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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Jul 31. 2024

아기 머리가 만져지는데요!?


 매 분 매 초 뛰어다니는 숙명으로 존재하는 분만실 간호사, 그런 가운데 대학병원 분만실은 분주함 사이의 고요함이 메워져 매일이 반복된다. 죽겠다 외치며 뛰어다니던 신규 간호사는 어느새 고요함이 더 불안해지는 3년 차 간호사가 되었다.


 그날은 그저 한가로운 토요일 데이 근무였다. 평일 내내 가득 차 있던 병실도 바빴던 평일의 보상이라도 되는 듯 오전 10시부터 산모분들이 앞다투어 퇴원했다. 휑해진 병실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청소 여사님이 자리정리 해주신 것을 눈으로 확인까지 하면 토요일 오전 근무는 거의 끝난 것이다.


 금세 고요해진 병동과 분만실에서 남은 3시간을 그저 자리 지키는 한 명의 간호사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동료와 오늘 점심메뉴에 대해 고심하던 중 절대 울리지 않길 바랐던 병동 전화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빠르게 수화기 위로 올라간 손을 잠시 멈추며 아주 잠깐의 정적 사이로 동료와 눈이 마주쳤다. '...안 돼... 방금 다 퇴원했는데...?' 애써 부정하며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뒤 전화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분만실 간호사 000입니다~", "... 바로 올려주세요."


 응급실로 산모가 왔다. 35주, 5번째 임신, 30분 전 양수가 터졌다고 119로 전화하여 구급대원이 싣고 병원에 막 도착했다고 한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35주 - 신생아중환자실 자리 확인 필요 없음(내가 근무한 병원에서는 35주 0일 이상의 아기들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조산이어도 일단 신생아실로 입실한다), 5번째 임신 - 이미 경부는 거의 다 열렸을 것이며, 30분 전 양수 터짐 - 올라오면 그 즉시 분만할 거라는 얘기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하 1층 응급실에서 3층 분만실까지 환자가 올라오는 단 5분, 다행히도 오늘 나의 토요일 근무 동료는 합이 척척 맞는 1년 후배 간호사였다. 서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양쪽으로 갈라져 뛰어다녔다. 동선은 절대 겹치는 법이 없었다. 내가 이걸 하면 동료는 그다음 것을 준비하고... 그렇게 환자가 올라오는 5분 동안 우리는 분만에 대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오랜만에 생긴 잠깐의 틈에 점심밥도 응당 거르겠다며 분만실 안 당직실에서 잠을 청하려던 레지던트 2년 차 선생님은 가차 없이 쏟아부어대는 나의 콜에 눈을 비비적거리며 뛰쳐나왔다.

 방금까지 고요했던 분만실이 맞냐는 듯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산모입니다!!", "여기요! 여기로 바로 오세요!", "산모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분만 예정일 언제예요? 아기 머리 아래에 있다고 들었어요?", "바로 초음파 볼게요." 미친 듯이 귀를 때리는 질문과 몰아치는 진통에 산모는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었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내진(자궁경부의 경도, 길이 및 자궁경부가 얼마나 열렸는지 알기 위해 시행하는 검사)을 하는 동안 우리는 산모 양팔에 달라붙어 수액을 잡고 항생제 반응검사를 하고 정신없이 일을 쳐내고 있었다. 내진하는 손을 빼지 못한 채로 반대 손으로 주머니에서 힘겹게 핸드폰을 꺼내든 레지던트 선생님이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은 교수님께 선생님은 "교수님 아기 머리 다 내려왔습니다! station은 +3..."환자 상태를 보고했다.


 내 손발은 빠르게 움직이는 순간에도 귀는 통화에 꽂힌 상태, 레지던트 선생님과 교수님의 통화내용을 들으며 환자상태를 파악하는 동시에 다음 해야 할 일들을 새롭게 업데이트한다. 지금 해야 할 우선순위를 다시 정렬하고 이미 의미가 없어진 행위들은 과감히 쳐냈다. 지금은 다른 게 아니라 당장 분만장으로 들어가야 할 때이다. 통화를 급하게 끝낸 선생님과 간호사 2명이 모두 붙어 그대로 침대를 끌고 분만장으로 들어갔다. 그 30초도 안 되는 짧은 사이 아기 머리가 이미 반 이상 나와있었고, 레지던트 선생님이 급하게 멸균장갑을 착용하고 아기 머리를 받친 상태로 분만 침대로 산모를 옮겼다. 산모와 의사, 간호사 2명 중 한 명이라도 합이 틀어지는 순간 아기가 위험해진다.  오늘 처음 만난 이 산모도 아기의 안전을 위해 본능적으로 마치 짠 것처럼 움직였다.


 자연진통으로 양수가 파막되어 날아온 5번째 경산모의 분만은 정말 순식간이다. 응급실로 들어선 순간부터 아기가 태어난 그 순간까지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도 아기는 큰 소리로 잘 울어주었고 손에 연결한 산소포화도 센서도 잡아 뜯어낼 정도로 기운이 넘쳤다. 2.5kg도 안 되는 몸무게였지만 안전하게 신생아실로 입실할 수 있었다.


 분만실에서는 당연하게 흘러가는 일상인 이런 고요함과 분주함의 반복들이 그 안에서 겪어내는 그 순간에는 알아채지 못하다가 한 발짝 벗어나보면 마치 전쟁터와 같아 보인다. 폭탄과도 같은 쏟아지는 일들을 '해낸다'가 아닌 '쳐낸다'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간호사들의 일상이 안쓰럽고 슬퍼질 때도 있지만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가 들려주는 울음소리 하나에 함박웃음으로 얼어붙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내뱉는 숨 하나로 분주했던 모든 순간들이 그저 흘러가는 일상으로 변하는 생명이 주는 위대함에 그저 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UnsplashGabriel Tov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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