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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r 04. 2022

자기만의 시간


초등 4학년이 된 아이들의 긴 방학이 끝이 났다. 5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재택근무 중인 남편과 아이들까지 네 식구가 종일 한 공간에서 지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내향성 사람인 나는 혼자 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데,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어제 읽은 <내향인 공통의 생각>에서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외향인은 타인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반면 내향인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얻는다.


나 역시 그렇다. 오래전부터 혼자 하는 일들을 좋아했고, 그 시간이 마음 편했다. 누군가에게 맞추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해나갈 수 있었다. 혼자 등산을 하는 게 세상 무엇보다 좋았고, 마라톤을 뛸 때도 혼자 하는 일이라 좋았다. 혼자 쇼핑을 하고, 극장에 가고, 밥을 먹는 게 편했다. 커피숍에 홀로 앉아 책을 읽거나 사람을 관찰하고, 침묵 속에 나를 놓아두는 일은 피곤하거나 어색한 일이 아니라, 에너지를 충전하고 지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내가 그랬다는 걸, 혼자인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었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어울리며 떠들고, 무리에서 인정받고, 함께 배우고, 남보다 앞서는 것 역시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내향적이라고 한다면, 믿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고, 새로 시작한 모임에서도 내가 힘들다고 느끼면 바로 발을 뺄 만큼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아니 여유라기보다는 내가 살기 위한 절실함이랄까. 살면서 누군가는 나를 통해 에너지를 얻었겠지만, 나는 그만큼 내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직장 생활을 하며 "00씨는 항상 에너지가 넘쳐서 좋아!"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던 나였다. 그게 결국 나 자신을 소모시키는 일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때는 젊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힘든 줄도 몰랐었지만 말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나의 한정된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모두 주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벅찬 경우가 많다. 방학 동안 아이들을 케어하며, 편하고 즐겁기도 했지만, 가끔은 너무 지쳐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가끔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마음을 채웠다.



물론 한계는 있다. 겨울은 특히 그렇다. 추위에 지독히 약한 나는 추위 때문에 에너지를 얻기는커녕 더 소모하기 일쑤였다. 몸을 덜덜 떨고 나갔다 오면 오히려 더 힘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엄마니까, 나는 다시 힘을 내고 아이들 곁에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불안하기는 하지만,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무작정 집에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대신 점심은 먹지 않고 하교하기로 했다. 원래 입이 짧아 급식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라 오히려 좋아한다.



11시 40분이면 아이들이 집으로 오기 때문에, 오전에 3시간 정도 내 시간이 생겼다. 아이들이 가고 나면 아침 먹은 것들을 치우고, 집안 정리를 하다 보면, 그나마도 시간은 줄어든다. 최대한 잡일을 안 하고, 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방학 내 늦잠을 자고 게으름을 부린 탓에 적응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찾게 된 이 시간이 지금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다. 이렇게 앉아서 마음속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아이들이 옆에 있어도 글을 쓰기는 했지만, 신경은 늘 아이들을 향해 있는지라 솔직히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에게 자신만의 공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얘기했지만, 나에겐 '자기만의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낯선 타인에 둘러싸여 있어도, 내가 혼자일 수 있는 시간, 내가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시간이라면, 그게 꼭 나만의 공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힘들 게 얻은 나만의 시간을 어떻게든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 아이들과 약속한 동화도 써야 하고, 공모전 준비도 해야 하고, 글도 꾸준히 올려야 한다. 영어 공부도 필수이고, 다이어리와 가계부 정리도 그 시간에 끝내야 한다. 좋은 루틴을 만들기 위해, 올해 초부터 노력 중이다. 루틴을 포기하지 않도록, 스스로 끊임없이 다짐하고 있다.



나만의 소중한 시간이 부디 꽃을 피울 수 있기를

이 봄이 찬란하게 빛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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