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강 이을로 선생님
이을로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자평진전 강해>라는 책과 원광디지털대학교 <기문 연구> 수업을 통해서입니다. 자평진전은 명리학의 대표적 고서로, 시중에 판매되는 책이 많습니다. 번역이 책마다 달라 여러 책을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동학사 출판사의 <자평진전 강해>는 다른 책과는 달리 선생님 나름으로 정리하신 부분이 추가된 점이 새롭게 보여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기문 연구> 강의 교안에 우리나라 기문둔갑의 대가로 이을로 선생님을 소개하는 글을 보고 선생님의 저서들을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을로 선생님께서는 오랜 기간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시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한자를 풀이하는 글을 게시하고 계십니다. 선생님과 소통하기 이전부터 그 블로그의 글들을 자주 참고하여 공부하고는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기도 하였고, 또 사주를 어떻게 푸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기문둔갑으로 풀이하는 것도 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선생님께 전화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그 무렵 내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아, 그런 것도 사주에 보이시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공부와 관련한 주제로 흘러갔습니다. 선생님께서 어찌나 재미있게 말씀을 잘하시는지, 첫날 선생님과 통화를 한 시간도 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선생님이 재미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나더러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미있으니 인터뷰하는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떠신지 여쭤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 언젠가 시간을 마련해 보자고 약속하며 전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여러 선생님과 뵙고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넉살이 좋아진 모양입니다.
선생님과의 약속은 나의 건강 문제로 한 번 취소가 되었습니다. 가벼운 수술을 했는데 예후가 좋지 않아 고생하던 시기였습니다. 약속을 취소하고 너무 긴 시간 다시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서울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사전 준비를 많이 하지 못해서, 비행기를 타는 내내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보고 지우고를 반복했습니다. 스스로 만족할 만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라 그런지 선생님을 뵙기 전에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준비를 많이 해주시고, 이야기를 잘 끌어 주셔서 인터뷰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산의 <두강원>이라는 곳에 계십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반짝이던 두강원의 소박한 마당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사모님께서 가꾸시는 정성 가득한 작은 마당은 꽉 껴안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습니다.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사무실 앞으로 펼쳐진 산과 폭 안겨진 듯한 두강원의 위치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선생님이 그렇게 편안하신 분이시라 그리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미'라는 것은 어느 대상과 진심으로 소통할 때 느끼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참 재미있으신 분이십니다. 두강원이라는 장소가 주는 재미, 은입사라는 예술이 주는 재미, 공부라는 몰입이 주는 재미, 상담이라는 소통이 주는 재미,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자연(自然)이 주는 재미를 빠짐없이 누리시는 분 같아 보였습니다.
나도 선생님처럼 재미를 누리는 사람이 되어 보고 싶습니다. 대상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사람이겠지요. 인터뷰 이후로 선생님께서는 매일 아침 저에게 카톡을 보내주십니다. 하루에 하나씩 한자를 공부하라고 보내주시는데, 어떤 날은 열심히 외우고 어떤 날은 또 잊어버립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글자가 300개가 넘어갑니다. 꾸준하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선생님의 이런 정성은 하루를 잘 쌓아가야 꿈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늘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재미를 누리는 하루를 살아보려 노력합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 소개 한 번 해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비 이도근 선생님께 공부를 시작하셨고, 두강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또, 역학과 관련하여 많은 책을 번역하고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강원> 블로그 운영하시고, 컴퓨터에도 상당히 능하시고, 은입사와 같은 예술 활동도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의 스승님이셨다는 이도근 선생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이을로 선생님) 내가 어릴 때 친척분이 나를 이도근 선생님에게 맡겼어요. 그분이 청지기를 시켜 엄청난 쌀을 이도근 선생님께 보내고 저를 맡겼어요. 저를 좀 가르치라고 맡기셨어요. 일비(一飛)라는 성함만 안 상태였는데, 한 번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배우라고 하셨지요. 친척분이 학(學)을 바탕으로 이런 역술을 하시다 보니, 친척 중 누군가에게 자신이 하시던 걸 물려주고 싶어 하셨어요. 직접 가르칠 수는 없고, 이도근 선생님에게 나를 맡기신 것이지요.
(제이선생님) 원해서 시작하신 것은 아니시네요. 그렇게 시작하실 때 이 공부가 좋으셨어요?
