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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Oct 26. 2024

분만실의 남자들

 여자로만 가득할 것 같은 분만실과 고위험산모병동 안에도 분명 남자는 존재한다. 바로 산모의 남편이다.

 

 임산부가 환자이다 보니 신혼부부 비중도 꽤 있어서 병실에 혼자남을 아내를 걱정하며 좁고 딱딱한 보호자 침대에서 큰 몸을 구겨 불편한 상태로 몇 날 며칠 함께 지내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출처: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년 방영한 TVN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분만 직후 아기를 처음 만난 남편이 기뻐하며 고생한 아내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감동스러운 한편 또 꽤나 웃긴 모습으로 연출되었는데 확실히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기에 방송 다음날 병동에서 교수님과 간호사들이 이 장면에 대해 웃으며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만난 수많은 남편분들 중에도 노래는 못 부를지언정 드라마 못지않게 다정한 분들이 많았다.


 드라마의 장면처럼 가족분만실에서 분만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산모의 남편도 분만장 안으로 들어와 분만 과정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데, 보통 배 아랫부분을 가림막으로 가려두고 남편이 산모의 머리맡에 서서 몇 시간이고 힘주기를 도와주게 된다.


 대다수의 남편들은 진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산모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기도 했고 어떤 남편은 힘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고맙다 미안하다 연신 외치다가 산모에게 시끄럽다며 쫓겨나기도 했다.


 짧으면 몇 시간, 길면 수일에 걸쳐 진통의 과정을 함께한 남편도 산모만큼 지칠 법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에는 이 감격의 순간을 잠시도 놓치지 않으려 눈을 반짝인다.


 몰아치는 진통에 지칠 대로 지친 산모가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을 전부 눈에 담기는 어렵다. 분만이 끝나면 팔다리는 축 늘어지고 몰려오는 피로에 눈이 감긴다.


 그사이 산모의 남편은 산모가 보지 못했던 아기의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가득 담아와 우리 아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누구를 닮았는지 종알종알 얘기한다.


 분만이 끝나고 병실로 옮긴 산모의 후처치를 위해 커튼을 열면 매번 처음으로 마주하는 장면이다. 부부가 행복이 가득한 눈으로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옆에 있던 내 마음까지 그 행복이 묻어 나온다.


 비로소 가족이 완성되는 그 순간은 언제나 따뜻하고 찬란하다.


 힘든 진통과정과 분만을 겪어낸 후에도 분만 후유증과 모유수유 등 고생길이 훤한 산모 못지않게 그들의 남편에게도 출산이라는 것은 일상이 완전히 뒤집히는 엄청난 사건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기를 낳기 위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출산하는 그 순간까지 몇 날 며칠이고 옆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남편은 아마 돌아버릴 지경일 것이다.


 힘들어하는 산모에게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며 되려 더한 심리적 고통을 느낄지도 모른다.


 또한 산모는 10개월간 아기를 뱃속에 품으며 아기가 커가는 것을 직접 느끼지만, 남편은 커지는 아내의 배를 보며 아기가 곧 나오겠구나 생각을 하더라도 산모만큼 직접적으로 느끼기엔 어려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눈앞에 자신을 혹은 아내를 똑 닮은 아기가 떡하니 나타나다니. 너무나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남편은 아기의 탄생과 가족이 이루어지는 전 과정에서 산모와 아기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이 가정의 가장 큰 부분이 되고 또 그 책임을 실감하게 된다.


 부부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소중한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은 결국 두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로 묶이는 순간이 된다. 태어난 생명의 앞날을 위해 본인들의 남은 인생을 기꺼이 쏟아부을 수 있음을 마음속 깊이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이런 행복으로 가득 찬 순간을 늘 함께 느끼고 보며 일할 수 있는 분만실 간호사는 어떤 면에서는 참 복 받은 직업이었다.




사진: Unsplash의 Jochen van Wy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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