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 영감을 받았던 이승희 작가의 '기록의 쓸모'라는 책을 몇년 전 인상깊게 보았다. 그 때 기록의 중요성을 깊게 느꼈지만 정작 업무에서 나는 그리 기록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지만 업무에서, 특별히 후원자와의 관계에서 기록은 정말 중요하고, 내게도 새로운 다짐이 필요하기에 고액모금에서 기록이 얼마나 '쓸모'가 있는 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1. 고액(잠재)후원자와의 관계관리 기록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알려준다
모금에도 사이클이 있는데, 잠재기부자를 조사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기부를 요청하고 예우와 보고를 하는 것이다. 기록을 잘 하게 되면 지금 내가 담당하는 후원자와 어떤 단계인지 알게 된다. 즉 지금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할 때인 지, 후원요청을 해도 될 때인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 우리는 새로운 담당자가 되어서 후원자와 원점부터 관계를 시작할 때가 많다. 물론 담당자가 변경이 되면 관계적인 측면에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동안 기관과 후원자와의 관계가 잘 되었다면 이어서 더욱 더 숙성된 관계를 맺으면 된다.
2. 고액후원자가 적절한 예우를 받을 수 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후원자님 한 분이 생각나서 동료직원이 아프리카 출장 후 가지고 온 선물을 하나 보내드리면서 우리 기관과 관련된 에세이 책 한권을 함께 보낸 적이 있다. 후원자님은 잘 받았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셨는 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그 책은 전에도 한 번 보내드렸던 책이었던 것이다. 물론 똑같은 책을 또 보냈다고 후원자님께서 뭐라고 하시지는 않았지만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나의 미숙함이 보여지는 것 같아 매우 부끄러웠다. 기록을 잘하면 담당자가 바뀌어도 후원자님께 적절한 예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나처럼 중복된 예우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보고 시기 등을 잘 챙겨서 후원자님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예우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3. 우리의 기록은 기관의 투명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록을 통해 보고와 예우를 잘 챙기면 결국 후원자님은 우리 기관을 신뢰하게 된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내가 이 기관에서 일하기 전 일만큼, 오래 전에 후원하신 분이 본인의 후원에 대한 팔로업을 요청하실 때가 있다. 후원금 입금 확인과 같은 단순 요청이라면 어렵지 않지만 그 당시 어떻게 사업이 팔로업 되었고 어떤 서비스가 나갔는 지 등등을 찾아야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 정말 감사하게 당시 담당자의 한 줄 기록이 단서가 되어 비교적 쉽게 팔로업을 했던 경험이 있다. 이런 기록이 없다면 후원자님께 적절한 응대를 할 수 없었을텐데, 이를 계기로 후원자님은 우리 기관을 더 신뢰하게 되지 않을 까 생각한다.
기록의 쓸모의 이승희 작가는 기록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고액모금을 잘 하기 위해서도 기록이 중요하다. 내가 한 기록이 후원자와의 관계를 숙성시키고 나아가 고액모금의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 까. 그리고 이런 우리의 기록들이 모여 기관의 큰 자산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치열하게 후원개발 업무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록만큼 또 어려운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 조직에서는 기록을 쉽게 할 수 있는 툴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는 개인과 조직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정답은 없겠지만 고액후원자와의 기록을 꼭 남길 수 있는 나만의 업무 루틴을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또는 조직 차원에서도 이러한 기록이 꼭 남겨질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다시 한번 부끄럽게 애기하지만^^;)나도 그동안 밀린 기록들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CRM에 차곡차곡 남겨둬야겠다. 내가 남긴 한줄의 기록이 언젠가 또다른 담당자가 후원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데 영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