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해방과 타인 이해
성인(聖人)은 유학이 말하는 이상적 인간상입니다. 그런데 신(神)과 같은 성인(聖人)이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선천적으로 그러한 기질을 부여받고 태어난 타고난 성인(聖人)이라 할지라도 자기만의 갈등과 결핍이 있을 것입니다. 후천적 노력을 통하여 聖人이라 칭송받는 사람 역시 고독과 고뇌와 결핍의 과정을 거친 끝에 聖人의 대우를 받았을 것입니다. 소인이 성인이 되기도 하고, 성인이 소인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관계하고 하나의 세상을 이루어냅니다. 세상과 우주는 완전할지 모르겠으나, 개개인의 존재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은 각자의 천명(天命)을 타고나며, 수없이 많은 천명들은 천리(天理)를 이루며 순환합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聖人 역시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소인이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있기에 聖人이라 불리는 사람 역시 존재할 것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다른 인간에 비해 우월한 인간상을 만들어냅니다. 대체로 욕망을 절제하고 시대가 추앙하는 이념에 닿아있는 사람의 이미지를 존경하고 동경합니다. 때로는 부(富)가, 때로는 자유, 때로는 용맹함이나 희생정신이 이념이 되기도 합니다. 특정 시공간의 역사적 지리적 논리는 聖人의 의미를 항상 변화(變化)하게 합니다. 성인의 개념 역시 역(易) 안에 있습니다.
선운 선생님은 '최선'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십니다.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백수가 되어 놀고 있어도, 잠도 못 자고 삶의 최전선에서 뛰어다녀도, 결핍으로 전전긍긍하더라도, 과잉으로 뒤틀리더라도. 사람들은 각자의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낸 결과가 지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자기만의 최선으로 지금 여기까지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聖人이면 뭐 하고, 小人이면 또 어떻겠습니까. 사람에게 부여된 天命은 中道에서 벗어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서』의 영곡전에는 '지극한 中을 세워서 천지의 정신을 체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몸과 마음, 정신과 건강이 치우쳐서 태어납니다. 이러한 치우침을 스스로 깨닫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태어난 시공간의 에너지는 생긴대로의 나를 일깨울 수 있습니다.
나는 전혀 인정할 수 없지만, 내 사주팔자는 나를 이런 사람으로 보여줍니다. 첫째, 주변을 잘 챙기지 못하고 서운하게 만들 수 있다. 둘째,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며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셋째,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고 몰두하는 일이 생기면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넷째, 내가 확실하게 이해하거나 알고 있는 것이 아니면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다섯째, 잔소리가 많은 엄마다. 등등.
사주팔자는 많은 정보들을 제공합니다. 스스로의 불균형과 부조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中을 향한 한 노력의 근거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운 선생님 말씀대로 생긴 대로 살면 될 것도 같습니다. 내가 기울어진 만큼 타인들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너와 내가 만나면, 우리가 만나면 불균형은 균형으로 부조화는 조화로 굴러갑니다. 조화 속에 무임승차하는 느낌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존재함과 함께하는 균형이고 조화이기 때문입니다.
생긴 대로 살면 됩니다. 다만, 나의 天命을 알고 中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은 聖人입니다. 나의 노력은 너에게로 또 온 우주로 전해집니다. 하늘에 전해지고 땅에 전해집니다. 하늘 아래 땅을 딛고 있는 우리들은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聖人의 영향력은 깊고 강렬한 울림으로 공명하게 됩니다.
누구든 있는 그대로 최선이고, 있는 그대로 빛난다는 선운 선생님의 말씀은 명리를 공부하고 상담하는 사람이라면 깊이 성찰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화두라 생각합니다. ‘생긴 대로 살면 된다,’는 가벼운 듯 던지시는 선생님의 말씀은 어쩌면 우리가 궁극에 이르렀을 때 알게 되는 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