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여행
비 내리는 날에도 어김없이
가게 앞에 세워진 자전거들,
이 자전거들도 어느새
카페 풍경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다.
1940년 창업 때부터 넬 드립 식을 고집하는
교토를 대표하는 킷사텐 이노다 커피,
본점은 호텔 라운지 느낌의
모던한 감성을 담고 있고 본관과
레트로 정취가 물씬 풍기는
경양식 집 느낌의 구관으로 이뤄져 있는데,
본관은 현지 사람들이 일상을
구관은 여행자들이 특별한 시간을
즐기는 느낌이다.
(오늘의 나의 선택은 구관)
이곳의 좋은 점 하나는
혼자 오는 손님에게도
자유로운 자리 선택이 주어진다는 것.
구관의 가장 선호도가 높은 자리는
뭐니 뭐니 해도 정원이 내려 보이는
창가 자리지만,
카페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여유로운 뒷자리도 은근 괜찮다.
빨간 체크무늬를 보면
이상하게 나폴리탄이 당기지만
아침이니까 커피에
토스트와 간단한 샐러드만 곁들였다.
[교토의 아침은 이노다 커피의 향기로부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떠올리며 즐기는
이노다의 비 내리는 아침이다.
교토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라면
카페 메구리가 아닌가 싶다.
하루에 마실 수 있는 커피의 양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
속도를 내기 쉽지 않지만,
어쩌면 그래서
여행 때마다 교토의 카페를
하나하나 느릿하게 둘러보는 시간이
더 즐거운 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스마트 커피.
이곳은 1932년 경양식 레스토랑으로 시작해
전후 식료품 입수의 곤란으로 인해
킷사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경양식 메뉴가 있지만)
가게 입구에서는 프로밧 로스터기로
로스팅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데
진한 커피향에 발이 절로 멈추게 된다.
오전은 여행객이 많고
오후엔 단골손님이 많다는
스마트 커피의 1층엔
나이가 지긋한 손님들도 꽤 많아 보였다.
안내를 받아 올라온 2층은
1층 보다 테이블이 여유로웠고
분위기도 좀 더 차분했다.
1층은 카페 느낌이라면
2층은 경양식 레스토랑 느낌이다.
내가 방문한 날은
간단한 카페 메뉴만 가능했지만
볼륨감 있는 런치 메뉴도 인기가 좋다고.
시럽을 살짝 뿌려 먹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프렌치토스트도
폭신폭신 보들보들 꽤 맛이 좋았고,
커피 맛 또한 예상보다 훨씬 괜찮았다.
모닝 타임부터 긴 줄이 이어진다니
모닝 세트를 노리는 사람은
조금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다.
비 내리는 아침,
오가와 커피의 모닝 타임이 있었다.
오픈 시간을 살짝 빗겨났을 뿐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오후 시간의 기다림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아주 여유로운 편이지만)
모닝 세트로 토스트와 간단한 샐러드를 주문했고
모닝 세트는 예상보다 훨씬 충실했다.
토스트를 만끽하고 있는 사이
옆 테이블에 남자 손님이 한 명 앉았다.
남자 손님이 일본어로 주문을 하자
한국어가 유창한 일본 점원은
혹시 한국 사람이냐고 한국말로 물었는데
나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졌다.
상황은 이러해 보였다.
여행객인 듯한 한국 남자는
일본어로 말을 하고 싶고,
한국말이 유창한 점원은
한국어로 말을 하고 싶은 뭐 그런...
서로가 서로의 외국어를 칭찬해 주며
정겹게 나누는 대화 속에
동참하고픈 충동을 몇 번이나 참으며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비가 내려 더욱더 운치 있는 중정,
그리고 그 중정을 바라보며 즐기는 아침 시간.
교토의 아침은 맛있는 커피가 많아 행복하다.
그리고
오후의 로쿠요샤 커피 타임.
기다란 카운터 자리에 앉아 마시는
술보다 더 술맛 나는 커피가 있었다.
로쿠요샤 1층과는
또 다른 느낌의 자하.
천장 아래로 몽글몽글하게 뭉쳐진
오래된 커피 향도
살짝 흐트러진 손 떼 묻은 주방도
그곳의 모든 것들이 멋이 되는,
천천히 조금씩 가까워지고 싶은
그런 카페다.
깊은 밤 이곳에서 마시는
한 잔의 술은 또 어떤 느낌일지,
그건 다음 번 여행의 즐거움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몽롱한 블루빛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소와레 [ソワレ],
이곳은 1948년 창업 이래 지금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킷사텐이다.
구석구석 섬세하게 신경 쓴
인테리어와 사랑스러운 조명이
그 안에서의 시간을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블루빛 조명은
여자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남자는 젊게 보이게 해
한때는 1층 안쪽 자리를
맞선 자리로도 애용했다고 한다.
소와레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은 젤리 펀치.
맛보다 눈으로 먹는
또는 기분으로 먹는
젤리 펀치를 눈앞에 두고
여기저기서 함성과 함께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각도에게 어떻게 찍어도
예쁘게 담기는 마법의 음료다.
한적하게 카페 타임을 즐기기엔
힘든 곳이지만
가끔은 살짝 들뜬 사람들 속에 묻혀
덩달아 살짝 들뜬 마음으로
함께 그 분위기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