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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Aug 12. 2024

빵순이 산모는 울어요

 고위험 산모 병동에 입원한 환자분들 중 임신성 당뇨(GDM,  Gestational Diabetes Mellitus) 산모분들이

집에서 혈당 조절이 잘 안 되어 입원하는 경우를 꽤 자주 볼 수 있는데, 교수님들은 환자분들께 농담 식으로 "병원에 가두고 감시하는 거예요." 얘기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병원 밖은 혈당을 매우 높이는 음식들이 많고 유혹에 휘둘리기 쉽기 때문에 입원해서 삼시세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칼로리로 나오는 병원밥을 먹으며 혈당을 조절할 목적인 것이다.


 그래서 임신성 당뇨 산모가 입원하면 담당 간호사는 첫 번째로 키와 몸무게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전산으로 칼로리를 계산하여 영양팀에 당뇨밥 신청을 넣게 된다.

 

당뇨 산모의 입원 중 가장 주된 검사는 혈당 검사다. 하루 7번의 혈당 검사를 시행하는데 아침 공복, 매 식전, 식후 2시간, 자기 전 손가락을 찔리게 되는 산모분들은 하루이틀 만에 금세 손가락이 너덜너덜 해진다.


 찌르는 입장에서도 매번 알코올솜으로 닦여 하얗게 갈라진 손 끝과 찔린 흉터로 가득한 손가락을 볼 때마다 여간 안쓰러운 것이 아닌데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오늘은 어디에 바늘을 찔러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간다.


 그렇지만 건조하고 갈라진 손가락보다 산모분들이 더 힘들어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반찬, 국 할 것 없이 설탕을 싹 뺀 듯 너무 맛없는 당뇨밥, 그리고 함께 나오는 작은 두유 하나 함부로 먹을 수 없게 하는 간호사들의 엄한 식단관리다.


 당뇨 산모는 입으로 들어가는 족족 혈당에서 바로 티가 나기 때문에 이제 막 입덧에서 벗어나 20주를 갓 넘긴 무렵, 드디어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좀 즐겨보려는데 얼마 되지도 않아 임신성 당뇨를 진단받게 되면 진단받은 그날부터 출산일까지 입에 집어넣는 모든 음식, 음료, 사탕 한 알까지 모두 철저한 통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출산할 때까지 당을 높이는 음식은 모두 금지될까? 또 그런 것은 아니다. 당뇨 산모들은 자기 전 혈당이 가장 중요한데, 밤 10시부터 아침 5시까지 7시간 이상의 공복 시간 동안 저혈당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원한 당뇨 산모의 보호자에게는 항상 손이 닿는 곳에 작은 사탕이나 오렌지 주스와 같은 빠르게 혈당을 올릴 수 있는 간식들을 미리 구비해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먹고 싶은 음식은 맘껏 먹지 못하는데 가끔 오는 저혈당 때문에 사탕 한 알, 음료수 반 잔 같은 것들로 혈당을 조절하는 날들이 지속되면 임신성 당뇨를 진단받기 전에는 음식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산모도 슬슬 집착이 생기기 시작한다.


 물론 한 생명의 대차게 뛰는 심장부터 작디작은 손톱 하나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산모의 몸은 항상 영양분을 호소하기 마련이고, 임신성 당뇨 산모의 경우 건강한 산모에 비해 인슐린 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느껴지는 공복감도 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남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은 괜한 집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본인 욕구만 생각하는 나쁜 임산부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한 본능적 행위이며 이것을 10개월 동안 매 순간 아기를 위해 참아내는 임부들의 정신력이 가히 대단한 것이다.


 간호사들도 산모들의 이러한 고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산모와 태아의 안위를 위해 혈당을 조절하고 목표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잔소리를 하는 간호사와 먹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매번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산모분들의 관계에서는 왠지 모를 서운함과 불만이 쌓일 수도 있었다.


 보호자가 면회올 때 사 온 커피를 간호사들에게 나눠주며 본인은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한 잔만 먹을 거라며 가련한 눈으로 간호사들의 안쓰러움을 자극하고선 추가된 약을 주러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커튼을 열어젖힌 간호사에게 바닐라 라테를 쪼록쪼록 마시다 딱 걸렸던,


 평소엔 돈 주고 사 먹어 본 적도 없었을 슈크림빵을 간호사 몰래 장 안에 숨겨두었다가 점심 식후 혈당 검사를 끝내자마자 야금야금 꺼내 먹어 저녁 식사 전 혈당검사에서 140mg/dL(보통 식전 혈당은 100mg/dL 이하로 유지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한다)을 찍어버린 한 산모분이 있었다.


 뭐 좀 먹어보려고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산모님! 또 뭐 드셨어요! 빵은 진짜 안 돼요!" 잔소리해 대는 간호사에게 해실해실 눈웃음으로 "아잇, 딱 걸렸다. 죄송해요~ 히히"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던 산모분은 참 말 안 듣는 환자분 중 하나로 나에게 기억되어 있지만, 또 그 산모분을 떠올릴 때면 내 입꼬리도 항상 함께 쓰윽 올라간다.


 그렇게 잔뜩 잔소리를 하고 가도 항상 감사하다며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 아기가 아직 건강하게 뱃속에서 잘 크고 있다며 얘기해 주시던 산모분은 나의 '감사환자 리스트'의 첫 번째에 위치해 있다.


 고위험산모라는 이유로 나보다 어린 간호사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긴장되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고위험 산모들의 곁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은, 사실 가벼운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매우 조심스럽다. 그렇기에 간호사들을 아기와 건강하게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라고 생각해 주며 먼저 믿고 의지해주는 환자분들이 더욱 기억에 남고 소중해진다.


 한 생명을 지켜내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위대한 것이지만 밤낮으로 산모분들의 곁을 지키며 간호하는 간호사들도 그에 못지않게 건강하게 태어날 아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리라 믿는다.


 오늘도 병상에 누워 커튼 구멍개수를 세며 깜박이는 형광등만 쳐다보고 계실 고위험 산모 분들에게 오늘의 이 심심한 하루가 그저 흘러가는 버려지는 하루가 아니라 건강하게 태어나 살아갈 아기의 숨 하나, 웃음 하나를 지켜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고, 힘내시라고 마음속으로나마 전하고 싶다.




커버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Nicole Arango 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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