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 황성수 선생님
선운 선생님은 나의 은사님이십니다. 선생님이 나의 '은사님'이라고 이야기하면 마치 그 문하생이 되어 오랜 시간 그 장소에서 공부한 사람 같습니다. 유비쿼터스 시대에서는 스승이 제자가 누구인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아주 오랜 기간 방대한 분량의 선생님 강의를 모두 들었습니다. 쌍방향이 아닌 한 방향의 교육이었지만 약 5년 동안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살아왔으니, '은사님'이라 관계를 규정짓는 일이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 명리학을 어느 정도 공부하여 개념을 익혔을 때, 나는 명리학이 암기만 잘하면 되는 공부구나 생각했습니다. 공부하기 시작한 지 세 달 만에 명리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멋도 모르던 이때가 가장 사주를 잘 보는 것처럼 보이던 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민 없이 외운 것에 대하여 보이는 대로 이야기만 하면 되었을 뿐이던 때였습니다.
선운 선생님을 알게 되고는 명리학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외운 것을 바탕으로 타인의 과거나 미래를 추론해 내는 것이 명리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이해와 글자들이 특정 논리체계 안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은 이 공부의 매력에서 나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붙들고 있습니다.
명리 공부는 암기로 끝나는 공부가 아니라 논리를 이해해야 하는 공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에 대한 이해, 너에 대한 이해, 관계에 대한 이해, 상황에 대한 이해, 공간에 대한 이해, 시간에 대한 이해, 때에 대한 이해, 삶에 대한 이해, 역할에 대한 이해 등 인생의 다양한 영역과 나와 더불어 존재하는 만물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공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을 뵙기 위해서 상담 예약을 했습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선생님께 배운 내용을 정리해서 내가 유튜브에서 강의해도 되는지 허락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는 정말 불편하기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긴 세월 동안 선생님을 보았지만, 선생님께서는 나를 처음 보는 것이니 그 간극(間隙)이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내 사주를 통한 삶의 방향에 대한 말씀을 전해 들으며 상담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게 되자 그 거리가 서서히 좁혀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활용해도 좋다는 허락과 인터뷰에 대한 약속을 받고,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설레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인터뷰는 선생님과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선생님의 이해는 놀랍습니다. 선생님은 쉽고 간단하게 어떤 상황이나 현상에 대하여 설명하시는 능력이 탁월하십니다. 그냥 툭 던지시는 한마디 말에 깊은 통찰이 녹아있습니다. 포장하거나 치장하지 않는 선생님의 이해와 말씀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눈앞을 선명하게 만듭니다. 모든 인터뷰를 통틀어서 가장 긴장했던 인터뷰였습니다. 선운의 명리 터,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청심환까지 하나 먹은 것을 고백합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생님 소개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셨고, 명리학을 평생 공부해 오셨습니다. 명리학 관련하여 선운 닷컴이라는 동영상 공부방을 운영하고 계시고, 선운의 명리 터라는 카페를 운영하시고, 유튜브로 사람들과 소통하시고, 사주 상담하시고 명리학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제가 2018년에 선생님을 알게 되고, 유튜브를 통해서 공부하다가 명리학의 매력에 빠진 이후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강의 접하면서, '와 이거 너무 재밌다'라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유튜브의 선생님 강의를 전부 다 보고,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아서 선운 닷컴의 강의를 5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잘 때 듣고 아침에 듣고. 선운 선생님 목소리가 나오면 우리 집 애들이 '선운 선생님이시네!' 합니다. 오늘 뵈러 간다고 하니, 다들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선운 선생님) 우수 고객님이시군요. (웃음)
(제이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유튜브나 영상을 보면 항상 웃음이 많으십니다. 농담도 잘하시고. 그러신대, 저번 여름에 제가 상담하러 직접 뵈었을 때 너무 다른 느낌이 들었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선생님과 상담가로서의 선생님이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선생님 하신 말씀 중에, 상담할 때는 냉소적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상담에서는 자신의 이념이나 감정이 투영되어서는 안 된다, 왜곡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여름에 뵈었을 때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좀 편하게 진행해도 될까요?
(선운 선생님) 상담하면서 웃고 떠들고 할 수는 없지요. 편하게 하세요. 저는 편하게 하고 있어요. 유튜브, 뭐 편하게 합시다.