(이을로 선생님) 아니요. 몰랐어요. 제가 1980년 2월 3일 일요일에 입문했어요. 속리산 고속을 타고 서울에서 청주까지 가는데, 5시간이 걸렸어요. 눈이 많이 왔지요. 그때 이도근 선생님 찾아뵙고 '제가 이을로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술상을 내오라 하셨어요. '너 나한테 배울 생각이 있으면 술을 한 잔 따르고, 배우기 싫으면 내가 술 한 잔 주마.' 하셨어요. 엉겁결에 제가 선생님 잔에 술을 따랐지요.
(제이선생님) 술 한 잔 따르시며, 바로 입문하셨네요. 선생님께서는 기문둔갑으로 유명하신데, 명리학보다 기문둔갑을 먼저 공부하셨어요?
(이을로 선생님) 그렇죠. 기문둔갑(奇門遁甲)하는 사람인데 명리 책도 쓰고, 주역, 육임에 관한 책도 쓰고 하는 게 역학(易學)이라는 것이 종합학문이라서 그래요. 기문둔갑의 홍국수를 통해 결론을 내리려면 명리학적 지식이 꼭 있어야 해요. 기문둔갑을 공부하던 어느 날 스승님께서 ‘너 명리 공부 좀 해서 와라.’ 하시더라고요. 공부하는 방법만 이야기해 주시면 그냥 해야 하는 거였어요.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명리' 그다음에 '기문둔갑', '육효', '주역' 이런 순서로 공부하게 되는데, 저는 '기문둔갑'부터 공부했어요.
(제이선생님) 제가 기문둔갑 포국(布局) 하는 것을 배워보니 너무 어렵던데요?
(이을로 선생님) 사실 포국 방식을 익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포국이 그렇게 된 이유를 알아야 해요, ‘포국이 이렇게 된다는 건 도대체 뭘 뜻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그 원인을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런 원리를 모르면 아무리 익혀도 소용이 없어.
(제이선생님) 이 채널은 주로 명리 공부하는 분들이 보시는 채널인데, 이 공부하다 보면 또 기문둔갑이나 육효나 이런 쪽으로도 넓혀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기문둔갑을 공부하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기문둔갑으로 가장 유명한 분 중 한 분으로 이을로 선생님을 소개하고 있던데요. 선생님께서는 상담도 기문둔갑으로 하시나요?
(이을로 선생님) 아니요. 사안에 따라서 달라요. 역점으로 점을 쳐보는 경우가 있고, 기문둔갑홍국수로 보는 경우가 있고, 또 기문둔갑 연국수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서 달라지지요.
(제이선생님) 기문둔갑이 명리보다 더 디테일한 해석이 가능한가요?
(이을로 선생님) 일장일단이 있어요. 용처가 달라요. 누군가 전화가 와서 '제가 찾아뵙고 배움을 청하고 싶은데, 가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묻는 경우, 바로 기문둔갑 국을 짜봐요. 결론이 '안 온다'에요. 그러면 나는 놀러 가지. 안 올 거니까. 그런데 명리로는 이런 것은 못 보지요. 용도가 다르죠.
(제이선생님) 명리학과는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성함이 이(李) 자 을(乙)자 로(魯)자, 맞지요? 그런데 이름이 세련되신 것 같아요. 어떤 한자입니까?
(이을로 선생님) 이렇게 써요. 새 을(乙) 자에 노나라 노(魯) 자를 씁니다. 갑골문 학자들은 새을(乙) 자를 해석할 때 열 가지의 설이 있어요. 제 이름의 을(乙)자는 '솟아 나올 을'입니다. ‘노(魯)’ 자는 물고기 어(魚)와 날 일(日)로 되어 있는 글자예요. 해 위에 물고기가 있으니 얼마나 우둔하냐는 거지요. 그래서 우둔하다는 의미가 있어요. 이렇게 되면 '우둔함에서 솟아 나온 이(李) 씨다.' 이렇게 해석이 되잖아요.
그런데 날 일(日)을 그런 의미로 보지 않고 촉구함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촉구함은 옛날 무당들이 무엇을 빌 때 바라는 것을 적은 종이를 넣는 함을 말합니다. 그러니, 촉구함 위에 생선을 놓고 제사를 지내는 고장, 그것이 노나라라는 의미가 있지요.
(제이선생님) 아. 그런 의미가 있군요.
