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중국어원서를 고를지 고민한다면_2
“최적의 경험인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메타인지, 즉 내 수준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며 과제의 난이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 완벽한 공부, 고영성
중국어 원서를 처음 읽기 시작할 때 책을 고르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위화의 『인생』처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중국 작가의 작품이나 중국에서 잘 알려진 유명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익숙한 국내외 베스트셀러의 중문판, 예를 들어 《解忧杂货店》이나 《小王子》 같은 책을 고르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어원서 읽기를 이제 막 시작한 이들일수록 어려운 문학작품보다는 쉽고 만만한 책을 많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흔히 원서라고 하면 이렇게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로 작품 제목이나 작가의 이름이 알려진 책 혹은 묵직한 주제가 담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위화의『인생』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解忧杂货店》)』모두 상당 분량의 소설책이다. 그렇기에 평소 책을 많이 보지 않았다면, 이런 책들은 나에게 익숙한 내용인지 아닌지를 떠나 일단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편, 《小王子》같은 책은 아무리 내용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해도, 번역서이기 때문에 이름이나 고유명사가 중국식으로 음역 되거나 생소하게 변형된 경우가 많아, 초보자 입장에서는 의외로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베스트셀러의 경우 많은 대중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책이 맞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 나라 국민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중국어 원서는 중국에서 정규 교육 과정을 받고 있거나 받은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로 담긴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를 학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동일한 책들이 마냥 쉽게 느껴질 수만은 없다.
위화가 아무리 서민들에게 친숙한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라고 해도 처음 원서를 읽는 사람이 <제7일>이라는 작품부터 읽으면 재미를 붙이기 힘들 수도 있다. 장례식이나 장례 절차와 관련된 단어들이 초반부터 쏟아져 나오고, 생과 죽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세계관 자체를 이해하는 데 애를 먹을 수 있어 도무지 재미를 붙이기 힘들 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어로 된 책이든, 중국어로 된 책이든 평소 책을 많이 읽지 않던 사람이 중국어를 공부하겠다고 갑자기 두꺼운 중국어 원서를 무작정 펼쳐 들게 되면 책의 내용에 몰입하지 못하고 원서 읽기 자체를 포기하게 될 수 있다. 독서나 중국어학습 중 어느 한쪽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토 슈이치는 자신의 저서에서 “언어 실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려운 책을 읽으려고 하면 수고와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면서 외국어를 공부할 때 쉬운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문학적인 소설을 읽으면 물론 사고력을 키울 수 있고, 문학적인 묘사를 통해 다채로운 표현을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중국어 원서 읽기 습관을 유지하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어려운 문학을 소화하려고 끙끙대고 앉아 있을 시간에, 쉽고, 얇고, 공감이 가서 재미있게 느껴지는 원서들을 차고 넘치도록 읽을 수 있다. 그렇게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읽어보는 과정이 있으면, 그 사이에 중국어 실력이 자연스럽게 쌓여가고, 문장을 이해하는 감각이 몸에 배게 된다.
가토 슈이치는 대부분의 문학서가 전문적인 지식을 담고 있는 논문이나 전문서보다 훨씬 어려우며, 어학적으로 신문이나 잡지의 글보다도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문학에는 개성적인 문체가 쓰이며, 은유와 비유가 많고 같은 것을 표현할 때도 좀처럼 쓰이지 않는 단어를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필요하고 난해한 해당 국가의 소설이 아니라 당장 필요하고 쉬운 책을 읽어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에세이는 어려운 소설에 비해 글이 잘 읽히는 편이다. 물론 에세이라고 해서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한 경험이거나 흔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글이 많기 때문에 책에 담긴 내용이 잘 이해되거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또한, 꼭 많은 사자성어나 어려운 어휘를 쓰지 않아도, 복잡한 문장 구조나 문학적 표현이 많지 않더라도 ‘말하듯이’ 구술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언어로 담아낸 글이 많기 때문에 책 속의 중국어가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거나 울림을 주는 문장이 많아 자연스럽게 책 속의 문장을 따라서 말해보거나 써보고 싶은 의지가 불끈 솟아나기도 한다.
원서를 고를 때 무작정 중국인에게 널리 읽히는 국민 필독서나 문화 대혁명 시기의 중국 문학 작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당장 필요하고 쉬운 책, 가령 《断舍离》같은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이나 《有些事现在不做, 一辈子都不会做了》 같은 삶의 태도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를 읽어 본다.