(제이선생님) 인터뷰가 익숙하지 않아 쑥스럽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공부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 같은 것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선운 선생님) 계기라기보다는 집안 자체가 이 공부와 인연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님이 원래부터 명리 공부를 좀 하셨고 뭐 대단한 실력자는 아니신데, 그냥 분위기 자체가 그랬습니다. 집에 굴러다니는 게 사주 명리 관련한 책들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명리를 시작한다고 하니, 우리 어머님이 무지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보통 당시만 해도 명리 공부한다고 그러면은 좋지 않은 시선이 많았지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명리 공부를 하신 분이시니, 좋게 봐주셨어요.
(제이선생님) 명리학이 가지는 깊은 의미를 아시는 분이시니, 아들의 공부를 기뻐하셨나 봅니다. 예전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하셨고, 재미있어서 계속하고 계시고, 재미가 없어지면 그만둘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이 공부가 여전히 재미있으신가요?
(선운 선생님) 여전히 재미는 있죠. 예전만큼 재미있지는 않은데 이제 먹고살아야 하니, 그만둘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는 객기 어린 말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정말 재미로 했지요. 가만 보면, 나는 평생을 재미로 해왔고, 지금도 재미있죠. 항상 새로운 것이 나오면 재미있어요. 했던 것을 또 하는 것을 나는 정말 싫어하는 스타일입니다. 했던 강의가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부분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나는 내가 한번 했던 강의를 다시 해본 적은 없어요.
(제이선생님) 늘 새로운 것 같습니다. 준비하고 하시는 건 아니시죠?
(선운 선생님) 늘, 즉흥적이지요. 나는 항상 새로워야 합니다. 강의가 새롭지 않으면은 아마 스스로 자연스럽게 강의를 안 하게 될 것 같아요.
(제이선생님)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시는 분 같습니다. 홈페이지 제작도 직접 하셨지요? 선운 닷컴 홈페이지 말씀입니다. 이렇게 컴퓨터에도 능하시고, 제가 알기로는 요리도 뚝딱뚝딱 잘하시고, 팔방미인이신 것 같습니다. 다재다능하신 것 같습니다.
(선운 선생님) 홈페이지는 제가 만들었어요. 혼자 살려면 요리도 그렇고, 다 해야지요. 무인성 인성(無印星) 겁재(劫財)가 그래요. 사람이 인성이 있어야 주변 사람들과 협조도 하고, 내가 부족한 것은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이러는데 무인성은 그러지를 못해요. 기본적으로 사람이 겁재(劫財)로 근이 왕한 것 자체가 스스로 하는 거죠. 자기 스스로 하는 거고. 자기 독자적으로. 내 성질머리에 맞추라는 이야기입니다. 내 성질머리에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무인성까지 하다 보니까, 모든 걸 혼자서 하는 게 너무나도 몸에 배어 있는 거예요. 그냥 무조건 도전하는 거지 뭐.
(제이선생님) 사주의 그러한 특성이 선생님을 항상 새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선운의 명리 터> 다음 카페에 보면, ‘단상’ 코너에 글 올려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정말 열심히 보는데, 좋은 말들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 보면, ‘사주 명리는 예측하는 학문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하시면서 ‘세상에는 세상의 순리가 있고 또 자기만이 가지는 각자의 순리가 있다.’ 이런 얘기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쨌든 선생님 이야기를 쫙 읽어봤을 때, 최종 결론은 ‘생긴 대로 살자.’라는 것으로 귀결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선운 선생님) 그렇죠. 각자의 삶인 것이지요. 사주는 계절학이거든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똑같아요. 사람은 목(木)으로 태어나서 결국은 수(水)에서 죽는 것이지요. 과정 안에 있는 거죠. 마치 우리가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농작물이 생기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제이선생님)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립니다. 많은 사람이 선생님 강의 너무 좋아하고 또 존경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뿌리신 대로 거두고 계시는 것일까요? 선생님께서는 화(火)의 운(運)을 거쳐 왔고 금(金)이라는 글자를 가지고 계신 사주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선운 선생님) 그런 것들은 내가 사회 속에서 발판을 다져오는 하나의 과정을 의미하는 거고요. 사람들이 나의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양인(羊刃)의 편관(偏官)을 이야기하는 거죠. 양인의 편관이라는 것은 힘든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니까요. 어쨌든 어느 정도 인지도와 이슈를 가진다는 것은 양인의 편관의 의미라고 보는 게 더 맞겠죠.
