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우동이다
숙소로 가는 길에 먹을거리를 사러 볼량 시장에 들르기로 했다.
혹시나 싶어 검색해 보니 시장은 이미 문을 닫았다고.
시장이 파장이면 마트에 가면 된다.
숙소 근처에 있는 대형 마트, FROIS.
매장 생김새가 우리나라 대형 마트랑 비슷하다.
마트 출입문 앞에 유니폼을 입은 경비원도 우뚝 서있어서 공연히 마음이 놓인다.
리스본 마트에서 겪었던 '돈 컴인 차이니즈'의 인종차별은 겪지 않을 듯하다.
저녁시간인데도 마트는 한산하다.
'핑구 도스'보다 매장이 널찍널찍하다.
붐비지 않으니 천천히 다니기 좋고 상품 구색도 다양하다.
자그마한 카트를 탈탈 끌면서 장을 봤다.
주스, 요거트, 초콜릿, 그리고 배 3개.
서양배가 우리나라 배보다 맛이 없다고들 하는데 내 입맛에는 서양배가 더 맛있다.
껍질째 먹을 수 있어 편하고 씨앗도 작아서 먹기 좋다.
아삭한 맛은 없지만 부드럽고 달다.
나 혼자 먹을 듯하여 3개를 골라서 비닐팩에 담았는데 무게 다는 곳이 안 보인다.
계산할 때 물어보기로.
어슬렁 대며 걷던 걸음이 널찍한 주류 매장 앞에서 딱 멈췄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와인을 비롯하여 종류별 색깔별 술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는 곳.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놀랍다.
병이 예뻐서, 맛이 궁금해서 등등 이것저것 욕심은 난다만 짐을 늘리면 안 된다.
결국 그린 와인 한 병만 집어 들었다.
마트 모퉁이에 있는 빵가게.
익숙한 맛을 찾다 보니 머핀과 패스트리와 나타를 골랐다.
빵 가격도 놀랄 만큼 저렴하다.
우리나라 빵의 절반 가격도 안된다.
관광지가 아닌 생활권으로 들어오면 포르투갈의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체감한다.
배는 계산대에서 무게를 달아준다.
큼직한 비닐봉지가 축축 늘어지게 들고 숙소 도착.
이미 어둑해진 터라 슬슬 허기가 진다.
포르투갈에서 6일째를 맞는 이 날.
이상하게 무척 생각나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잔치 국수'.
주말이면 짜파게티가 아니라 잔치 국수를 주로 만들어 먹곤 한다.
면보다는 육수로 만든 국수국물이 좋아서 종종 해 먹는 음식이다.
국수가 먹고 싶다는 말에 딸도 맞장구를 친다.
호텔 레스토랑 메뉴판 제일 위에 '누들'이 적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유럽에서의 누들이면 베트남 쌀국수 같은 것이 아닐까 짐작만.
잔치국수가 간절한 지금 쌀국수도 감지덕지다.
고수만 빼달라고 해야지.
국수 국물을 양껏 들이킬 생각만으로도 식욕이 당기고 기운이 난다.
레스토랑 메뉴판 제일 위에는 역시나 '누들'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냥 누들이 아니고 'Udon Noodle'이다.
우동 누들이 뭘까? 우동 면발 국수?
어쩌면 베트남 쌀국수가 아니라 일본식 우동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 우동 국물도 나쁘지 않다.
그리하여 1인분 2만 원인 우동 누들 2인분 주문.
혹시나 싶어 '고수'는 빼달라고 했더니 고수는 원래 안 들어간다며 주문받던 직원 눈이 동그래진다.
뜨끈하지만 시원한 느낌의, 국수 국물 혹은 우동 국물.
생각만 해도 피로가 녹아내린다.
드디어 우동 누들 두 그릇이 나왔다.
큼직한 우동 면기에 담겨 나온 것은 분명 우동 면발이다.
두툼한 면발이 가쓰오부시 국물에 담긴 것이 아니라 로제소스에 버무려져 있을 뿐.
오렌지색 로제 소스에 골고루 버무려진 퉁퉁한 우동 면발 위에는 굵직한 돈까스가 한가득 올려져 있다.
낮에 먹은 바칼라우 튀김의 느끼함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또 돈까스라니.
게다가 미끄덩하고 끈적한 로제소스에 버무린 우동.
고수를 빼달라는 말에 동그래지던 직원의 눈이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국물 한 방울 없는 우동 누들에 고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어딨나.
"세상에 ...어쩌나." 나의 탄식에
"어쩌긴...그냥 먹어야지." 허탈해하는 딸.
당황과 황망을 넘어서는 낭패감.
우동 국수라는 이름의 음식에 국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파스타면이 아닌 우동면을 로제소스에 버무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뻑뻑한 우동사리를 포크로 뒤적이자니 한숨만 나온다.
로제소스 범벅이 된 불어 터진 우동보다는 겉바속촉 돈까스가 그나마 입맛에 맞다.
비록 속은 느 멀 거릴 지언정.
많이 남겼더니 직원이 다 먹은 거냐고 재차 확인한다.
느끼해서 못 먹겠다고는 차마 못하고 양이 너무 많다고 했다.
더 필요한 건 없냐고 묻는다.
느끼한 속을 달래기 위해 커피 한 잔만 주문했다.
우동과 누들이라는 이름에 방심했다.
흥건한 국물이 있는 거냐고 한 번 물어볼 법도 한데 일본 우동과 베트남 쌀국수 정도로 넘겨짚었으니.
어쩌면 넘쳐나는 한국인 관광객들로 인해 잔치국수 비슷한 것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 그중에서도 식문화의 차이가 지대할진대 그 차이를 너무 시피 봤다.
우동 누들, 이름빨에 속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