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파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 Sep 28. 2021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욕망

파리일기 #4


폭풍이 한 차례 지나갔다.



할 일이 정말 많아서 매일 12시를 넘겨 잠 들었다. 넘긴 정도가 아니라 3-4시가 기본이었다. 이렇게 잠을 자고 다음날 학교 가는 지하철에 오르면 눈이 마주친 누구든 자동적으로 싫어하게 되는 마법을 체험할 수 있다. 넌 왜 날 쳐다보니, 내가 지금 잠을 2시간 잤다고 무시하니, 내가 비효율적인 걸 너도 알고 있니, 얼굴에 티가 나니, 같은 생각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4월 중순이 됐다.



나는 한동안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욕망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 괜찮음이란 게 애매하고 뜬구름 같은 개념이라 사실 나는 무언가 잡히지도 않을 허공에다 손을 뻗고 계속해서 허우적댔다. 십대 시절에 괜찮은 인간이란좋아하는 가수가 하나쯤 있고, 친구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공부도 곧 잘 해내는 정도였을까. 그리고 이십대에 괜찮은 인간은 좀 더 애매해서 마찬가지로 학교 생활은 잘 하고 머리는 좀 더 컸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 정도는 하나 있고, 친구와도 두루두루 잘 지내며, 미래는 그럭저럭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는 그릴 줄 알아야 하는 인간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 이십대기 때문에 아직도 저 조건들에 시달린다만 자신있게 얘기하건대 전보단 '괜찮은 인간이 되어야만 하는 저주'에서 좀 벗어난 듯 싶다. 



그 확신은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보지 못 한 내가 만나본 최고의 현자인 나의 엄마와 대화하면서 문득 찾아왔다. 파리로 떠나기 전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네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는 자주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우리의 주제는 매번 여러갈래로 갈리지만 엄마는 항상 내 생각을 궁금해했다. 신기하게도 우린 성향이 정말 달라서 같은 일을 겪고도 다른 생각을 한다. 엄마 차를 타고 가다 앞에 누가 불쑥 끼어들면 나는 아, 저 사람 뭐야, 하고 당장 불평을 하는 반면 엄마는 아이코, 한번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말 예쁘게 하라며 타이른다. 같이 여행을 가서 기차가 마비돼도 나는 대뜸 역무원에게 가서 질문을 해대고 엄마는 캐리어에 앉아 기다린다. 우린 좋은 균형을 만들어낸다. 나는 엄마 덕분에 씩씩한 장군처럼 휘젓고 다니고 엄마는 나 덕분에 차분히 앉아서 기다린다.



그러니까 엄마가 나에게 내 생각을 물을 땐 정말 다른 견해가 필요해서다. 나는 또 당당해져서 엄마 이건 이래 이래서 이런거야 그건 그래 그래서 저래 하고 열변을 토하고 엄마는 오, 그렇구나 하고 내 말을 들어준다. 가끔 내가 또 샛길로 빠져서 씩씩대면 아니, 그래서 뭐냐고, 하고 끼어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엄마랑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 내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고 나와는 너무 다른 엄마 반응을 보면서 내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어서 좋다. 정답을 중심에 둔 괜찮음의 범주는 이제 없고 난 그저 행복한 사람이면 된다. 괜찮은 사람 말고 행복한 사람. 괜찮은 거 말고 나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들과 사람들에게 집중하면 되는 것이로구나. 



내 결론은 그랬다. 온전히 내 세밀한 숨소리에 집중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나를 살게 하는 길이겠구나. 인터넷에 떠도는 웰빙 상식 따라하는 것 말고 내가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나를 가져다 놓는 것,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면서까지 나를 변명해야 하는 사람들과 멀어지는 일, 그리고 내가 왜 '괜찮지 않'고 어떻게 해야 '괜찮을' 것 같은지 서술해야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들에 나를 기꺼이 투자하는 것. 그게 나도 죽이지 않고 상대도 죽이지 않으면서 같이 숨 쉬며 사는 길이겠거니 한다.



신형철은 폭력이 '어떤 사람이나 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태도' 라고 했다. 저 '어떤 사람'엔 나도 포함이다. 내가 안 괜찮은데 무작정 '괜찮음'을 강요하면 그건 나에게 못 할 짓이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이나 사람이 있거든 '저리 가'는 못 할 지라도 '잠깐, 나 안 되겠는데' 하면서 숨 돌릴 틈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내가 섬세하게 대할 수 없을 상대라면 기꺼이 떠나보내고, 최대한 섬세하게 내 감정과 숨을 고를 줄 알아야겠다.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욕망은 어느새 버릇이 되어 죽을 때까지 못 버리겠지만 어쨌거나 그냥 괜찮은 사람 말고 '버틸 수 있을 정도까지만'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욕망 정도면 할 만 하겠다. 나도 상처 안 받고 남의 마음에도 생채기 내지 않으면서, 찌를 것 같은 마음이 들걸랑 한 발짝 물러서서 숨 고를 수 있는 여유도 가지자.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