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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Jul 10. 2019

이야기가 있는 주방 10. 오이지

오이 덕후 어린이는 오이 덕후 중년이 되었다.

"오이를 그렇게 잘 먹으니 오이 농사짓는 집에 시집을 보내야겠다!"

상큼한 오이 무침만 있으면 밥을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손녀를 보고 우리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할아버지에게 대답했다.


"부잣집에 시집가면 오이도 먹고 다른 것도 먹을 수 있는데, 왜 오이 농부한테 가라고 하세요?"

하... 나는 어릴 때 너무 똑똑해서 어른들이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그 영특함은 지금 우주를 떠돌고 있는 듯.


엄마가 반찬으로 매콤새콤달콤한 오이무침을 해주시면 빙글빙글 돌며 좋아했다.

까끌까끌한 오이를 골라 물로 잘 씻고 오이 껍질을 드문드문 필러로 깎아 길게 반으로 썬다. 반달 모양으로 채 썰어 소금에 절이면 그 상큼한 오이향이라니..


어른이 되어서야 이 오이향을 못 견뎌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불행히도 지금 나의 두 아들들이 그렇다. 이 맛있는 것을 나와 남편만 먹는다.


오이무침하다 골뱅이도 썰어 넣고 맥주도 가져와서 마시고 피부가 좀 칙칙하다 싶으면 얇게 썰어 오이팩도 하니, 나무처럼 오이도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게 주는 존재다.


이런 오이 덕후도 오이지는 그다지 즐기지 않았는데, 소금에 삭힌 맛을 아직 몰랐던 듯하다.

40이 넘으니 시래기니 곤드레니 하는 묵나물(말렸다 먹는 나물)의 맛을 탐하게 되면서 오이지도 그렇게 혀에 스며들게 되었다. 항상 누가 주면 먹곤 했던 오이지를 직접 담가보니 아주 간단해서, 올여름에는 50개를 담갔다.


시장에 가면 오이지용 오이를 반접(한 접은 100개, 반접은 50개)씩 파는데, 너무 무거워서 엄두가 안나 10개, 20개씩 담그다 보니 어느덧 50개가 되었는데, 벌써 반을 먹어치웠으니(주범은 나!)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반접을 사 와야 하나보다.  여름 반찬으로 이만한 것이 없음!

삼겹살과의 어울림은 명작의 반열에 오른다. 느끼함을 잡아주어 고기가 끝도 없이 들어간다! 그런데, 오이지가 없어도 끝도 없이 들어가는게 문제..




*오이지 담그기

재료 :  오이 10개 기준. 물 3리터, 소금 300ml(물 : 소금 = 10:1)


1. 가시가 살아있는 싱싱한 오이를 사서 깨끗한 물로 잘 씻는다. 씻지 말고 그대로 하는 방법도 있으나 나는 씻는다.


2. 큰 곰솥에 물과 소금을 넣고 팔팔 끓인다.


3. 물이 다 끓으면 불에서 내리고, 씻어서 물기를 닦은 오이를 물이 뜨거울 때 곰솥에 바로 투하. 누름돌로 눌러 놓는다. 누름돌이 없으면 그릇으로 눌러 뚜껑을 덮고 무거운 것을 올려 소금물에 오이가 완전히 잠기도록 한다.

4. 다음 날 오이만 건져 김치통에 넣고 냉장고로 보낸 후, 소금물은 그대로 다시 끓여 반드시 식힌 후에 오이를 담아 놓은 밀폐용기에 부어준다. 다시 냉장고로 보내면 끝!! 혹시 일반 냉장고에 보관하실 분들은 이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하면 좋다.

너무 뿌듯하다.




*밥도둑 오이지 무치는 방법


1. 오이를 길게 반으로 잘라 반달 모양으로 썬다.

무시무시해 보이는 중식도는 속이 후련하게 잘 썰린다.

2. 썰어놓은 오이지에 올리고당, 물엿 종류를 넉넉하게 두어 바퀴 휘휘 뿌려 섞어준다. 엄마가 무쳐 준 오이지가 꼬독꼬독 맛있었다면 그건 엄마가 죽을힘을 다해 꽉 짜주셨기 때문이다. 나도 해보다가 너무 힘들어서 삼투압의 힘을 빌린다. 넉넉하게 뿌려도 오이지에서 나온 물과 같이 버리기 때문에 달지 않다.

3. 오이에서 물이 빠질 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이켜 보자. 나는 소중하고, 내 손목도 소중하니까~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사는 성인이라면 낮에는 카페인, 밤에는 알코올!이라고 합리화해본다.

10분 정도 지나 오이지를 채반에 받쳐 손바닥으로 몇 번 꾹꾹 눌러주면 물이 많이 빠진다.

4.  다시 볼에 옮겨 고춧가루 2/3 밥 수저, 참기름 1/2 수저 정도를 넣고 잘 버무린다. 양념은 입맛대로 조절 가능. 아주 간단!

5. 무쳐놓은 볼에는 모든 요리의 순수 에센스가 남았다. 바로, 양념!

밥 두 수저를 넣고 양념을 닥닥 긁어 비벼 지나가는 남편에게 먹인다. 숟가락도 정겹다.


여름엔 오이지 하나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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