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여행
료안지에서 나와 10여 분 정도 걸었을까
닌나지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예상보다 많았다.
사쿠라가 가장 늦게 피고
시즌 중 가장 방문자가 많다는
닌나지[仁和寺].
닌나지를 오전에 찾은 것이 실수라는 걸 깨달은 건
구름처럼 펼쳐진 미무로 사쿠라 숲 앞.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사쿠라는 끝없이 핑크핑크했지만,
아쉽게도 이 방향으로는
절대 예쁘게 담기지가 않는다.
오전의 빛나는 태양이
아름다운 모든 색들을 싹 다 품어버렸다는.
눈이 너무 부셨지만
그래도 역시 사쿠라는 아름다웠다.
사쿠라 숲을 벗어나자
한적하고 온화한 또 다른 풍경이 있었다
내가 교토에 몇 번이나 왔더라...
그래도 꽤 많은 곳을 다녔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여전히 미지의 세계가 많다는 게
문뜩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직 발걸음을 하지 않은 멋진 곳이
교토에는 얼마나 더 남아있는 걸까.
여전히 감탄스러운 교토다.
닌나지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좀 더 시간을 할애해도 좋을 만큼 볼거리도 많았다.
이날은 아쉽게도 레이호칸 박물관이 휴관이었는데
가을 단풍도 멋지다니 그땐 여유를 가지고
박물관도 함께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닌나지를 들어온 방향이 료안지 쪽이어서
나오는 길이 니오몬 [仁王門]이 되었다.
교토 3대문 중 제일 마지막으로 보게 된 니오몬.
*교토 3대문 [三大門]
난젠지 [南禅寺] 산몬 [三門]
치온인 [知恩院] 산몬 [三門]
닌나지 [仁和寺] 니오몬 [仁王門]
니오몬에서 나와
왜 반대편으로 길을 건넜는지
왜 무작정 버스를 탔는지 모르겠다.
버스에 올라타 두서너 정거장쯤 가니
사람들이 거의 내렸다.
느낌이 왠지 싸늘했지만
한편으로는 시골 느낌의 창밖 풍경이 좋아
이대로 가도 나쁠 것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버스는 곧바로 종점에 도착했으니까.
결국 버스에서 내려
다시 돌아온 방향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 버스가 닌나지를 지나
료안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한가로운 창밖 풍경에 텅 빈 실내까지
그래도 나름 완벽했다.
그대로 그 어디를 가더라도 상관없을 만큼.
료안지에서 굉장한 수의 사람들이 버스에 올랐다.
그래,
키누가케노미치[きぬかけの道]에는
세 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있었지.
그랬지.
이 길은 초행길인 사람들에겐
버스만큼 편리한 게 없어
이 노선은 붐비지 않으래야 붐비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노선이 아닌가.
하물며 교토의 중심지까지 족히 4,50분은 걸리는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버스를 탄 것인지.
그제야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사실 구글 맵에서 버스 이동 시
소요시간이 나오긴 하지만
버스는 만원이 되고 나면
이동 속도가 급속히 느려진다.
(일일 버스 티켓을 사용하지 않는 손님도 꽤 있는데
동전 교환에서 지불까지 은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한적한 버스만을 타고 싶어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해도
가끔 무엇에 홀린 듯
만원 버스를 경험하는 나.
(그래 그래야 잊지 않지, 만원 버스 느낌)
만약 시간을 거슬러 올라
닌나지를 나서며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했다면,
란덴을 타서 지하철로 갈아탔을 것이다.
그럼 나름 쾌적하게
정확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쩜쩜쩜
버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
아아, 다음 목적지는 어디였더라.
그래,
교토교엔 쪽의 작은 신사에 있는 카페였지.
버스에서 내리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료안지에서의 그 여유로운 아침이
다시 이어진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고 싶은 길을 따라
나시노키진자[梨木神社] 쪽으로 향했다.
나시노키진자의 경내에 위치한 카페
커피 베이스 나시노키.
툇마루에 끝자락에 앉아서 마시는 커피와 만쥬,
산들거리는 봄바람이
모든 것을 잊게 하는 평온한 시간
이곳에는 교토 3대 명수[名水]의 하나로 알려진
고신스이 소메이[染井]가 있는데
소메이는 삼대 명수 중에서도
아직 마르지 않고 현존하는 유일한 명수다.
(테미즈야의 아래의 수도에서 물을 받아 갈 수 있다)
이날도 소메이에서
물을 받아 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언젠가 교토 생활을 하게 되면
그때는 꼭 여기의 물을 받아 가야지.
*교토 3대 명수
나시노키진자[梨木神社]의 소메이[染井]
교토교엔[京都こ苑]의 사메가이[左女牛井]
호리가와고조니시이리[堀川五条西入る]의
아가타이 [左女牛井]
*고신스이 [御神水] : 신에게 바치는 물
*테미즈야 [手水舎] : 참배를 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장소
물론,
카페의 모든 음료와 얼음은 이 물을 사용하고 있다.
별실에서는 예약제로 커피의 맛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커피 코스 이벤트도 있다고 하니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오후의 휴식을 마쳤으니
다음은 교엔 한 바퀴.
화사한 날도 비 내리는 날도
무심히 자전거를 타고 싶게 하는 교엔.
교토에서 타는 자전거가
여전히 꿈처럼 느껴졌던
어느 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