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와 향기, 그 사이 어디쯤
시래기를 삶아 껍질을 벗겨내고 있는데, 아들들이 배 깔고 누워 책을 보다가 말한다.
‘시래기 삶은 냄새가 구수하네요.’
껍질 벗기느라 힘들었는데, 냄새에 행복하다니 할 만하네.
나는 후각이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같은 향수를 써도 개인의 체취에 따라 근사한 향으로 더 좋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 그 향수가 맞나, 할 정도로 이상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걸 미세하게 구분하는 정도.
사랑하던 사람이 쓰던 향수를 헤어진 다음 날 뿌려 보아도, 내 체취로는 그 향이 나질 않으니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향기에 대한 추억도 많은 편이다.
사람의 귀 뒤부터 목덜미까지는 아주 강하게 체취가 느껴지는데, 그래서 아기들이 어렸을 때 목덜미에 코를 대고 한참 안고 육아의 피로를 달랬다. 그 어떤 향보다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어린 시절에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2층 발코니에 서서 해가 뉘엿뉘엿 질 때 붉은 석양을 바라보면, 동네 어딘가에서 그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멸치젓 달이는 냄새가 나곤 했다.
그 향이 너무나 이질적이고, 고약해서 몸서리를 치곤 했는데 시집가서 시어머니께 ‘달인 액젓’이라고 선물 받고서야 정체를 알게 되었다. (음식에 넣으면 한 스푼으로도 감칠맛이 확 도는 마법의 액체)
그 향의 정체를 몰랐을 때에도 식당가 골목이나 시장통에서 액젓 달이는 냄새가 나면, 머릿속은 따뜻한 석양이 지는 풍경이 떠오르며 맘이 편안해졌다.
향이 주는 기억은 이런 것이다.
몇 년 전, 딥티크에서 ‘롬브르 단 로’라는 유니섹스 향수를 구입했는데, 새벽에 이슬을 머금은 장미 꽃잎과 줄기 향, 이끼와 흙냄새가 강하게 난다.
이걸 뿌리고 출근하면서 아이에게 볼 뽀뽀를 하자
둘째가 ‘ 엄마한테 냄새가 나요.’
‘엄마한테 향기가 나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어쩌니?’
‘엄마한테서 우엉 깎을 때 나는 냄새가 나요’
이 놈, 절대후각이다.
요즘 김밥집에서는 시금치 대신 오이나 부추를 넣은 김밥을 파는데, 우리 집 아들들은 꼭 김밥에는 시금치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해서 소풍날엔 바빠도 김밥을 싸주게 된다.
재료 준비할 때, 우엉조림은 반드시 생우엉을 사다가 껍질을 벗기고 잘게 채 썰어, 식초물에 떫은맛을 우려낸 후, 한 시간 이상 조리는데..
시판 우엉조림과는 비교도 안 되게 향이 좋기 때문에 이런 수고를 하게 된다.
칼로 우엉 껍질을 쓱쓱 벗길 때 나는 향을 니치 향수에서 조우하게 될 줄이야.
그걸 둘째가 정확히 집어내서 출근 내내 웃었다.
향기에 대한 기억은 굉장히 오래간다. 후각이 살아있는 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오늘 삶은 시래기와 곤드레 나물의 향을 아이들이 기억하겠지.
시간이 오래 흐른 후에 식당 골목을 지나다 이 향을 맡으면, 엄마는 주방에서 나물을 삶고 다듬고,
따뜻한 거실 카펫 위에서 배를 깔고 책을 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