(이을로 선생님) 그럼 이제 의미가 달라져요. 노나라는 공자의 나라지요. '노나라에서 솟아 나온 이 씨다.' 의미가 대단해져 버립니다. 을로(乙魯)가 멍청한 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새 을에 우둔할 로라면 멍청한 새란 말 같잖아요. 새가 멍청하잖아요.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평생을 사는 사람은 멍청하게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크게 한 번 어깨에 힘을 주고 노나라에서 솟아난 이 씨가 되어 보겠다고 생각하면 괜찮지 않나요?
(제이선생님) 그러면 두강(斗岡)은 어떤 의미인가요? 연결하여 이야기 들어 보고 싶습니다.
(이을로 선생님) 두(斗)라는 글자는 국자, 용기를 의미해요. 물건을 담는 삼태기의 의미가 있어요. 강(岡)은 산등성이를 의미해요. 저는 작은 산의 의미로 쓰고 있어요. 두강(斗岡)이라는 것은 ‘삼태기 산’이라는 뜻이에요. 어렵고 힘든 분, 내가 필요한 분에게 삼태기 산이 되어서 보듬어 주고, 격려해 주겠다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제이선생님) 뜻이 좋습니다. 제가 들어올 때 보니, 두강원 앞에 <두강원>이라고 작은 팻말 달려 있고, 꽃이랑 정원이 너무 잘 가꾸어져 있어 너무 좋습니다. 사모님께서 가꾸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아침마다 이렇게 나와서 보시면 너무 좋으실 것 같아요. 자연을 보듬고 있는 이 마당이 두강(斗岡)이라는 이름과 참 어울립니다. 마당 앞으로 보이는 산에 대해서 인터뷰 전에 설명해 주셨는데요, 풍수(風水)를 선생님께서 직접 보시고 두강원 자리를 찾으신 건가요?
(이을로 선생님) 저는 여기를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고 사랑에 빠져있지요. 명리든 기문둔갑이든 다 자연을 공부하는 거니까. 자연이라는 것이 결국은 스스로 그러한 존재들이잖아요. 이 동네 자체가 자연이에요. 저녁에 산책도 하고, 여기 동네 분들이 또 좋아요. 큰 사건도 없고, 여기 토박이들이 많아요. 나는 이 동네 자체를 좋아해요. 풍수 배운 제자들이 이곳에 대해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면, 관두라고 하지요. '내가 사랑에 빠졌는데 뭔 소용이 있어. 나는 콩깍지 씌었으니 끝이다.'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제이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아주 오랜 기간 공부를 해오셨지요?
(이을로 선생님) 책을 놓았다 들치면 생소해요. 그러니 계속 봐야 해요. 아침저녁으로. 공부가 습관이 되고 내 살이 되고 뼛속 골수까지 들어가야, 툭 치면 탁 나오지요.
(제이선생님) 꾸준한 공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서 공부의 중요성과 선생님 저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을로 선생님) 명리를 배우고 싶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한자를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러지요. 한자 알 필요 없다고. 천간 10개 하고 지지 12개만 알면 되는데 한자 많이 알 필요 없다고. 그런데, 신(辛) 자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쓰는 말의 70%가 한자예요. 기본적인 한자는 알고 있어야겠지요.
저는 처음에 저희 스승님 덕분에 한자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예전에 김포에 사는 천재 중학생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저를 할아버지라 부르며 따랐어요. 그 애 엄마와 그 엄마가 아는 일당 네 명은 나를 아저씨라 부르고. 대한민국에서 그 네 명만 나를 아저씨라고 해요. 하여튼 서로 인연이 됐길래 중학교 들어가면 선물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쓴 책이 <천자문>이에요.
(제이선생님) 저기 책꽂이에. 빼서 보아도 되나요? 그 아이를 위해서 쓰신 책이에요?
(이을로 선생님) 근데 쓰다 보니 이 내용을 알려면 춘추좌전, 사기, 주역, 시경 이런 걸 다 알아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애한테는 주지를 못하겠는 거야. 그래서 그 엄마한테 ‘한자 공부해서 아들 좀 가르쳐 줘라.’ 하며 만든 책이에요.
