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합일의 삶을 산다는 것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인문학을 비하하기도 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항상 있습니다.)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동양철학을 비하하기도 합니다. 유가는 도가를, 도가는 유가를 비하하기도 합니다. 동양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 중에 명리학을 비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명리 공부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평학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은 고법 명리를 비하합니다. 고전을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명리 이론을 비하합니다. 새로운 명리 이론에 심취한 사람들은 고전을 비하합니다. 누구나 스스로가 만든 프리임에 갇혀버립니다.
道를 아는 물리학자, 소설가의 글은 남다릅니다. 道를 아는 영화감독, 배우의 영화는 남다릅니다. 道를 아는 화가, 가수, 교수, 청소부, 택시기사, 정치인, 코미디언, 요리사는 남다릅니다. 그들은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성인(聖人)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생각이나 환경, 상황이나 처지라는 프레임에 갇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바로 세우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행복하고 타인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옛 성현들은 성인(聖人)의 상태를 동경하였습니다. 명대 중기의 철학자 왕양명은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인간은 천지만물과 일체 한다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을 바탕한 대동사회를 이야기합니다.
'聖'이라는 글자를 뜯어서 살펴보면, 귀 이(耳)와 입 구(口)라는 두 개의 글자가 임(壬)이라는 글자 위에 놓여있습니다. 임(壬)은 아홉 번째 천간 글자입니다. 열 개의 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壬이라는 글자를 살피면 무극(無極)과도 닮아있습니다.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고요한 상태, 외부에 의한 선악과 시비와 분별이 없는 상태와도 같습니다. 壬은 고요한 상태입니다. 천리(天理) 자체의 우주 법칙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상태에서 듣고(耳), 말하는(口) 사람이 성인(聖人)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늘의 움직임에 의해 땅의 기운이 변화합니다. 천체의 움직임이 4계절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변화하는 땅의 기운 즉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만물은 나타나고 사라지며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합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동면하고 봄이 되면 다시 깨어나 움직이는 것, 먼바다로 떠나갔던 연어들이 당연한 듯 회귀하는 것들. 동식물을 비롯한 인간은 하늘이 품부 한 각자의 성(性)을 타고 태어납니다.
년월일시는 하늘(天)의 운행 기록입니다. 이것으로 사람(人)의 성(性)을 논하는 것이 명리학입니다. 명리학만큼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 그 자체를 논리 전개의 기저로 삼는 공부도 없을 것 같습니다. 년월일시를 통해 우리는 나의 본성(本性)을 읽어봅니다. 천리 가운데 작은 점으로 존재하는 나의 천명(天命)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하는 일을 생각하게 합니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천리(天理)의 이해 안에서 듣고 말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23년 6월 25일, 선생님과 처음으로 뵈었습니다. 꼼꼼하신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준비 기간이 길어졌습니다. 두강원의 마당은 움푹 파인 느낌으로 아래에 내려앉아 있는데, 마치 꽃바구니 속에 꽃들이 몽글거리며 핀 것처럼 예뻤습니다. 사무실 귀퉁이에는 은입사 작품을 만드시는 선생님의 도구들이 열을 맞추어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대화하는 내도록 선생님께서는 행복하게 삶을 대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재미와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과 헤어지며 손을 흔들어 주실 때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짧은 시간 만남이었지만 헤어지려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선생님은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루에 한자 하나씩 외우라고 보내주셨는데, 그 감사를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요.
2024년 6월 28일. 선생님께서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인연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선생님께 조문하고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또다시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었던 기억이, 아직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나의 마음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명리(命理)라는 공부에 이토록 집착하고, 놓지 못하고 부여잡는 이유는 인연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닌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를 향한 격려, 너를 위한 박수.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을 조화롭게 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 그러한 삶의 습관이 행복을 만든다는 것을 선생님께서는 알려주셨습니다. 마당에 핀 꽃, 건네주는 인사, 땀방울을 식히는 바람,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 순간순간의 행복이 우리가 찾는 재미이고 그것이 곧 道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행복한 도인(道人)이셨던 이을로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