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여행
이네노후나야를 즐기는 방법은 몇 가지 있다.
여객선을 타고 한 바퀴 돌아도 좋고
수상 택시를 타도 좋고
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쉬엄쉬엄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도 좋다.
(물론 시간의 여유가 된다면 숙박을 해보는 게
가장 이곳의 정서를 알기 좋겠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을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배를 타는 것보다
사람들을 태운 배가 움직일 때마다
카모메들이 따라 몰려가는 풍경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는 게 더 좋았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니
점점 햇살이 뜨거워져
적당한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걷기로 했다.
걷다 보니 비현실적 풍경 속에서도
현실적 일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또 사람들이 사라졌다.
어부의 작업실인 후나야[舟屋],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생선을 건조하는 풍경이 눈에 띄게 늘었다.
멸치를 말리는 풍경도 새로웠다.
자전거를 탈 때 바라보던 풍경과
걸으며 가까이서 보는 풍경은 또 달랐다.
그 풍경에 잠시 나오시마도 떠올랐다.
이곳은 섬 느낌이 나지만
진짜 섬인 나오시마랑은 또 다른 느낌이다.
생활감이 더 묻어난다고 할까.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일상의 생활감이 더 짙어졌다.
관광객의 모습은 사라지자
동네 주민들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꽃에 물을 주는 할머니,
배 수리를 하는 듯 보이는 할아버지,
이쪽 집에서 저쪽 집으로
무언가를 운반하던 사람까지,
너무 평범한 일상에
눈길을 계속 주는 것도 미안해
그냥 스쳐지났지만 잔잔한 풍경들이 좋았다.
스쳐 지나며 간간이 인사도 주고받았다.
마을에 온 사람들을 환영해 주는 것 같은
따뜻한 인사였다.
길을 걷다
문이 열린 후나야와 만나면
조금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문 너머로 보이는 옅은 출렁임의 신기한 바다.
바다 빛깔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졌다.
방화용 빨간 양동이가
거의 집집마다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집은 물이 담겨 있기도 하고
어떤 집은 비어있기도 하고
어떤 집은 이렇게 수도 앞에 놓아두기도 했는데
파란 바다와 비교되어 빨간색이 더 선명해 보였다.
아무도 없는 언덕 위로도 올라가 보았다.
올라가다 보니 묘지가 보였고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은 집도 보였는데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살짝 오싹한 느낌이 들어
끝까지 오르는 걸 포기하고 중간에 내려왔다.
그래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후나야의 풍경은 멋졌다.
위에서 보니 집들이 중간의 작은 길을 두고
나눠진 것도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안쪽으로 안쪽으로 걷다 보니
돌아갈 길이 너무 멀어진 것 같아
그쯤에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발길을 돌리고 다시 한참을 걸었던 걸 보면
꽤 안쪽까지 가긴 간 모양이다.
자판기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질 때쯤에서야
문을 닫친 카페 건너편에서
테이크 아웃 커피를 살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준비해 준 것만 같은
특별 자리에 걸쳐 앉아서.
맥주는 아니지만 바다를 향해
힘차게 간빠이!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후나야의 내부가 궁금해졌다.
바다를 향해 앉아 있으면 어떤 느낌일까
모든 것들이 궁금했고
그 궁금증은 자꾸만 커져갔다.
그런 내게 어떤 일본 남자가 다가와
후나야의 내부를 보고 싶지 않냐며
커피 한 잔과 가이드 설명에 오백엔,
어떠냐고 물었다. (후나야 견학이다)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오히려 카페나 식당이 아닌 것도 맘에 들었다.
현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왼편에 응접실이 있었고,
그곳에서 캔 커피 하나를 받았다.
좁은 통로를 통과해 나오니
후나야는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입구 쪽에 식탁이 있는 걸 보니
한 쪽은 주방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고,
깊숙이 저 끝으로 바다가 보였다.
후나야 안은 배에 관련된 도구가 가득했고
도라에몽과 튜브도 있다.
바다가 있는 안쪽까지 들어와
다시 고개를 돌려 들어온 쪽을 들여다보니
다시 한번 후나야의 크기가 실감 났다.
바다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공간이다.
좀 전에 말을 걸었던 남자의 어머니가
가이드를 맡고 계셨다.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후나야를 둘러보는 내게
함박웃음을 지으시면
빨리 이쪽으로 와보라고 손짓을 하셨다.
가까이서 보는 후나야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여기가 바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그 자리다.
테이블 위에는 가이드에 필요한 자료가 놓여 있었고
그 걸 하나씩 펼쳐가며
아주머니는 열심히 후나야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지금 견학 중인 이곳은 에도시대 후기 (1861년)에
건축된 이네의 전통적 건축물이라고 했다.
사진으로 왼편의 집을 자세히 보면
살짝 곡선으로 휘어진 걸 알 수 있는데,
이것이 에도시대 후기 건축물의 특징이라고 한다.
옆 건물은 다이쇼 시대에 지어진 것인데
비교해 보면 에도시대 건축물의 휘어짐을 알 수 있다.
전복이 잘 숨어 있다는 곳도 알려주셨는데
물이 너무 맑아 아래가 훤히 보였다.
바다를 들여다보는 건 굉장히 흥미로웠다.
설명은 계속 이어졌지만
바다에 마음이 빼앗겨
중간 설명은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바닥에 앉아 시선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바다가 가장 예쁘다고 해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따라 해보았다더니
정말 바다가 신비롭게 보였다.
작은 규모의 후나야는 돌고래잡이 배를
큰 규모의 후나야는 고래잡이배를
보관했다고 한다.
고래가 그려진 그림책을 펼치며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설명이 끝난 후에는
천천히 쉬어가라고 하시며
후나야 안쪽으로 들어가셨다.
작은 테이블이
그렇게 나의 독차지가 되었다.
그곳에 앉아서 보는 바다는
잔잔하고 고요했다.
이토록 사치스러운 시간이 또 있을까
너무 비현실적인 풍경이
나를 자꾸만 바닷속으로 끌어당겼다.
고개를 돌려 본 생활감이 가득 묻어나는
옆집 풍경도 정겨웠다.
신비로운 동네다.
비현실과 현실을 오가는.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안쪽으로 들어오니
아주머니께서 다시 나를 붙잡았다.
에도시대의 건축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시며
구석구석 짚어가며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버스 시간이 촉박한 것 같아 나가보려는데도
좀처럼 놓아주시질 않았다.
이번엔 밖으로 나가
에도시대와 다이쇼 시대의
기와를 비교해 주셨다.
활기 넘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정겹고 따사롭던지
설명의 내용보다
아주머니의 에너지에 빨려 들어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이 나왔다.
다음에 오면 꼭 다시 들리겠다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견학이라기 보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로
떠나는 버스는
배차 간격이 한 시간씩이라
스케줄을 잘 짜야 한다.
다음 코스는
일본 3대 절경 중 하나인
아마노하시다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