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어디서나 뜨고 진다
그 유명한 모로 언덕의 일몰.
얼마나 멋졌으면, 3일 연거푸 모로 언덕에서 일몰을 봤다는 여행객도 있었다.
저녁 무렵 모로 언덕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시끌시끌 어수선했다.
버스킹을 준비하는 사람들, 어깨에 멘 매대에 초콜릿을 들고 다니며 파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과 자리를 찾아 오가는 사람들.
잔디밭 사이를 헤집고 다녀도 앉을자리가 마땅찮다.
앉을 수 있게 깔아놓은 돌 중에 빈자리는 대부분 물에 젖어 있거나 갈매기 똥에 흠씬 젖어 있다.
돗자리는 언감생심이고, 택배상자 뽁뽁이라도 있으면 참으로 요긴할 듯.
아쉬운 대로 돌 귀퉁이에 옹색하게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먹구름이 사라진 저녁 하늘은 파랗다.
하늘이 맑으니 일몰도 예쁘겠지.
시시각각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든다.
아침에는 우리 둘밖에 없던 적막강산 모로 정원이 해질 무렵에는 인산인해다.
흥이 나고 신이 나야 마땅한데 마음이 점점 어두워진다.
"동 루이스 2층 다리를 이 사람들과 같이 건너야 되는 거지?" 딸의 말에,
"해지고 나면 다리 위도 어둡겠지?" 나도 걱정을 보탰다.
그냥 건너도 무서운 판에 사람들 무리에 휩쓸려 가야 한다니.
가슴이 조여드는 기분.
앉아 있는 다리에 저릿저릿 오금이 저린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지 않은가.
일몰에 대한 기대감보다 다리를 건널 두려움이 더 앞서자, 갑자기 일몰이 시시해지기 시작했다.
해는 어디서나 뜨고 지는 데 그까이꺼 뭐 특별할 것 있나 싶은 마음.
모로 언덕 분위기도 익숙한 듯 식상하다.
비에 섞인 비릿한 풀냄새 진동하는 동네 뒷동산이나 집회 준비하는 어수선한 학교 노천강당 같다.
엉거주춤 앉은자리는 무려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온 포르투의 일몰 맛집이거늘.
일몰.
언덕과 전망대가 많은 포르투갈에는 일몰 핫스팟도 많다.
리스본 알칸타라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금빛 노을, 그리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넘어서는 벅찬 감동을 받았던 리스본 테주강변의 일몰로도 그 아름다움은 충분히 만끽했다.
그럼에도 모로 언덕에서 일몰을 기다리는 이유.
대단한 뭔가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호기심 때문인 듯하다.
한데 돌아갈 길에 대한 걱정이 그 기대와 호기심을 눌러버렸다.
둘이 동시에 툭툭 털고 일어났다.
일몰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동루이스 2층 다리 쪽으로 갔다.
맙소사.
떼로 몰려서 무리 지어 다리를 건너오는 사람들.
토요일 저녁이라 더 붐비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세를 거스르듯 인파를 헤치며 건너가야 할 판이다.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 조심하며 앞만 보고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딸이 뒤에서 내 팔을 잡아끈다.
"반대쪽이 사람이 적어서 더 안전해 보여. 건너가자."
딸도 내심 긴장 했나 보다.
반대편으로 건너려니 철 구조물 틈새로 시퍼런 강물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인다.
후들들들 건너서 또 무작정 직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
사람들이 벽에 붙어 서있는 뉴욕의 지하철 승강장 사진도 생각난다.
달려오는 전동차 앞으로 떼밀릴까 봐 무서워 벽에 찰싹 붙어 있던 사람들.
전동차가 쌩쌩 달리는 다리 위에서 실수로 떼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공포가 인다.
인종차별로 헤까닥 한 사람이, 그것도 술에 취해 '차이니즈 고 투 헬'을 외치며 와락 밀치면?
사색이 되어 로봇처럼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랑 눈이 마주쳤다.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살짝 긴장이 풀린다.
어린아이도 태연히 건너는 곳인걸.
풀린 긴장은 곧 다시 팽팽해진다.
눈앞에 펼쳐진 진풍경.
젊은 남녀 한 쌍, 허리쯤 오는 다리 난간에 몸이 휘게 기댄 채 키스와 포옹을 번갈아 하며 쓰담 쓰담 행복해한다.
아니, 저러다가 무게중심을 잃으면 어쩌려고!
다들 즐겁고 행복한 다리 위에서 세상 근심을 다 짊어지고 있다.
드디어 다리 끝.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그 안도감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니, 낡은 지붕 위 갈매기 두 마리가 보인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한 마리는 풀쩍 날아간다.
하얀 달이 떠있는 파란 하늘 아래 무심한 듯 초연하게 앉아 있는 하얀 갈매기.
아름답다.
곧 뒤따라온 딸도 조용히 갈매기 사진을 찍는다.
철학자연 초연해 보이는 갈매기 사진은 딸의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그리고 나의 브런치 사진으로 쓰고 있다.
일몰을 포기하고 오는 길에 의외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장면을 마주한 셈이다.
우리는 늘 대단한 뭔가를 찾아 몰려다니며 요란을 떤다.
지구를 휙 돌아 이렇게 멀리 와서 또 한 번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주변의 일상이 아름답고 놀랍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