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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Aug 13. 2019

이야기가 있는 주방 11.
감자 열무김치

더운 여름, 집 나간 입맛을 찾아주는 김치

부산이 고향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처음 맞은 명절, 추석에 나는 그야말로 문화충격에 휩싸였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제사음식이라고는 구경도 못 하다 시집을 갔는데, 대충 제사음식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손이 유난히 크신 시어머니는 나물도 종류별로 김치 담그는 수준의 양을 하셨고, 전과 부침은 종류별로 한 광주리씩 부치셨다. 같이 시장에 장을 보러 가서는 27세 평생 본 생선과 해물 종류의 30배 정도를 구경하고 장을 보고 왔다. 


갑오징어, 문어, 돔배기 (상어 고기) 등은 서울에서 평생 살아온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였고, '군소'라는 시커먼 바다 달팽이를 요리하는 일은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하는 것 같이 신기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다 신기하고 재밌기만 하지는 않았다. 종류가 너무 많고 양도 많은 데다, PK 지역은 남자들이 주방에 들어오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지역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몹시 고되었다. 신혼의 남편은 도와주러 왔다 갔다 하다가 시어른들께 혼이 나고, 나는 나대로 서운하고 힘들어서 부산의 음식은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시댁에 갈 때마다 식사 준비로 곤욕을 치르니, 나는 자연스레 시댁에 가면 준비만 하고는 잘 먹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이 시어머니가 잘 만드시는 대구 아가미젓 김치나 대구탕, 게찜 등을 맛있다며 권해도 대강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빨리 치워버리곤 했다. 시댁에서 먹는 음식은 맛을 느낄 여유가 없었고, 그저 해치워야 하는 임무일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내 목소리를 내고, 어머니도 힘이 많이 빠지셔서 예전에 하던 음식의 1/5쯤으로 양과 종류를 많이 줄였다.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시댁에 가서도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거 꺼내 먹고,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연륜이 생겼다. 


어머니는 많이 늙으셔서 식탁 위가 단출해졌는데, 이렇게 몇 가지 반찬만 놓게 되니 진짜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되었다. 그 전엔 잘 안 먹던 열무 물김치를 이번 여름에 가서 먹었는데, 얼마나 시원하고 새콤하면서도 국물이 진한지 이건 꼭 전수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김치 국물이 독특해서 여쭈었더니, 감자를 쪄서 갈아 넣는다고 하셨다. 식탁을 정리하고 어머니와 커피 한 잔 하면서 대강의 레시피를 적어왔다. 검색을 해 보니 강원도 지역에서 여름 김치에 풀 대신 감자를 넣는다고 한다. 진주가 고향으로 부산에서 평생 사신 어머니가 이 김치를 어디서 전수받으셨는지 다음에 꼭 여쭤봐야겠다. 




 재료 : 열무 한 단, 부추나 쪽파 조금, 홍고추 5~7개, 청양고추 3~5개, 감자 중 사이즈 2개, 마늘 3톨, 생강 아주 조금(가루로는 1/2 ts정도), 소금 


1. 감자를 껍질 벗겨 깍둑썰기 한 다음 물을 넉넉하게 붓고 삶는다. 


2. 열무를 손질한다. 열무가 특별히 길지 않아 나는 반으로 잘랐다. 길면 5~10cm 정도 길이로 자르자.

손질한 열무를 깨끗이 씻는다. 열무는 너무 치대면 풋내가 나기 때문에 아기 다루듯 살살, 신속하게 씻자.


3. 잘 씻은 열무를 담고 켜켜이 소금을 뿌린다. 총 한 주먹 정도 사용한 듯. 한 시간 정도 방치하는데, 중간에 살살 뒤집어 가며 골고루 절인다. 


4. 감자 삶은 것을 물과 함께 믹서에 담아 고추, 마늘, 생강을 다 넣고 곱게 간다.


5. 절인 열무는 체에 받혀 물기를 빼는데, 절인 물은 버리지 말고 받아 놓는다. 


6. 열무를 김치통에 바로 담고 그 위에 믹서에 간 양념을 붓는다. 생수나 정수기 물을 열무 위로 자박하게 붓고 간을 본다. 싱거우면 절인 물을 붓는다. 

*나는 불안해서 절인 물을 다 붓고, 소금도 한 스푼 더 넣었는데, 결과적으로 짜게 되었다. 그래도 국물이 많지 않아 일단 그대로 두고, 먹을 때 탄산수를 부어 간을 조절했더니 더 톡 쏘고 맛있는 물김치가 되었다. 탄산수가 없으면 차가운 생수로 조절해도 된다. 그냥 김치통에 물을 더 부으면 더운 여름에 혹시 김치가 물러질까 봐 먹을 때 조절한다. 각자 편리한 대로 하면 된다. 

7. 저녁에 담가 아침에 일어나서 먹어보니, 살~짝 익었다. 그대로 김치 냉장고에 넣고 그다음 날 국수를 말았는데, 어머니가 해 주신 맛이 난다. 

열무만 건져서 밥을 비벼도, 국물과 같이 국수에 말아도 다 맛있어서 눈물이 난다. 

기름에 튀긴 돈까스 한 입 먹고, 열무김치를 먹으니 느끼함은 단박에 사라지고 개운한 청량감만 입안에 맴돈다. 여름철에 입맛이 없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다 어디에 모여 사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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