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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May 09. 2019

이야기가 있는 주방 04. 파김치 예찬

To infinity and beyond!

향신채를 워낙에 좋아하는터라 우리 집에는 파김치가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다.

바쁘면 사다 먹고, 여유 있으면 담가 먹는데 이 파김치의 어울림은 무한하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쌀, 구황작물 등 식재료의 종류에
구이, 탕, 찜, 볶음 등 조리 방법에 구애받지 않으며
완벽한 하모니를 자랑한다.  


어제는 돼지고기 목살을 구워 곁들였는데, 돼지고기 특유의 향과 기름기가 파의 알싸함과 어우러져

그 맛을 최고로 끌어올린다.
김장김치와 같이 구워서 김치랑 한 입, 파김치랑 한 입.

밥은 안 먹었다고 죄책감을 덜어보지만 체지방량은 덜어지지 않는다.


봄이 오다가 망설이고 오려다 주저하는 날씨에 닭곰탕을 끓였다.

통통한 닭을 잘 손질해서 1시간 반 동안 푹 고으면 뼈와 살이 자연스레 분리된다.

이 살을 결대로 죽죽 찢어 소금 후추 간을 한 후 국물과 합쳐 한 번 더 끓인다.

흰쌀밥을 그릇에 담아 닭곰탕을 붓고, 대파는 송송 썰어 그릇에 소복이 담아 욕심껏 덜어 위에 얹는다.

밥알과 국물이 잘 섞이도록 저어 한 수저 뜬다. 짭짤하고 기름기 도는 국물에 밥알이 한 알 한 알 적셔져 그 위에 파김치를 얹어 먹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라면에 배추김치만 먹어왔는가. 그렇다면 인생의 맛을 반 만 아는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꼬들하지 않게 끓여 냄비째로 30초간 불을 끄고 뜸을 들이면 살짝 과하게 라면이 익는다.

수저 위에 라면을 올리고 파김치를 얹어라. 그리고 먹고 느껴라.
천국이 여기 있다.


이도 저도 귀찮은 날, 쌀을 잘 씻어 냄비밥을 해보자. 바닥을 살짝 눌러 누룽지도 조금 만들자.

이제 주걱에 물을 묻혀 흰밥만 밥공기에 동그랗고 소복하게 한 공기 담아보자.

뜨끈뜨끈하게 뜸이 들은 하얀 밥 위에 차가워서 냉정하지만, 그 맛은 뜨거운 파김치를 얹어보자.

액젓의 콤콤함과 파의 아린 맛, 잘 불은 고춧가루가 쌀밥의 단맛과 합쳐져 입속에서 축제를 벌인다.


낮잠을 한 숨 잘 자고 일어나, 아까 한 냄비밥의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눌은밥을 끓여보자.

구수한 냄새가 집 안에 퍼진다. 이건 냄비째 먹도록 하자.

입천장이 까일 정도로 뜨거운 눌은밥에 파김치를 먹어보자. 갓 지은 쌀밥과는 또 다른 멋이 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좋아하는 군고구마.

오븐, 에어프라이어, 직화냄비, 이도 저도 없으면 코팅 벗겨진 프라이팬에 종이 호일 깔고

노란 꿀이 나올 때까지 약불에 천천히 오랫동안 구워보자.


손바닥이 벗겨지고 혀도 델 것 같은 뜨거운 고구마 한 입에 냉정한 파김치 한 입을 먹어보자.

단짠단짠의 정석이 여기 있다.

아직 핫한 고구마로 심장까지 뜨겁다면 미리 따라놓은 막걸리 한 입을 마셔서 그 열기를 내려보자.

머리가 차가워진다. 냉철한 이성이 깨어난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열정의 고구마를 파김치와 먹어보자.


사는 거 별 거 없다, 맛있게 살자.



*파김치 레시피


재료 : 쪽파 한 단, 액젓 70ml, 고춧가루 100ml, 찹쌀가루 1Ts, 물 200ml, 설탕 1Ts, 양파 간 것 3Ts


1. 쪽파 한 단을 사서 잘 다듬는다. 드라마를 보며 다듬으면 진도가 잘 나간다.



2. 씻어서 물기를 빼고 무게를 재보니 530 그램 정도. (이 레시피는 500그램 전후 일 때의 계량)


3. 찹쌀가루, 밀가루, 쌀가루 중 하나를 골라 밥 수저 1스푼을 물 한 컵에 개어 약불에 저어가며 풀을 쑨다.


3. 위생비닐에 액젓 70ml를 넣고, 쪽파를 세워 담아 흰 부분만 10분 정도 절인다.

   그다음엔 눕혀서 돌려가며 절인다.



4. 풀이 식으면 고춧가루 100ml(매운 게 싫으면 조금 덜어 낼 것 ), 양파 간 것 3스푼 정도, 매실청 2스푼(설탕은 1스푼)을 넣고 고춧가루가 잘 불도록 기다린다.



5. 파가 대충 절여지면 숟가락으로 양념을 퍼서 흰 부분 위주로 처덕처덕 발라준다. 꼼꼼하게 하지 않아도 대강 바른 후 비닐을 이리저리 굴리면 골고루 묻는다. 다른 일 하며 왔다 갔다 하면서 이리저리 뒤집어 준다.



6. 저녁에 담그면 밤 새 방치하고 아침에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는다.


*쪽파는 소금에 절이지 않고 액젓에 절이는데 뿌리 부분은 두껍고 잎 부분은 약해서 골고루 절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담갔는데 설거지도 줄이고 너무 쉽게 담근다.

내 머리를 내가 쓰다듬으며 요즘 열심히 해 먹고 있다.


*파뿌리 함부로 버리지 마라, 너는 한 번이라도 주변의 악취를 없애 본 적이 있는가...

이 파뿌리만 잘 씻어 모아서 냉동하자. 하루 정도 물에 담가 놓으면 흙이 많이 떨어진다.

말리면 좋으나 귀찮으면 버리게 되니 냉동실로.
멸치육수, 고기 수육, 닭곰탕 등 잡내 제거가 필요한 모든 요리에 탁월한 효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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