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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시간, Haku

교토 여행

by 우사기


여성스러움이 돋보이는 그릇이 좋아 눈여겨보고 있는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가를 만나기 위해 교토를 찾았습니다. 조용한 주택가 한 편에서 만나는 그릇 가게, Haku.

Haku는 숍과 공방이 함께하고 일주일의 며칠은 숍과 도예교실 공간으로 일주일의 며칠은 작가의 작업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입니다.

건너편 집의 근사한 담장이 평온한 그림이 되어주는 Haku의 커다란 창문이 참 좋았습니다. 많은 작품이 진열되어 있진 않았지만 작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작가와 인사를 나누고는 살짝 물어보았습니다.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혹시 오늘 도예 체험이 가능하냐고요. 오늘은 예약 손님은 없지만 가능하다고 하길래 바로 도예 체험을 해보겠다 했습니다. 사실 도예 체험을 꼭 하고 싶었다기 보다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이지요. 그렇게 나는 접시 세 개를 빗으며 작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살짝 취재하는 기분으로 던지는 질문에 작가는 정성스러운 대답을 주었습니다.

도예를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 부터라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그림을 좋아했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손으로 할 수 있는 평생 직업을 생각하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도예를 선택했고 도예를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했습니다.

독립을 하고 나서는 어느 레트로풍 건물에 작은 공방 작업실을 만들었다 했습니다. 그때 창가에 작품들을 몇 개 올려 두었더니 가끔 숍인 줄 알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있어 공방의 한 코너를 숍으로 만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10년 정도 지냈고, 이곳으로 옮겨 온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했습니다. 그리고 창 문밖 풍경이 마음에 꼭 들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2층은 주거 공간이고, 1층은 일을 하는 공간이고, 이곳은 그녀가 꿈꾸던 이상적인 공간이라 했습니다.

그릇에 음식이 담겼을 때의 여백을 소중히 여긴다는 콘셉트가 참 좋았다고 했더니, 활짝 웃으며 실은 여백을 참 좋아한다고 답해주었습니다. 그릇에 음식을 담았을 때의 여백도 물론이지만, 우리네 삶에서의 여백도 중요하기에 그런 이중적인 의미에서 이름 역시 [Haku]로 정했다 했습니다.

여백을 일본어로 요하쿠[余白 よはく]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요하쿠]라고 이름 지으려다 [요]를 빼고 [하쿠]로 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들으면 모두들 흰색을 연상하겠지만 것도 나쁘지 않고 나중에 의미를 알게 되면 더 와닿을 것도 같아서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에 귀여운 새와 물고기가 많은데

이유가 있을까요라고 물으니, 새도 물고기도 좋은 기운의 상징이라 우리들의 몸에 가장 소중한 음식들에도 그 좋은 기운을 함께 담아주고 싶어서라 했습니다. 그렇게 그 공간의 모든 것들에 작가의 또렷한 세계관이 묻어있었습니다.

작가의 이야기만큼 손에 전해지는 적당한 온도의 흙의 감촉도 참 좋았습니다. 마음의 평온을 찾아주는 명상의 시간 같았습니다. 내가 빗은 그릇들은 아마 한 달쯤 후에 온전한 그릇의 모습이 되어 내게 올 것입니다.

내가 빗은 그릇과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이 날 주고받았던 작가와의 대화와 살짝 비에 젖은 Haku의 창가가 다시 생생하게 떠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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