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공항에서 보낸 21년, 그 시간의 의

by JM Lee

2004년 8월 16일, 저는 처음으로 인천공항이라는 공간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날은 제 인생에서 공항을 처음 방문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사법시험이라는 오랜 꿈을 접고, 새로운 길을 찾아 방황하던 시기. 우연히 마주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채용 공고는 제게 한 줄기 빛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출근 첫날, 저는 공항의 거대한 터미널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 없었던 제가 세계 각국으로 이어지는 하늘길의 관문 앞에 선 순간,
마음속에는 설렘과 주눅, 아쉬움과 기대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조용히 일렁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바로 그날이 제 인생의 새로운 활주로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공항은, 그리고 저 역시도 많이 성장했습니다.

2000년 개항 당시 연간 3천만 명 수준이던 여객처리 능력은 이제 1억 명을 수용하는 세계적인 초대형 허브공항으로 발전했습니다.
매출은 3,900억 원에서 2조 4,000억 원 이상으로 6배 이상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600억 원에서 1조 1,000억 원 수준으로 18배 가까이 확대되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매년 1조 원 가까운 배당금과 세금을 국가에 납부하며, 인천공항은 단순한 인프라를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엔진이 되었습니다.
경제 파급효과는 연간 25조 원 이상, 직·간접 고용창출은 40만 명 이상.
이 모든 수치들이 보여주는 건, 인천공항이 더 이상 단순한 공항이 아닌, 국가의 미래를 떠받치는 플랫폼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변화의 중심에서 저는 기획, 인사, 재무, 마케팅, 홍보, 공항운영, 해외사업, 법률 자문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공항의 성장과 함께 제 삶도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이제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첫째, 21년의 공항 생활을 한번쯤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부서를 거치며 쌓은 경험과 기억들은 단지 업무를 넘어서, 제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둘째, 공항이라는 세계를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조종사나 승무원만을 항공 직업으로 떠올리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더 다양하고 정교한 업무들이 공항을 조용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공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것은 기반시설을 관리하는 핵심 기술 업무들입니다.
활주로·유도로·계류장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토목시설 관리 업무,
터미널, 관제탑, 부대건물 등 공항 내 주요 건축물을 책임지는 건축 업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공항 전체 전기 시스템을 유지하는 전기설비 업무,
공조, 배관, BHS(수하물자동처리시스템) 등 주요 설비를 관리하는 기계설비 업무,
데이터 흐름과 디지털 인프라를 설계·운영하는 IT·통신 시스템 업무,
그리고 항공 보안검색, 출입통제, 테러 대응 등을 맡는 보안 업무까지—
이러한 기술 기반 업무들은 공항의 안전성과 신뢰도를 유지하는 핵심 축입니다.

이와 함께, 공항의 흐름과 운영을 실제로 조율하는 다양한 운영 분야 업무들도 중요합니다.
항공기의 지상 이동과 주기장 배정을 담당하는 계류장 관제 및 운영 업무,
터미널 내부의 여객 흐름과 서비스 품질을 관리하는 여객서비스 운영 업무,
터미널 접근 교통의 흐름을 계획하고 모니터링하는 교통 운영 업무 등은
공항이라는 복잡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한, 해외 공항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해외사업 분야 업무
국내 공항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형 공항 모델을 해외에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항의 미래를 설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전략 및 경영지원 부서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장기 비전과 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전략기획 업무,
공사의 대외 이미지와 언론 대응을 담당하는 홍보 업무,
인재 채용과 조직 문화를 관리하는 인사 업무,
예산 편성과 자금 운영, 사용료를 징수하는 재무·회계 업무,
공항 내 부동산과 자산을 관리하는 재산관리 업무까지—
이 모든 조직과 기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공항이라는 복합 시스템이 완성됩니다.


셋째, 이 길을 따라올 후배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공항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어떻게 커리어를 설계해 나가야 하는지를
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여정을 함께해준 모든 분들께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를 품어준 인천국제공항공사, 때로는 따뜻한 조언으로, 때로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성장의 방향을 일러준 선배님들, 언제나 현장의 무게를 함께 견뎌온 동료들,
그리고 새로운 시각과 에너지를 불어넣어준 후배들 덕분에 저는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항공정책을 함께 고민하고 협업해온 정부 관계자 여러분,
국내외 수많은 협력사와 파트너, 해외사업 현장에서 만난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공항을 만들고, 운영하고, 확장해온 사람들. 그리고 이제 그 길을 따라갈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까지도 담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책이, 어릴 적 비행기를 보며 가슴 뛰었던 기억을 다시 꺼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나도 공항에서 일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 되길,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다음 활주로를 설계하는 나침반이 되길 바랍니다.

21년간 저는 이 공항에서 살아왔고, 그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항로였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당신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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