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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Sep 30. 2019

이야기가 있는 주방 12.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

그 시원~함에 대하여

우리 아빠는 경상도 사나이. 어릴 때 먹던 맛을 못 잊어 엄마에게 김치에 갈치 속젓을 넣어봐라, 청각을 넣어봐라, 국은 이렇게 끓여봐라, 여름엔 호박잎에 강된장을 해 봐라.. 항상 요구사항이 많았다.


엄마는 설에 만두 빚고 추석에 토란국을 끓여 먹는 서울 여인이었지만 아빠를 만나 음식에 대한 지평을 강제로 넓혀야만 했다.

 

어려서부터 아빠 덕분에 익숙하게 먹은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은 고춧가루를 넣어 빨갛고 얼큰한 게 특징인데 서울식 하얀 뭇국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서울식 뭇국이 브랜드의 로고 없이 은은하게 멋을 낸 멋쟁이라면, 경상도식 뭇국은 큼직한 샤넬 로고가 박힌 선글라스를 끼고, 구찌의 로고가 프린트된 자카드 백을 들고 있는 화려한 멋쟁이의 느낌이랄까...


얼큰하고 무의 달큼함이 어우러진 데다 무의 시원함과 소고기의 부드러운 기름기가 합쳐져 갓 지은 밥을 말아먹으면 ‘으아~시원~하다’는 아재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무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당도가 더욱 높아지는데 아직 겨울무가 나올 시기는 아니지만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니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이 생각난다.


남편도 부산 사람이라 이 국을 좋아하는데, 결혼하고 시댁에 가서 어머니가 무를 써시는 모습을 잘 관찰해 보았다. 친정어머니는 서울 사람이라 무를 네모 반듯하고 납작하게 써시는데, 시어머니는 무 자체를 연필 깎듯이 깎아 내신다. 이걸 '무를 삐진다'라고 한단다.


이렇게 무를 삐지면 모양이 불규칙해지며 노출되는 표면적이 훨씬 넓어진다. 결국 무의 시원함과 달큼함이 국물에 더욱 잘 우러나게 되는 것이다.


 입안에서는 수타면처럼 불규칙한 무의 식감과 아삭한 콩나물이 씹히고 얼큰하고 구수한 국물이 합쳐져 목을 타고 뱃속으로 흘러가며 뭉쳐진 근육이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해장이 필요한 어른들에게 이 국을 권한다. 조리법도 아주 간단!



재료 :  무, 대파 한 대, 소고기 국거리로 300그램,  다진 마늘 1큰술, 고춧가루 1~2큰술, 국간장 3~4큰술, 콩나물 250그램 정도, 물


만드는 방법

1. 무를 연필 깎듯이 삐진다.


2. 냄비에 참기름과 핏물 뺀 소고기를 볶는다.

3. 고기 겉면이 익으면 삐져놓은 무와 고춧가루를 넣고 중 약불에 볶는다. 고추기름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4. 무가 살짝 반투명해지면 콩나물을 얹고 물을 붓는다. 물은 냄비의 8분쯤 붓는다.

5. 센 불에 뚜껑을 덮고 끓이다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낮추고 콩나물이 얼추 익은 냄새가 나면 약불로 줄여 40분 정도 푹 끓인다.

6. 다 끓으면 다진 파와 마늘을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보며 한 소끔 더 끓인다.


7. 뜨근한 국물과 밥심으로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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