(제이선생님) 그래서 책 제목이, <어른을 위한 천자문>이군요. (웃음)
(이을로 선생님) 한자를 안다고 하지만,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닐 수 있어요. 이것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 모르면 몰라. 한자를 읽을 수는 있겠지. 근데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
(제이선생님) 제가 명리 공부하기 전에 천자문이라고 하면 그냥 하늘 천(天) 땅 지(地),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명리를 공부하며 천자문을 다시 보니 놀랍더라고요. 처음부터 천지(天地), 우주(宇宙), 일월(日月)의 순서로 하나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을로 선생님) 그러니까 땅 지(地)를 보면, 흙 토(土)에 이끼 야(也)를 쓰지요. 也는 큰 뱀이라는 설이 있고, 설문 회자에서는 여성의 성(性)으로 봅니다. 흙을 모든 걸 먹어 치운 뱀, 그게 땅이지. 땅은 또 모든 것을 이어주지요. 그러니 여자의 성(性)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지. 이렇게 한자를 알고 접근하는 것하고, 그냥 하늘 천(天), 땅 지(地), 검을 현(玄), 이렇게 암기하는 것과는 다르지.
(제이선생님) 네. 그렇겠습니다. 저는 <자평진전> 책을 접하면서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평진전은 시중에 나온 대부분을 봤습니다. 그런데 동학사 출판사가 큰 출판사이기도 하고, 내용이 깔끔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쓰신 자평진전은 선생님 나름으로 설명하고 정리하신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을로 선생님) 거참. 저자가 싹수가 없어.
(제이선생님) (놀람) 네? 저자가 선생님이시잖아요.
(이을로 선생님) (웃음) 성경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주석서를 전부 내치는 거예요. 원문만 봐야 한다는 거죠. 자평진전이든 궁통보감이든 적천수든. 주석서가 너무 많아요. 특히 적천수 같은 경우는 원문이 A4 몇 장도 되지 않아. 그런데 어떤 책은 1권에서 5권으로 된 책도 있지. 그러면 본질을 잃어버려. 자평진전도 후대에 서락오라는 분이 주석을 단 책이 있는데, 서락오의 책만 보게 되면 자평진전이 주는 진짜 핵심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는 거예요. 심효첨이라는 원저자가 한 말을 봐야지. 제가 싹수가 없다는 게, 나는 서락오의 주석을 싹 빼버렸어.
고전을 어떻게 공부하느냐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예를 들어 자평진전을 읽는다 칩시다. 그러면 일단 넘겨. ‘휘리릭 휘리릭’이라고 해. 제목만 보는 거야. 제목만. 이렇게 해서 한 번 끝까지 넘기는 거야. 끝까지. 근데 이게 왜 필요하냐면 이 책을 쓴 사람이 앞부분에서 설명할 것을 뒤에 가서 더 자세하게 한 게 있어. 그런데 앞부분부터 밑줄 치는 사람은 딱 수학 정석에서 집합 부분만 풀듯이 해. 그런 식이 되면 앞부분 조금 나가고 진도가 안 나가. 이해가 안 가니 그러겠지. 근데 뒤에 가면 다 설명이 되어 있거든. 그래서 첫째, 휘리릭.
(제이선생님) 첫째, 휘리릭 끝까지 볼 것!
(이을로 선생님) 둘째, 넘기면서 제목 읽기! 휘리릭 읽어보는 것이 하루 걸린다면 제목 읽기는 이틀 정도면 됩니다. 셋째, 소제목 달기! 이렇게 하면 세 번을 본 게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우리가 연필을 들고 밑줄을 그으면서 진짜 읽는 것은 읽기만 하면 안 돼. 정리하는 거야. 소제목에 가장 핵심적인 사안만 간단간단하게 정리해서 내 노트를 만들어야 해. 명리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고전인 <자평진전>, <궁통보감>, <적천수> 이 경우는 소제목까지 머릿속에 있어야 하고, 간단간단한 핵심 사항을 정리해서 가지고 있어야지.
(제이선생님) 이 공부를 한다면 대표 고서 정도는 정리해 놓으라는 말씀이시네요.
(이을로 선생님) 당연하지. 세 번 휘리릭 읽고, 정리하고. 그렇게 해서 인덱스를 붙여서 노트를 만들든지, 파일로 정리한다든지 해야지. 그것이 뼈대가 되고 그 위에 살이 붙겠지. 거기에 물을 주고 햇빛이 들면 꽃이 피고 그러는 게지.
(제이선생님) ‘자평진전’, ‘궁통보감’은 저도 잘 아는 책인데 ‘팔자제요’는 어떤 책인가요?
