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공연히 볼량시장을 어슬렁거리다가 와인가게 앞에서 발이 멈췄다.
소품처럼 앙증맞은 병에 든 와인세트가 눈길을 확 끈다.
병이라는 말도 무색하게 작지만, 어쨌든 와인 다섯 병 들이 한 세트와 진지냐 세 병 들이 한 세트를 샀다.
이 정도 부피와 무게면 가방에 낑겨 넣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러고 보니 그 유명한 진지냐는 여즉 맛도 못봤다.
갔던 길을 되짚어 호텔로 돌아와서 젖은 머리와 옷섶을 말리느라 부산을 떨었다.
체크아웃은 아주 간단했다.
체크인 할 때 호텔 조식비며 관광세까지 선납을 한 상태라 카드키를 내밀며 나눈 인사 한마디로 끝.
택시를 타고 포르투 공항으로 가는 길은 시야가 흐릴 정도로 비가 쏟아진다.
도보여행길이면 꽤나 짜증날 법한 날씨지만 택시 타고 이동한 후 비행기 타고 떠날 길이라 마음은 태평스럽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비행기 탑승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미뤄두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다름 아닌 바로 선물 사기.
관광지에서 시장과 기념품 가게를 들락 날락하면서도 가족이나 지인들을 위한 작은 소품하나 챙기지 못했다.
짐을 늘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차일피일 미룬 탓도 있지만 흔하디 흔한 기념품에 지레 질렸었나 보다.
근데 아뿔싸.
포르투 공항에는 그 흔하디 흔한 기념품조차도 꽤나 희귀했으니.
냉장고 마그넷과 코르크 제품과 아줄레주 타일 공예품이 구색 맞추듯이 드문드문 있을 뿐 종류가 많지 않다.
고르고 자시고 할 게 없다.
게다가 가격은 훨씬 더 비싸다.
선물이며 기념품은 시장이나 기념품 가게에서 미리 구입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오전에 볼량시장에서 얼떨결에 와인과 진지냐 세트를 산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포르투 공항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뭐니뭐니 해도 화장실이다.
아동용 변기처럼 자그마한 양변기에는 변기 뚜껑이 없다.
뚜껑을 덮지 않고 물을 내릴 경우 사방 팔방 튀어 오르는 세균을 영롱한 초록색으로 보여주는 공익광고가 생각난다.
공중 화장실은 우리나라 만한 곳이 없다.
맛 보다는 즐거움과 재미로 먹는 비행기 기내식을 기대하며 나타 하나로 허기를 때웠다.
다섯 시간여를 날아서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화려하고 너른 이스탄불 공항에는 한국인들이 더러 보인다.
비행기 좌석을 찾아가는데 여기저기 들리는 한국말.
" 아..또 가운뎃 자리야..내가 그렇지 뭐.."
20대 쯤으로 보이는 한국인 청년이 짐을 올리며 혼잣말을 아주 큰 소리로 한다.
비행기 뒷 쪽 두 개 짜리 좌석을 예약을 해 둔 터라 뒤로 죽죽 들어갔다.
우리 바로 앞 자리에 앉은 중년의 한국인 여성이 먼저 말을 건다.
"이 자리가 화장실이 바로 뒤라 너무 편하죠.."
그 한국인 여성의 옆 자리는 끝내 비어있는 채로 이륙했다.
여러모로 편하게 간 셈이다.
외국항공이지만 한국인이 많이 보이는 귀국길.
마음이 무척 편하다.
평소 비행기에서는 화장실 걱정, 배탈 걱정에 커피며 와인을 거의 안마시는데 귀국길 비행기에서는 내키는 대로 마셨다.
화장실도 바로 뒤에 있겠다, 다름 아닌 집으로 가는 길인데 뭔들 못하랴 싶은 마음.
카페인과 알콜을 번갈아 들이부어도 몸이 곤하지가 않다.
마음이 몸을 이기는 것인가 싶다.
낯선 길을 오갈 때는 가는 길 보다 늘 오는 길이 더 빠른 느낌이 든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갈 때보다 올 때가 더 빠른 이유는 바람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글쎄, 소요 시간이 비슷한 걸로 봐서 바람의 영향으로 비행시간이 단축되지는 않는 듯 하다.
한 번 갔던 길은 익숙한 만큼 만만해서 더 빠르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비록 하늘길이어도.
드디어 인천공항.
다시 일상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잠시 답답해진다.
여행은 역시나 탈출구가 아니다. 길거나 짧거나 다시 원위치다.
짐을 찾아 서울역으로, 그리고 다시 대구로.
서울역사에 있는 에그타르트 가게를 보니 기분이 묘하다.
하루 전 쯤에 포르투갈 에그타르트 맛집을 들렀거늘.
서울역에서 어묵 국물에 떡볶이와 김밥을 먹으며 기내식으로 뒤죽박죽된 속을 달랬다.
에필로그
처음 써보는 긴 글의 여행기입니다.
달랑 일주일 여행에 이렇게 많이 쓸 게 있냐는 농담 비슷한 핀잔도 들었네요.
'어지간히 울겨 먹는다'는 장난스런 말,
'불쌍해보이니 여행 한 번 더 다녀오라'는 고무적인 말까지.
매 순간 느꼈던 생각들을 두서없이 나열하다보니 주절주절 긴 글이 되었습니다.
여행지에서 수첩 하나를 빼곡이 채워서 기록을 해 둔 터라 글로 풀어내기가 쉬웠던 탓도 있네요.
책과 여행.
그 접점을 찾고 싶다는 마음과 달리 여행 일정별 단상에 그치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포르투갈 여행기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나름 뿌듯하네요.
코로나로 앓아 누웠던 기간을 빼고, 일주일에 두 번씩 올리는 브런치 글쓰기는 재밌었습니다.
글쓰기란 지어내고 짜내는 것이 아니라 컵에 물이 넘치듯 흘러넘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른바 돈과 시간과 건강이 허락되어야 갈 수 있는 여행.
다음 여행은 언제쯤이 될 지 모르지만 그 설렘과 고생을 또 기대해봅니다.
여행은 머나먼 여행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죠.
읽고 있는 책과, 엇비슷한 듯 다이나믹한 매일의 일상들이 여행일 수도 있습니다.
책 이야기와 하루하루를 사는 이야기로 나를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