느끼기보다, 허무함과 허탈감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나는 이렇게 달려왔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얇아져 있는 나의 타이어를 못나게 흘겨봤다. 왜 이렇게 닳아버린 건지 조차 알지 못했던 시절이다.
허무함과 허탈감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에겐 즐기는 취미도 없었고, 죽을 만큼 좋아하는 무엇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허한 가십거리만 따라다니는 내가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저 내 전공만 잘 아는 엔지니어였다. 정치, 사회, 경제, 역사 어느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것은 없고, 기초적인 용어조차 “그게 뭐예요?”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 내 주변엔 그런 걸 친절하게 알려줄 멘토가 될만한 사람은 없었다. 엄마도 동생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에 벅찼다.
그러다 독서모임이란 걸 했다.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 세상을 조금은 더 알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도전한 비싼 독서모임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허세’로 시작해서 ‘연애’로 끝나는 대학교 동아리 같은 느낌이었다. 내게 지적 성장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무료 독서모임을 찾았다. 근데, 일요일 오전 10시에 모인다고 했다.
독서모임을 일요일 오전 10시에?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회사원에게 주말의 늦잠은 얼마나 달콤하고 필수적인데 일요일 아침 10시라니. 속는 셈 치고 간 독서모임. 청담역에서 하는 게 “여기도 허세 아니야?”라고 의심하며, 독서모임에 임했다. 그런데 독서모임 시작부터 점심을 먹는 5시간 동안 함께한 대화들은 내게 소름을 주었다. 대화에서 아우르는 주제는 넓었고, 깊이도 깊어서 내가 따라가기 벅찼다.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피자 위를 둥둥, 커피 위를 둥둥 떠다닐 때 그 단어들을 몰래 폰에 적어두고 나중에 검색해 보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이렇게 충만하고 재미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뒤로 나는 이 독서모임을 절대 빠지지 않고, 지정된 책은 꼭 완독 한 뒤 참여했다. 독서는 모임 안의 대화를 위한 준비였고, 그
준비를 게을리하면 그 뒤에 참여할 대화의 참맛을 느낄 수 없었기에.
이제는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책’ 속의 답을 찾는다. 책은 나에게 제일 친절한 멘토이기도 하고, 내 마음을 제일 잘 알아주는 친구이기도 하고, 나를 정확하게 분해하여 분석해 주는 분석가이기도 하다. 독서는 삶의 대부분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모든 분야의 기초지식을 쌓아주었고, 그 지식을 토대로 나만의 기준선을 “가치관”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하게 메어주었다.
1년, 2년 꾸준히 독서모임을 거쳐 나는 책모임을 이끌어 가는 모임장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