(제이선생님) 예전 선생님 글 중에 명리학의 미래에 대하여 고민하신 글이 있습니다. 경자년이 대변환의 시점이라고 이야기하시면서 ‘명리학의 미래란 무엇일까?’ 이런 고민하셨던 글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학문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시는 걸까요?
(선운 선생님) 다른 방향이라기보다는 명리학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리라는 것은 어디든 접목되는 학문이라는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특히 컨설팅 쪽으로 접목하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철학적 관점에서도 많이 활용하고 있고요. 이런 것들은 명리가 가지고 있는 기능이 확대되는 것입니다.
다른 방향을 간다기보다는 명리의 기능이 확대되는 것이라 봅니다. 예전에는 명리가 단순하게 길흉(吉凶)과 화복(禍福)만을 이야기했다면, 지금은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을 이야기하는 비율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명리의 기능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활용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께서 ‘명리학의 미래는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던지셨고, 저는 그 글을 읽으며 생각을 해봤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이해는 안 되지만 인정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항상 하십니다.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가 되었고, 개인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개인의 시대에서 ‘생긴 대로 살자’라는 말의 철학적 가치를 명리학이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명리학은 새 시대의 철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개인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또 자기 계발에 주목합니다. 사람들이 사서 읽는 자기 계발서가 자기 사주에 맞게 끌린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느리게 산다는 것에 의미를 추구하면서, 슬로푸드(slow food)나 슬로시티(slow city)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그런 쪽의 자기 계발서를 읽는다고 하셨어요. 또 미라클 모닝(miracle morning)이나 끌어당김의 법칙과 같은 것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또 그런 분야의 책을 읽는다고 하셨습니다.
명리학을 공부하며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알아가면, 나만 옳다는 확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와 다른 너. 음과 양. 길과 흉. 상대성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선운 선생님) 길흉이라는 게 없을 수는 없지요. 일반적으로 길흉은 잘 사냐, 못 사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는 당연히 삶에는 길흉이 있죠. 옛날에는 단순하게 그냥 돈이 있고 없고 가 중요한 시대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게 전부가 아니거든요.
먹고사는 것은 대부분 지장이 없고, 정말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기본적으로 금전적인 레벨은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상담에서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보면, 돈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대부분 인간관계 문제라든지,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가 있는데 목표에 이르지 못하는 갈증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은 길흉으로 다룰 수가 없는 부분이에요. 쉽게 이야기하면, 내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 남편이 마음에 안 들 수가 있는 것이고. 내 자식이 마음에 안 들 수 있기도 하겠지요. 이럴 때는 남편이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고, 내가 문제일 수도 있는 거예요. 남편이 멀쩡한데 내가 불만이 많았을 수도 있어요. 남편이 정말로 나쁜 사람인데 그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나쁘다고 할 것인가? 좋다고 할 것인가? 길(吉)인가요? 흉(凶)인가요? 상담에서는 이런 사례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규정할 수가 없는 거죠.
길흉이 있다고 규정한다는 것은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 똑같이 반응해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사람은 모두 다르게 반응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죠. 한 달에 100만 원만 벌어도 몹시 만족하면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억을 벌더라도 부족하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길흉(吉凶)에는 절대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명리라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기준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결핍을 가지며 그러한 결핍을 어떠한 방법으로 채우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게 맞는 것인가를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명리입니다. 또 그게 맞게 가고 있다는 확신을 만들어줄 수 있는 것도 명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삶을 확신케 하는 것.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잘못 살아온 것이 아니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이 명리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내린 판단과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들이 절대 헛되거나 잘못된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제시해 주고 확신을 주는 게 명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명리의 역할이라고 봐요. 나는.
(제이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내가 살아왔던 과거의 시간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은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최선'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강의도 많이 하시고 글도 많이 쓰셨습니다. 최근에도 ‘최선’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누구나 자신의 최고의 에너지를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만의 세상에서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서 각자의 개체들이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고 삶인 것 같습니다.
(선운 선생님) 그렇죠. 누구나 최선을 다하죠. 모두 다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요. 내가 지금 낼 수 있는 에너지를 다 뿜어내고 살죠. 다만 사람은 각자가 다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에너지가 있고 상대가 생각하는 최선의 에너지가 같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요.
