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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an 31. 2022

타오른다

나는 지금 바닷가 캠핑장에 있다.


천천히 걸어 바다로 나갔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해는 작고 동그랗다. 오렌지빛으로 세상을 온통 물들이며 바다를 향해 몸을 숨기는 중이다.


겨울 갯벌에 마스크 쓴 아이들이 조개를 잡는다. 티없이 웃는 아이들 사이로, 해는 오늘 할 일은 다 했다며, 아쉬운 내 맘도 모른 채,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그래, 내일이면 다시 볼 수 있겠지. 아쉬운 마음으로 먼 하늘을 바라본다.

나는 언제나 석양을 사랑한다.

아스라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슬픔과 쓸쓸함을 생각한다.




캠핑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 캠핑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장작불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주변이 차가워지면 화로대를 펴고 마른 장작을 쌓는다.

토치를 켜고 장작에 불을 붙인다. 좋은 장작과 나쁜 장작은 이때 알 수 있다.

볕에 잘 마른 장작에는 금새 불이 붙고 흔들림 없이 높이 불꽃이 올라온다.

하지만 습기를 머금은 장작에는 쉽게 불이 붙지 않는다. 매운 연기만 허공에서 사라진다.

마음에 병을 가진 사람과 같다.

가까이 하면 내 맘도 같이 아파온다.




나는 쉽게 타인의 고통에 전염된다. 내가 그렇다는 걸 안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주변의 누구라도 힘들어 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내가 아프고 힘들어도 타인의 고통부터 해결해야 살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먼저 지켜야했다.


일단 내가 집중할 사람을 정했다.

가족, 그중에서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래도 힘이 남으면 다른 이들을 돌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 둘의 요구만 해결하기에도 에너지가 모자랐다.

요즘처럼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할 때는 더 그렇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캠핑짐을 싼다.

그리고 이렇게 자연 속에 나를 놓아둔다.



타오르는 장작을 보며, 온몸을 태우는 나무를 생각한다.

불꽃은 아름답다.

겨울 장작은 따뜻하게 피어오른다.

연기는 검은 하늘로 긴 꼬리를 남기고 사라진다.

그 끝에 슬며시 초승달이 나를 내려다 본다.


해는 사라졌지만,

나무는 불타 연기가 되었지만,

달은 머리 위에서 나를 지켜준다.


잘 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나는 달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라져간 에너지가 조금씩 차오른다.

나는 그렇게 다시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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