물론 처음 원서를 펼쳤을 때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중국 근현대 시기의 문학 작품을 펼쳤을 때처럼 눈앞이 캄캄해지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관심 분야나 삶의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책을 중국어로 읽다 보면 중국인 친구와 중국어로 더욱 편하게 깊고 넓은 대화를 나누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에세이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줄여준다는 점이다. 원서 읽기는 그 자체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다. 책 읽기 자체가 영상도 그림도 없고, 오직 글자에만 의존해서 글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데 중국어는 특히나 띄어쓰기도 없이 깨알같이 이어진 글씨들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한 두 페이지도 아니고 200쪽 이상 분량의 책을 모두 읽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에세이의 경우, 소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과 주제가 연결되는 내용이 아니라, 챕터별로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목차만 먼저 읽어보고 내가 마음이 끌리는 단원을 골라 읽을 수 있다. 《世界偷偷爱着你》, 木木의 《人生要经得起诱惑》와 같은 책들은 중국판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와 같은 책이어서 한 입씩 가볍게 맛보기 좋은 책이다. 《你最好的样子就是自己》역시 마음에 드는 한 편만 골라서 읽어보기에 적절한 책이다.
이외에도《精准努力》와 같은 자기 계발서를 읽을 수도 있다. 이런 책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맞다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기도 하고, 마침 듣고 싶었거나 필요했던 삶의 조언을 원서에서 만나게 되면서 그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기도 한다. 《好好生活慢慢相遇》혹은 《不急》와 같이 삽화가 가득 담긴 짧은 글의 그림 에세이도 처음 원서 읽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읽어보기 좋다. 한 숟가락씩 야금야금 떠먹듯이, 짬짬이 읽기에 적당한 분량이기도 하고 작가의 유머가 녹아있어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夜班便利店》처럼 옴니버스 형식의 책도 추천한다.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된 책이지만, 음식을 주제로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상태로 몰입하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심리적으로 친숙함을 느껴 부담감을 줄일 수 있고, '이제 이런 식으로 흘러가겠구나' 하는 감이 생기니까 읽으면서 원서 읽기에 대한 자신감도 커질 수 있다.
문학책은 중국어 원서로 읽을 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고, 해당 도서를 한국어 번역서로 봐도 분량이 상당하거나 내용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런 책을 무조건 중국어원서로 이해하며 보겠다고 쩔쩔매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 그 시간에 차라리 쉽게 느껴지는 책을 여러 권 읽으면 활용도가 높은 새롭고 유용한 중국어 표현을 많이 보고 익힐 수 있어 중국어 실력을 높이는데 더욱 도움이 된다.
“这表示我要喝很多种黑咖啡,才能慢慢分辨自己的舌头愿意跟哪种咖啡长期沟通?”
그 말은 제가 굉장히 많은 커피를 마셔 봐야, 내 혀가 어떤 커피를 더 마시고 싶어 하는지 천천히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이죠?
“如果你想开始喝咖啡的话,这可能是必须要走的路,
“당신이 커피를 마시는 걸 시작해보고 싶다면, 이건 꼭 거쳐야 하는 길이에요.
但是,”他举起右手的食指,像是话说到了重点,
“这条路要花多久去走,完全由你自己决定。”
하지만.” 그는 오른손 검지를 치켜들고 말을 마치려는 듯
“이 길을 얼마나 갈지는, 완전히 당신한테 달려있죠.”
소설 《六弄咖啡馆(카페 6)》에는 카페 주인과 손님이 ‘커피에 입문하는 방법’에 대해 나누는 대화가 나온다. 그 대목에서 주인장이 건네는 말 가운데, ‘(咖啡) 커피’가 마치 ‘중국어 원서’처럼 느껴졌고, 왜 다독이 필요한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주인장의 말처럼 중국어 원서도 여러 권의 책을 읽어 봐야 정독을 할 만한 책이 무엇일지 스스로 알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운 책에만 매달려 있지 말고, 이것저것 읽어 보며 원서의 여러 가지 맛을 느껴봐야 나와 잘 맞는 책을 더 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맛을 보려면, 쉽고 가벼운 책을 거리낌 없이 집어 들고 마음 가는 대로 다양하게 읽어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도 배울 수 있는 표현과 단어는 차고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