(이을로 선생님) ‘자평진전’의 가장 큰 특징은 최초로 팔자를 여덟 개의 분류체계로 구분한 거예요. 용신 격국으로 여덟 가지로 분류한 분류체계를 알 수 있는 책이에요. 자평진전을 보다 보면 팔자를 보는 안목이 달라지지요. 요즘에 나온 책 보다가 이 책을 보면 그런 현대의 그런 단행본들은 사기 치는 것 같아. 이게 고루한 고서지만 현대에 넘치는 책들이 사기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딱 들 정도예요. 그래서 이건 기본이에요.
(제이선생님) ‘자평진전’은 기본이다.
(이을로 선생님) ‘궁통보감’은 추우면 담요 덮어라, 더우면 에어컨 켜라. 이런 이야기하는 ‘조후론’의 핵심 책이에요. 그런데 궁통보감을 그렇게 간단하게 알고 접근하면 나중에 머리에 쥐 납니다. 궁통보감은 사실 팔자를 보는 종합적 체계를 말합니다. ‘적천수’는 그냥 짧은 시예요. 그런데 거기에 주석단 사람이 많아요. 저자도 불분명한 것이 많고. ‘자평진전’, ‘궁통보감’, ‘적천수’가 기본서이지요. 거기에 살을 붙이는 게 좋지요. 그렇게 접근하시면 됩니다.
‘팔자제요’는 그냥 사전이에요. 위천리라는 명리학자가 쓴 것인데,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더 유명해진 책은 ‘명리 사전’입니다. 돌아가신 우리나라의 명리학자 박재완 선생님이 쓰신 책이에요. 위천리 선생의 ‘팔자제요’에는 월지, 일간, 시지가 사전 인덱스입니다. 예를 들면 ‘묘월(卯月) 갑목(甲木)이 갑진(甲辰) 시를 만나면,’ 이런 방식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박재완 선생님의 ‘명리 사전’은 월지, 일간, 시지에 일지를 넣어요. ‘묘월 갑목이 진시를 만나면.’ 이런 방식이겠지요.
어떤 사주를 본 후에 내가 놓친 게 있나 확인하고 싶을 때, 인덱스 찾아서 위천리 선생님이나 박재완 선생님 시각으로 다시 고민해 보면 좋습니다. ‘팔자제요’나 ‘명리 사전’과 같은 책은 그러한 용도로 쓰면 좋은 책이에요. 엉뚱하게 보는 걸 막아줘요.
(제이선생님) 선생님. 요즘은 작명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요? 한자 이름이 그 사람한테 영향을 많이 미칠까요? 요즘은 한글 파동 같은 것으로도 작명하고 하기도 하던데요.
(이을로 선생님) 근데 '갈치'가 왜 '갈치'인지 알아요? '칼의 티'가 나는 물고기라는 이름이에요.
(제이선생님) 칼의 티? 칼 모양이라는 말씀이세요?
(이을로 선생님) 그렇지요. 넙치는 넙데데한 티가 나는 게 넙치야. 어떤 사람이 갈치를 생선 1호, 넙치를 생선 2호라 부른다고 합시다. 이게 도로명 주소예요. 덕은동도 없고, 은부산도 없지. 62번 길 35. 막 이래. 효율성 면에서는 그것이 중요하지요. 그런데 덕(德)이 숨어 있다는 이 덕은동 토박이로 사는 나 같은 사람은 웃긴다 싶어. 멸치를 그럼 생선 3호라고 하지? 그러니까 결국 이름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거든, 정체성.
사람 1호, 사람 2호 그렇게 지으면 웃기잖아. 그래서 한 사람이 평생 추구해야 할 정체성 또는 그 사람이 평생 입어야 하는 옷인 거지. 한자 이름이든지 아니면 한글 이름이라면 그 한글 이름에 담긴 뜻이나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이름은 일종의 컬러링이에요. 전화기 소리랑 같아요. 평생 그 이름으로 부름을 받는 거야. '이우주(李宇柱)'라는 이름이 있어요. 비밀인데 제 딸이에요. (웃음) 초등학생 때까지 '우주선'이라고 놀림당해서 울고 오는 거야.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해 줬어요. 우주선의 우주가 아니고, 너는 '공간의 울타리', '시간의 줄 서기'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라고 알려 줬어요. 시간과 공간을 통솔할 수 있는 여성이 되라는 의미를 담은 거야. 얘가 중학교 때부터 너무 좋아하더라고. 이름에도 나름의 스토리가 있으면 돼요. 한글 이름도 이렇게 의미가 있으면 돼.
