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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Aug 05. 2024

통증은 선불, 할인은 무통주사


 최근 정부가 “무통주사(IV PCA) + 페인버스터(CWI) 병용법 금지”를 추진했었지만 없었던 일로 일단락되었다. 제왕절개수술을 결정할 때에 산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후불제 고통” 때문이라도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 두 개를 모두 적용하는 것은 산모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선택인 것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이 두 가지의 진통제를 모두 사용하더라도 수술 후 산모가 겪는 고통은 여전히 강력하다. 또한 이런 통증의 기억이 아기와 산모 사이의 초기 애착 형성에 영향이 전혀 없다고 보긴 어렵다. 


 제왕절개수술에 이런 "후불제 고통"이 있다면, 임신 전 과정에서 산모들을 가장 겁먹게 하는 “선불제 고통”인 질식분만의 진통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병원에서 진행되는 분만 과정 중 수술이 아닌 산도를 통해 아기를 출산하게 되는 질식분만은 자연스럽게 생긴 진통으로 분만이 진행되는 '자연'분만(eutocia)과 만삭이 되었음에도 진통이 생기지 않아 입원하여 약물(oxytocin, 옥시토신)로 자궁수축을 유발하여 진행하는 '유도'분만(IVP, intravenous pitocin, 피토신(옥시토신) 유도분만)으로 나뉜다.

 

 분만실 간호사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질식분만에서 "무통주사(Epidural block, 경막 외 척수마취)”의 역할은 더욱 컸는데, 무통주사가 없이 분만하는 경우 분만하며 느끼는 진통의 강도가 최대 100%라면 100%를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느끼며 분만해야 하기 때문에 무통주사는 질식분만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산모에게 아주 중요한 선택일 것이다.


 특히 유도분만의 경우 자궁과 아기가 분만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는 상태이므로 분만을 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과정이 보통 하루를 넘어가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산모는 더 오랜 시간 약물로 만들어낸 강도 높은 진통을 지속적으로 느껴야 한다. 무통주사는 그 오랜 진통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아주 고마운 구원자인 것이다.

 

 유도분만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하루 전 미리 입원하여 분만에 대한 준비(제모, 관장, 내진 등 산모들이 '수치 3 대장'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포함한)를 하고 경부가 전혀 열리지 않았으면 진통유도에 앞서 dinoprostone성분 질정제를 넣고 밤새 경부가 숙화 되도록 한다. 밤사이 넣어둔 질정제로 인해 생긴 수축이 아기에게 스트레스가 되어 태아심음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NST(Non-stress test, 태아심음 횟수와 수축의 강도가 그래프로 수치화되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기계를 단 상태로 태아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누워있게 된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질정을 제거하고 본격적으로 수액을 통해 옥시토신을 투여하며 점진적으로 수축을 유발하고 수축의 강도가 분만이 가능할 정도로 증가하여 2~3분의 규칙적인 간격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용량을 조절한다. 초산모의 경우 경부가 10cm 이상 열리고 아기가 산도로 본격적으로 진입을 시작하는 이 과정만 하루이틀을 넘어가고, 이렇게 옥시토신을 투여해 진통이 유발되더라도 경부가 맞춰서 함께 열려주지 않으면 결국 그날은 분만 실패, 다음날로 넘어가 앞의 절차를 다시 시작하는 무한굴레를 돌게 되는 것이다.

 

  이 고난한 분만의 과정에서 무통주사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소중한 존재이지만, 무통주사를 맞고 나서 진통이 100%에서 0%로 아예 사라지느냐 그건 또 아니다. 무통주사는 펜타닐(Fentanyl)이라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가 들어있기 때문에 마취과 의사가 처방한 정확한 용량이 정확한 속도로 기계를 통해 들어가야 한다. 배부터 하반신 전체의 감각을 떨어트려 진통을 경감시키는 마취법으로 아예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매우 미세하게 조절하여 적절한 용량으로 투여하게 된다.

 

 때문에 간호사는 30분~1시간 간격으로 무통주사를 맞고 있는 진통 산모의 감각 상태를 확인하고 의사에게 보고하여 진통제 용량을 조절하게 된다. 무통주사로 드디어 힘겹던 진통이 사라져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산모의 마음은 백번 이해하지만 원활한 분만 진행을 위해서는 산모가 진통을 스스로 느끼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결국에 산모는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 진행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하는 기준의 "어느 정도의 적당한" 통증을 분만 전 과정에 걸쳐 계속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수술이던 질식분만이던 모든 분만에서 통증 없이 아기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질식분만에 성공하면 "선불제 고통"은 다 끝난 것일까? 그렇다면 회음부 방석과 좌욕기 회사는 다 망했을 것이다. 분만이 완료되면 무통주사는 1~2시간 내에 제거하게 되고 그 이후로는 먹는 소염진통제와 근육주사로 맞는 진통제로 간간이 버티며 통증을 조절하게 된다. 


 분만 후 산모가 아플게 뭐가 있지? 진통이 끝났으면 하나도 안 아픈 것 아니었나? 싶을 테지만 아기 머리보다 좁은 회음부는 아기가 지나는 마지막 관문으로, 분만 시 의사가 회음부를 일부 절개함으로써 아기가 나오기 쉽게 도와주고 또 분만 시 회음부 열상이 생기는 것을 막거나 줄여주기 위해 필요시 회음절개술을 시행하게 된다. 이 회음절개부위는 부위마취 후 절개하고 또 분만 직후 바로 봉합하긴 하지만 그 후의 통증은 몇 날 며칠이고 지속된다.


 "선불제 고통", "후불제 고통"이라는 말은 모든 분만 방법이 공평한 통증을 가지고 행해지는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 분만 경험자들이 구분해 놓은 단어다. 그것이 결코 '아, 선불제니까 아기 낳고 나서는 안 아프겠네'라던가 '후불제니까 대신 진통이 없었잖아, 수술하고 좀 아파도 견뎌내야지'라고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다. 아기를 만나기 위해 산모가 견디고 버텨내는 모든 것들이 그게 선불이던, 후불이던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은 없다.


이렇게 글을 적어내면서 한편으로는 출산이라는 것이 마치 적당한 '고통'이라는 값을 지불하면 아기가 내 것이 되는, 물건을 사고파는 것과 같은 간단한 절차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이 "선불제", "후불제"라는 단어를 최대한 피하고 싶기도 하다


 임신을 확인하는 그 순간부터 태어난 아기를 마주하기까지의 긴 10개월의 힘겨운 여정을 무사히 끝내기 위한 값이, 느껴본 적 없는 엄청난 고통이라고 할지라도 기꺼이 지불하겠다고 마음먹은 산모들의 결심이 간단히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인 듯 폄하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Stephen Andr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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