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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안지[龍安寺]에서,

교토 여행

by 우사기

아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란덴은 예상보다 번잡하지 않았다.

료안지와 닌나지를 함께 둘러보기로 하고는

어디를 먼저 갈까 란덴 안에서 고민하다

오픈 시간이 조금 더 빠른

료안지를 먼저 들러보기로 했다.


사쿠라 리벤지 여행이라고 해놓고선

피크를 보기 좋게 놓치는 바람에

란덴의 사쿠라 터널은 환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길을 가득 채운 봄기운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올라갔다.

료안지역에서 내린 사람은 서너 명,

철길 옆 사쿠라 나무에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함께 내린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료안지를 향하는 길은 한적했고

덕분에 걷는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 길에도 담벼락 너머

마지막 빛을 온몸으로 발하는

사쿠라 나무가 있었다.

오하요!

료안지에 다다르자 새소리가 달라졌다.

공기도 좀 더 산뜻해진 듯

좀 더 상쾌한 느낌이

발걸음을 한층 더 느리게 만들었다.

휘파람새의 지저귐,

예전 아라시야마의 어느 정원에서

누군가가 알려주었던 그 지저귐은

신기할 만큼이나

물이 좋고 경치가 좋으며

한적한 곳에서만 들려오는 것 같다.

료안지가 분명 처음은 아닌데

이쪽 길은 처음이라 그런지

마치 비밀의 숲을 들어선 것처럼

마음이 울렁거렸다.

이른 아침만이 주는

조금은 사치스러운 여유로움.

세키테이[石庭]로 향하는 돌계단은

가을이 유난히 예쁘다니

그 풍경도 궁금해진다.

세키테이에 다다르자

더 일찍 아침을 서두른 사람들이

마음을 내려놓은 모습으로

무심히 시선을 던진 채

세키테이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여가며 끝자락에 걸쳐 앉아

나도 느린 몸짓으로 그들과 비슷한 모습을 했다.


세키테이[石庭]는

흰색 모래 위에 15개의 돌로 표현한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으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전부의 돌이 보이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


*가레산스이 [枯山水]

물을 사용하지 않고 지형으로 산수를 표현한 마른 정원

하지만 수수께끼를 풀 듯

15개의 돌 전부를 볼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것도

세키테이를 즐기는 즐거움 중 하나,

(가장 안쪽(오른쪽) 끝에서 바라보면

어쩜 15개의 돌이 한 번에 보일지도)


참, 얼핏 보면 수평으로 보이지만

배수를 고려해 호죠[方丈]에서 봤을 때

왼쪽 구석 쪽이 낮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 호죠[方丈] 방장, 절 안에 있는 주지의 방

세키테이의 심플함과 대비를 이루는

호죠의 미닫이문의 화려한 용 그림

또한 볼거리 중 하나.

세키테이만큼이나

마음의 평온을 주는 쿄요치[鏡容地],


물 위로 내려앉은 파란 하늘과

더불어 펼쳐진 또 다른 세계에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그렇게 료안지를 뒤로했다.

어디까지든 끝없이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한적하고 공기 좋은 길,

결국 료안지에서 닌나지까지도 걷기로 했다.


킨카쿠지[金額時] 료안지[龍安寺] 닌나지[仁和寺],

세 가지의 세계유산을 잇는 이 길을

키누가케노미치[きぬかけの路]라고 부르는데

료안지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면 킨카쿠지,

오른쪽으로 가면 닌나지가 나온다.

이왕이면 세 곳을 한 번에 묶어서 보면 좋겠지만

이번은 과감히 킨카쿠지는 생략하는 걸로.


그럼 나는 오른쪽을 향해서 타박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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