(제이선생님) 이름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러주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을로 선생님) 그렇지. 그래서 옛날에는 이름을 짓거나 바꾸면 수저에다가 그 이름을 새겼지.
(제이선생님) 요즘은 이름 바꾸러 오는 사람들이 많죠? 개명 절차가 편해지면서 더 많아진 것 같던데요?
(이을로 선생님) 범죄행위 아니고 세금 안 낸 거 없으면 법원에서 거의 바꿔줘요. 행복 추구권인가 뭔가 해서.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은 자기 이름을 사랑하는 거지. 이름은 중요하게 의미 있게 다뤄야지.
(제이선생님) 네 좋은 말씀인 것 같아요. 자기 정체성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군요.
(이을로 선생님) 그럼요. 스토리만 부여해 줘도 기분이 좋아. 누가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름이 갑로(甲魯)가 아니고 무슨 을로(乙魯)냐고. 저는 개의치 않아요. 제 이름에 대한 의미로 완전 무장 했어요. 내 이름이니까. 자기가 자기를 격려 안 하고, 스스로를 향해 박수를 안 보내면 누가 격려하고 손뼉 치겠어요? 이름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굳게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전문가로서 이름을 보면, 사주(四柱)와 이름의 연관성을 안 볼 수 없지요. 엉덩이가 큰 사람인데 엉덩이가 더 커 보이는 옷을 평생 입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머리가 비어 있어. 그런데 더 비게 하는 이름을 써. 어깨가 좁으면 어깨를 좀 넓혀주고, 엉덩이가 크면 작게 해 주고. 이름은 팔자의 병을 고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정체성을 정립하게 해주는 것이지. 그런 의미로 개명(改名)하게 되면 기분이 좋아져요.
(제이선생님) 일종의 개운법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이을로 선생님) 백만 불짜리 웃음을 웃는 사람이 있어. 그런데 꼭 입을 가리고 웃어. 그 사람은 손만 내려도 개운이 되지. 그래서 개명은 그런 의미인 거예요.
(제이선생님)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이번에는 '은입사'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아까 저에게 잠시 보여주셨는데요.
(이을로 선생님) 은입사는 은실 박이라고 해요. 내가 이걸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다면, 여기는 너무 잘 되어서 오는 사람은 없어요. 코너에 몰리고 두들겨 맞은 사람이 여기에 와요. 그런데 이걸 아무리 봐도 찌그러진 소형차 팔자야. 그 사람이 자신의 운을 바꿀 방법이 없나 물어보면 뭐라고 해주겠어요? 인사동에서 100원짜리 부적 사서 줄 수도 없고. 또 백팔배를 하라는 그런 방책을 주는 것도 나는 좀 그렇고. 그런 게 도통 내 양심에 안 맞는 거야.
(제이선생님) 일종의 부적 같은 느낌인가요? 선생님의 그 사람을 위하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부적 같은.
(이을로 선생님) 네. 그래서 내가 연필로 끄적끄적하니 품격이 없잖아. 그래서 찾기 시작했어요. 이종의 금속을 다루는 방법을 생각했지. 예를 들면, 철판에다가 은을 넣는다든지. 은판에 금을 넣는다든지. 그런 게 있나 싶어 찾기 시작하다가 서울 무형문화재 36호이신 최규준 입사장님을 만나게 됐어요. 배웠어요. 그분한테. 그리고 옻칠은 전주대학교 안덕춘 교수님한테 배웠고.
호랑이 그림을 구궁에 그린 거야. 기분둔갑에서 쓰는 구궁. 지키고 있는 곳이 생문방이야.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막고 있는 곳이 사문방이야. 사문은 막아주고 생문은 온몸으로 보호하는 거예요. 좀 품격 있는 개운법을 내가 디자인해서 해보자고 생각한 거지.
(제이선생님) 선생님의 마음과 정성이 가득 들어간 예술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기문둔갑과 명리의 차이점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을로 선생님) 명리에는 딱 시간(時間)만 있어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태어나면 을미년 기축월 경진일 신사시. 연월일시라는 시간만 있어요. 그런데 기문둔갑은 연월일시라는 시간을 공간에 뿌린 거예요. 그걸 포국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문둔갑은 시간과 공간이 같이 있는 거예요. 그걸 ‘시공 착종한다’고 그래요. 시간과 공간을 갖다가 이렇게 짠다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복잡하죠.