(제이선생님) 네, 그 사이에서 갈등과 불만과 오해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선운 선생님) 최선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항상 자신을 무한대로 끝까지 끌어올리는 사람들은 수(水)가 왕성하거나, 화(火)가 왕성한 사람들이에요. 이렇게 금(金)과 목(木)만으로 되어 있는 경우는 사회적 평균에 맞추는 사람들입니다. 무한대로 자기의 능력을 끝까지 올리기는 어렵지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건 맞지만, 최선이라는 노력에도 레벨은 분명히 있지요.
(제이선생님) 고전 명리나 과거의 명리는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성취를 바탕으로 길흉을 구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개인의 시대입니다. 개개인의 심리를 깊게 파고들면 길과 흉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길과 흉에 관하여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선운 선생님) 지금은 명리가 삶 자체를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의 삶 자체는 길과 흉으로 이분화할 수 없습니다.
(제이선생님) ‘흉신(凶神)들이 더 행복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선운 선생님) 그렇지요. 포기할 줄 아니까.
(제이선생님) 한 사람이 사회적 성취 여부로 길과 흉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명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길과 흉이 한 사람의 인생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의 강의를 보면, '명리 잡변', '사주와 심리' 등 테마가 두드러지는 강의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방송작가의 작품 스타일', '생활 습관', '이사', '역할을 잘하려면' 등의 주제가 있습니다. 또, '불안'에 대해서 '고집'에 대해서 '질투', '열등감', '책임감' 등 다양한 감정들을 다루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불안'이란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불안을 느끼는 감정선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과 '책임감'이란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각자가 가지는 책임감이 다르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해주셨습니다. 너무 예리하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늘 새로운 주제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십니다. 저의 경우, 매우 흥미롭게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이것이 저의 이해로 잘 녹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풀어내시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이 공부로 체득이 가능한 영역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선운 선생님) 학습법을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지요. 사람 따라서 자신의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 것을 못 만들고 외워서 길을 열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은 그것도 팔자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팔자에 달린 거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자기 능력, 자기 영역을 만들려면 화극금(火剋金)이나 수생목(水生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경우 자기만의 이론, 독특한 관법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화극금(火剋金)이나 수생목(水生木)이 안 된다면, 다른 사람의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방법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수생목(水生木)과 화극금(火剋金)은 기존의 틀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목생화(木生火)는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금생수(金生水)라는 것은 가공을 규격화해서 마치 내 것인 것처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더라도, 내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금생수(金生水)가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학습법과 그 활용도 자기 팔자에 달린 것입니다.
(제이선생님) 수가 목이 되고, 화가 금이 되는 과정이 창조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온라인 강의를 보면, 젊은 시절의 선생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세월이 가득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듭니다.
(선운 선생님)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긴 해요.
(제이선생님) 선생님 유튜브 강의의 정렬을 오래된 순으로 하면 '연봉 보기' 강의가 나옵니다. 그 영상을 사람들이 많이 본 것 같던데요. 사실 사람들은 이런 현실적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도 그 논리에 대한 맥락이 비슷하십니까? 토가 생활비고, 이렇게 정의하신 부분 말입니다.
(선운 선생님) 그렇지요. 전혀 안 변하지요. 변할 수도 없고요. 기본적으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이 화(火)입니다. 이 화라는 것이 토를 통해서 안정을 가져다주는 거죠. 그리고 토생금(土生金)이 돼야 자기 자신의 부가가치가 생기고, 금생수(金生水)가 주변 사람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방식으로 나아갑니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지요. 수생목(水生木)이 되어야 여가를 즐기고 놀고, 주변의 도움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이 대표적으로 수생목(水生木)이나 금생수(金生水)입니다. 금생수(金生水)는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을 찾으러 다니고, 수생목(水生木)은 그냥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지요.
(제이선생님) 선생님. 이런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딱?
(선운 선생님) 그냥 저절로 오행의 움직임이 그려집니다. 그게 수생목(水生木)이에요.
(제이선생님) 신기합니다. 그렇게 딱 파악하신다는 것이 신기해요. ‘아는 만큼 통찰하고 통찰한 만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결국에 선생님이 알고 계신 건 오행의 상생상극과 육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한 통찰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 삶의 다양한 것들이 이렇게 오행의 움직임으로 그려지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선운 선생님) 모르겠어요. 나는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그냥 간단히 음양에 대한 이해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론의 전개라는 것은 음양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것이지요. 그냥 나는 음양은 아는 것 같아요. 음양을 아니까 음양을 바탕으로 모든 것들에 연역적으로 이론이 펼쳐지는 것이지요. 결국은 자기 틀대로 가는 거지요.
