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니면 돼.’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예능을 통해 유행했다고 알려진 이 말은, 사실 사람들의 마음 기저에 깔린 것을 예능이 반영했을 뿐이리라. 다른 사람이 곤란을 겪는 것을 보면서도 내 일이 아님에 안도하고 그와 나를 구분 짓는다. 심지어 '그 사람은 그런 일을 당할 만하다'라고 합리화하면서 일말의 죄책감마저 털어버린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소리쳐 봐도 아무도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나를 위해 싸워주지 않는다면? 혹은 소수 몇몇이 내 옆에 서 준다 해도 힘센 자들의 오만과 폭력에 무력화된다면? 다수의 사람은 그 모습을 그냥 구경하거나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기가 막히게 닮는다. 하루는 학교 점심시간에 불량한 3학년 선배가 1학년 후배를 불러 협박하고 때리는 일이 있었다. 주위에 많은 아이가 있었다. 대부분 1학년이었는데 그들은 말리지 않고, 신고도 하지 않았다. 분명 겁이 났을 것이다. 끼어들어 말릴 용기도 없고, 선생님을 불러오면 선배한테 찍혀서 보복당할까 봐 걱정했을 것이다. 상황을 제대로 모르면서도 '맞을 만한 행동을 했겠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소동이 끝났을 때는 관심을 끊고 다시 자신들의 교실로 돌아가 5교시 수업을 들었을 것이다.
덩치 크고 힘센 3학년 선배가 약한 후배에게 부당하게 폭력을 행사했는데 하마터면 선생님들이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정상적인 학교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도 그렇지 않나? 아이들한테
"너희, 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어?"
라고 꾸짖을 수 있을까? 만약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누군가가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던 우리에게
"당신들은 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나요?"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정치 · 사회 문제에 아예 관심 끊고 사는 사람들은 친구가 선배한테 맞아도 교실에서 나와 보지도 않고 자기 할 일 하는 학생과 닮았다고 하면 너무 지나칠까? 누군가 괴롭힘을 당해도 그건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치부하면 그만인 걸까? 물론 구조 ·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문제를 알리는 목소리를 내야 가능할 것이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알아서 해결할 거야.’
라는 생각으로 침묵하는 것은 문제를 방치하고 키울 뿐이다.
제도는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학교에도 스쿨폴리스 제도가 있어서 점심시간에 학부모님 두 분이 교내 순찰을 다니신다. 그러나 학부모님이나 교사의 눈을 피해 폭력행위가 발생한다면 신고를 통해 틈을 더 촘촘히 메우기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부당하게 폭력을 당한다면 모두 달려들어 말리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우리 학교 · 사회에서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며,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을 강하게 규탄해야 한다. 만약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나의 동료들이 나를 위해 싸워주고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내가 속한 공동체를 더욱 사랑하게 한다.
폭력은 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상처를 준다. 우리 학교 상담 선생님 말씀으로는 학교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이 상담받으러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 아이들도 충격을 받고 마음이 힘들다. 당하고만 있고, 지켜보고만 있는 이들은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진다.
우리 사회 어른들의 모습을 쏙 빼닮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미안하다. 이러다 혹시 폭력에 익숙해지고 폭력을 당연시하게 될까 봐 걱정이 크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와 어른들의 모습을 아이들이 그대로 답습하게 될까 봐 두렵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과 태도는 언젠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어른들이 먼저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