(제이선생님) 아. 정말 못하겠던데요. 기문둔갑은. 포국을 해볼 엄두가 안 나던데요.
(이을로 선생님) 그런데 여기서 주로 쓰는 말이 있어요. 명리는 웃으면서 들어가서 울면서 나온다고 그래요. 명리에는 정답이 없으니. 그런데 기문둔갑은 울면서 들어가서 나중에는 웃으면서 나온다 그래요. 나중에는 평범한 소리로 읽어주기만 하면 돼. 일반인이 볼 때는 기문둔갑이든 명리학이든 독일어나 마찬가지거든. 그런데 이걸 일반인의 언어로 그냥 읽어주기만 하면 돼. 그런데 명리는 그렇게 간단하게 안 돼요.
사람들이 물어요. 기문둔갑을 주로 하는 사람인데 주역 책을 어떻게 내냐고. 그런데 기문둔갑에서는 작괘를 해야 해요. 주역을 모르면 깊이 있게 나아가지 못해요. 육임도 연결되어 있어요. 또, 홍국수를 해석하려면 명리 지식이 반드시 또 필요해요. 그래서 기문둔갑은 종합학문이라고 생각해요.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주역, 육임, 명리, 고천문학 등등이 다 연결되다 보니 복잡해 보이는 거지요. 복잡해 보이는데 익히고 나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요.
(제이선생님) 저는 포국 짜는 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더라고요. (웃음) 이렇게 오랜 세월 상담을 하셨는데요. 명조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상담하실 때의 철학 같은 것이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을로 선생님) 예를 들어 어떤 분이 왔어. 환하게 웃어. 그러면 1차 시스템이 작동해요. '환하네' 상(象)을 본 것이지요. 그런데 1차 시스템에서 끝이 나면 감각만 쓴 것이니 동물과 다름없어. 2차 시스템을 작동해야지요. 사주를 볼 때도, '잘 웃네', '울상이네', '깨끗하네'. 이런 식으로 보게 돼요.
두 번째는 이 팔자의 목적이 뭔지 보는 거예요. 팔자가 가지고 지향하는 목적이 있어요.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느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여덟 글자가 가지는 목적이 있어요. 그러면 그 목적을 이룰 수 있게 운이 도와주나 봐요. 다음으로는 증상을 물어봐요. 무슨 문제로 왔는지. 이렇게 세 가지 적어 놓고 상담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어떤 분이 전형적인 공직이나 학문을 바탕으로 한 선생님 사주예요. 목적이 그래요. 그런데 이분이 갑자기 역학을 한데. 그러면 목적에 반하는 거잖아요. 바람이 안 부는 데 연 날리는 것과 같아요. 방법은 있어요. 연을 들고뛰면 되지요. 그 대신 발 찢어지고 땀나고 그러지요. 가장 쉽게 가는 방법은 목적에 맞춰서 가는 거예요.
장점이 매우 강하고 단점은 약한데, 바보들은 단점만 봐. 평생을 그 작은 단점에 집착하고 시간을 바치는 사람도 있어. 나는 이거 안 봐. 장점을 키우는 쪽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내가 상담에서 고수하는 철학은 '장점 발견가'가 되려고 그래. 후천 세상을 사는 이 사람이 무엇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단점을 보충하라는 말은 안 해.
이 사람의 이 후천이 지금 후천 세상을 살 때 뭐를 써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지. 단점을 보충하라는 말은 안 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더 잘 쓰기 위해서 이 사람이 하여야 할 개운법을 말해주지. 웃는 것도 많이 이야기해요.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건 종이 한 장에 아침마다 마음의 그림을 그리라고 조언하는 거지요.
(제이선생님) 자기의 생각을 마인드맵처럼 쭉 적어보라는 말씀이시지요?
(이을로 선생님) 내가 말하는 개운법을 3개월간 실천하면 인생이 바뀝니다. 컵을 두 개 두고, 하나의 컵에 30개 돌을 넣어 두고 실천할 때마다 돌을 다른 컵에 옮깁니다. 체크리스트인 셈이지요. 식탁 옆에다가 콩알 같은 걸로 한 번 해보세요. 남편 무조건 안아주고 웃어주기. 그러면 이혼한다는 말 안 나와. 이렇게 3개월만 해봐, 이런 식으로 이야기 많이 합니다.
(제이선생님) 결국 자신을 돌아보고 수기(修己)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닦아나가는 노력은 삶을 행복하게 만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