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의 불안 중 기억나는 건 엄마가 외출할 때면 엄마가 납치 당할까 봐 불안했던 것. 엄마를 너무너무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는 전쟁이 날까 봐 불안했다. 그 어린 아이가 왜 그렇게 불안했을까.
어쨌든 가장 큰 불안은 '엄마가 없어질까봐' 였던 것 같다. 12살 이후라면 엄마밖에 없으니까 이해가 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불안이 심한 아이였던 것 같다.
요즘 나의 불안은 단연 아이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에서 상상을 한다. 아이와 걷고 있는데 산책하는 큰 강아지가 마주오고 있다. 그럼 나는 생각한다.
'만약 저 강아지가 아이에게 달려들면 어떡해야 되지? 아이를 안아야 하나? 강아지를 떼어놔야 하나?'
혼자 상상을 하며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번째는 차를 타고 갈 때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있고 아이는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 있다. 나는 아이의 옆에 앉아 있다.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일단 아이를 감싸 안을까? 담요같은게 있던가? 내 몸으로 감싸면 아이는 괜찮겠지?'
한참 묻지마 폭행이나 칼부림이 많이 나던 때, 아이와 가다가 또 상상한다.
'갑자기 누가 칼을 들고 덤벼 들면 어떡하지? 칼을 발로 찰 수 있을까? 아이를 감싸고 내가 맞으면 되나? 달려오는 걸 보면 일단 발로 찰까?'
내가 불안해하는 일들은 사실 일어날 확률이 높은 건 아니었지만, 난 늘 불안한 것 같다. 아이가 어려서 걱정이고 크면 혼자 다니는 아이가 또 걱정될 것 같다. 연락이 안되면 불안할 것 같고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전전긍긍할 것만 같다.
정신의학과에서 상담을 받으며 나의 이런 불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난다고 내가 이상하다고 할 것 같아서 의사에게만 털어놓았다.
"그런 생각을 침투적 사고라고 합니다."
침투적 사고. 처음 듣는 단어였다.
침투적 사고(intrusive thought)
비자발적인 사고나 인상, 혹은 강박이 될 수 있는 불쾌한 생각으로, 동요하게 만들거나 고통을 안겨 주며, 대처하거나 없애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침투적 사고가 강박장애, 우울 등과 연계되어 나타나나면, 마비시키거나 불안을 자극하기도 하며 오랜 시간 나타날 수도 있다.
거기까지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는데 의사의 다음 말이 와닿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침투 사고를 해도 순간이고 스쳐지나가는 생각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OO님은 그 스쳐가는 생각을 지나치게 두지 않고 꼬리를 잡아서 계속 파고드는 거죠."
의사는 그럴 때 먹으라고 약을 주었다. 하지만 남은 생을 계속 불안할 때마다 약을 먹으면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결 방법이 보이지도 않는다.
"이건 침투 사고다. 지나가는 생각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알겠다고 하고 병원을 나왔다.
정신의학과를 다니고 있는 다른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말했다.
"네가 대학교 때도 그랬나? 우리 같이 자취할 때도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이십대에는 그래서 거의 술을 마셔야 기절하듯 잠들었던 것 같다. 삼십대가 되고 술을 마시는 빈도가 줄어드니 그 불안이 다시 슬금슬금 나와 나를 괴롭힌 것 같았다.
술보단 약이 낫겠지.
어떤 날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이 들뜨다가, 어떤 날은 끝도 없이 가라앉는다.
우울증과 불안증의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정말 극복이 가능하긴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