(제이선생님) 선생님의 온라인 강의 중에 ‘궁통’ 강의를 제가 가장 좋아합니다. 최근에 새로 120개 강의를 마무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운 선생님) 그거 하다가 죽을 뻔했지. 죽다 살아났지요. 1년 넘게 한 거예요. 2016, 2017년 가장 몸이 아플 때 했던 강의입니다.
(제이선생님) 그러니까요. 그때 영상을 보면 건강이 안 좋아 보이셨어요. 몸은 좀 괜찮아지셨을까요? 지금 얼굴도 너무 좋으시고, 많이 좋아지신 것 같은데요.
(선운 선생님) 좋아졌지요. 그때는 목소리도 안 나왔어요. 너무 힘들어서. 어쨌든 그 강의를 시작은 했으니 끌고 나갔지요. 안 아플 때 시작해서 아플 때 끝났죠. 처음에 보면, 상태가 좋아요. 그러다가 이제 궁통 강의 끝자락쯤 되면 사람이 다 죽어가지요.
(제이선생님) 힘드셨겠습니다. 지금은 얼굴 너무 좋으세요. 궁통 강의에서 계절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월을 안 보고 사주를 보는 건 농부가 계절을 모르고 농사짓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좋은 강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사주명리학이 결정론을 바탕으로 한 인과론인가에 대하여 여쭙고 싶습니다.
(선운 선생님) 인과론이죠.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제이선생님)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명리학인데, 뿌리는 것도 사주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선운 선생님) 그래서 그걸 이제 ‘결정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너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해.’라고 정해진 것은 또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아닌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주가 결정된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불필요한 소모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사람 사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현명하게 살았으면 현명한 결과가 나오고, 어리석게 살았다면 어리석은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명리(命理)입니다. 그러니까 괜히 빨간 속옷 하얀 속옷 따져가며 입는 건 무의미합니다. 그것은 인과론이 아니지요. ‘취향론’이라고나 할까요?
(제이선생님) 개운법(開運法)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시지요? (웃음)
(선운 선생님) 아니 그러니까. 명리는 인과론인데 자꾸 결정론적인 것만 이야기하는 개운법(開運法)은 곤란합니다. 빨간색이 좋다고 해서 빨간 옷을 입는다거나, 액세서리를 한다거나. 손금도 바꾸고, 이름도 바꾸고. 이상한 짓들을 하는 거죠. 나는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께서 예전에 개운법(開運法)을 말씀하시며, ‘지도를 바꾼다고 지형이 바뀌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떤 기대감으로,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이겠지요.
(선운 선생님) 그렇지요. 그게 사람이지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마음, 그게 사람이지요.
(제이선생님) ‘현명하다는 것은 각자의 관점과 시선을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시면서 상대를 인정하고, 운명을 인정하고, 관계나 상황도 다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도 마음에 잘 새겨두었습니다.
(선운 선생님) 그렇죠. 인정이 필요하죠. 우리는 우리 삶에 닥친 문제들을 풀어나갑니다. 때로는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현재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면 곤란합니다. 인정해야 방법이 보입니다. 인정하라는 게 뭐 다 겸허하게 수용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인정한다’라는 이야기는 현재를 객관적으로 인지한다는 뜻이에요. 인정한다는 것이 무조건적 수용이나 넓은 마음을 가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객관적 인지를 이야기한 것이지요.
(제이선생님) 한 인간이 사회가 규정한 평균의 삶을 따라가려고 지나치게 애쓰는 것보다, 자신과 세상을 바르게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선운 선생님) 그렇죠. 인정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나를 인지한다는 의미입니다. 객관적 인지가 가능하면 내가 내 한계를 알게 됩니다. 한계를 넘지 않으면 실수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장점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이해를 통해 나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제이선생님) 결국에 ‘누구든 있는 그대로 최선이고, 있는 그대로 빛난다.’ 그렇다면, 생긴 대로 살면 될 것 같습니다. 또, ‘상대가 이해되지 않더라도 인정하자.’ 이렇게 정리하면 되겠습니까?
(선운 선생님) 네 그렇지요. 그런데요, 상대가 도무지 인정이 안 되면 인정 안 하면 됩니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는 거지요. 생긴 대로 살면 됩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