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여행
사쿠라가 마음을 졸이던 때,
그때 그곳의 풍경이 참 예뻤다.
[릿세이 가든 퓨릭 교토]、
이제 곧 피어나기 시작한 사쿠라가
세월이 스민 건물과 너무 잘 어우러졌던 곳.
나는 여행을 마친 후에야
이곳이 1927년 완성된 릿세이소학교의 교사를
리노베이션 했다는 것을,
교토 시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쿠라 나무가 초록빛으로 바뀌고
아지사이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지던 어느 날,
이곳을 다시 찾았다.
1층 안쪽의 호텔로 이어진 문을 따라 들어가
안내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7층 로비가 나온다.
하얀 구름이 걸쳐진 히가시야마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그림 같은 교토의 풍경이
소리 없이 나를 반겨주었다.
7층엔 레스토랑이 있었다면
투숙객을 위한 라운지는 3층에 있다.
적당히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중간중간 호텔을 오갈 때도
밤 시간을 보내기도 괜찮다.
봄날에 보았던 조용하기 그지없던 그 정원은
날이 따사로워지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활기찼다.
예상과는 다르게 낮이며 밤이며
푹 쉬어가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분명 로케이션의 장점은 있었다.
덕분에 가능했던 청수사까지의 색벽 산책은
이번 여행에서 그 무엇보다 귀한 시간이었고,
그 못지않게 카모가와의 밤 산책도 좋았다.
최고의 뷰를 자랑했던 7층,
창 너머로 펼쳐진 카모가와 너머 풍경은
아침이 되자 더욱더 찬란하게 빛났다.
새벽 산책을 마친 후 맞이하는 조식 타임.
눈앞에 펼쳐진 뷰는 너무도 멋졌지만,
뜨거운 햇살은 숨이 막힐 만큼 강렬해
결국 나는 커튼을 내려달라 부탁한 다음에야
겨우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히가시야마의 아침 태양이 이토록 눈부실 줄이야.
[더 게이트 호텔 교토 다카세과와 바이 훌릭]
도쿄 일상,
한때 나의 참새 방앗간이었던 우니르 카페는
[인섬니아] 호텔의 로비와 함께였다.
(엄밀히 말하면 호텔의 1층이 카페였던 샘이다)
우니르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곳만의 비일상적인 여행 느낌.
카페 안쪽에 자그마한 호텔 프런트가 있었고
그 안쪽으로 룸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빨간 소파에 앉아
트렁크를 끌고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작은 호기심으로 엘리베이터 너머의
세상을 상상했던 그런 날들이 있었다.
언제가 한 번 머물러 보고 싶었던
도쿄의 그곳은
지금은 아쉽게도 재개발 계획으로
건물 자체가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니
인섬니아 호텔이 교토에 오픈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교토의 [인섬니아]는
도쿄와 닮은 듯 느낌이 조금 달랐다.
교토는 1층에 카페는 없지만
대신 1층 라운지를 24시간 오픈했고
그곳엔 커피와 음료는 물론
다양한 종류의 빵이 준비되어 있어
투숙객만이 이용 가능하다는 걸 빼면
그 모습은 카페와 다름이 없었다.
체크인을 할 때 보틀을 하나 주는데
그 보틀에 식수를 받아 들고 다니면 되어
여러모로 유용했고,
새벽 이른 일정일 때는 빵과 커피로
가벼운 아침을 챙길 수 있어 것도 좋았다.
그 느낌은 도쿄 일상을 떠올리게 했고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밤에는 꼭 1층으로 내려와
정해진 일과처럼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룸은 청결하고 깔끔했으며
무엇보다 조용했다.
곧바로 날씨를 확인할 수 있는
커다란 창도 좋고,
잔잔한 동네 풍경도 맘에 들었다.
적당히 작은 규모나 조용한 느낌으로나
역시 이곳이 나의 취향이다.
여전히 호텔에서 즐기는
콤비니의 소소 간식이 좋다.
이네노후나야를 가던 날,
호텔로 돌아오니 문 앞에 비닐봉지가 걸려있었다.
뭔가 했더니 타월이 들어있는 비닐봉지였다.
여긴 룸 청소를 원하면
외출 시 문 앞에 마크를 붙여두어야 하는데
그날은 서둘러 나가는 바람에 깜빡한 거다.
청소를 하지 않은 룸은 이렇게
타월을 넣은 비닐봉지를 룸 손잡이에 걸어둔다.
꽁꽁 묶여진 비닐봉지가 참 귀여웠다.
[인섬니아 교토 오이케]
옅은 핑크로 물들었던 니조역도
다시 교토를 찾았을 땐
초록으로 바뀌어 있었다.
봄 여행에 머물렀던 카메오카는
니조역에서의 환승이 많았다.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으면
교토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 같아
또 그게 은근히 좋았다.
아라시야마를 매일처럼 지나치며
사쿠라의 작은 변화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던 날들.
출퇴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일상 같다가도
창밖으로 고개만 돌리면 먼 여행이 되어버리는 전철.
그땐 사쿠라도 만개일이 늦어졌고
비도 많이 내렸고 추었고
거기에 발맞춰 나의 컨디션도 엉망이라
일찍 귀가하는 날이 많았었다.
조금 일찍 대욕장을 찾는 날이면
나 홀로 탕을 독차지하기도 했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면
나른한 게 정말 잠도 잘 왔다.
자그마한 룸이지만 불편함이 없었고
티브를 보며 뒹굴뒹굴하는 밤 시간도 좋았다.
소박하지만 알찼던
기대 이상의 조식도 만족스러웠고
조금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걷는
느릿한 아침 산책도 좋았다.
문뜩 떠나고 싶은 가을날,
왠지 다시 찾게 될 것 같은 그런 곳이다.
[루트인 카메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