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황 May 22. 2024

의대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 의료비용

의료 비용이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칠 줄 알았다면...

의대에서는 의학을 공부했다. 수련하는 병원에서는 의학이 환자에게 적용되는 실제의 과정을 보았다. 그렇지만 어디에서도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것은 단 하나, 의료 비용의 현실이었다. 의학을 모르면 어차피 의사가 될 수 없으니 가장 기초부터 가르침이 내려온 것이리라. 그런데 의료 비용이 환자에게 끼치는 영향은 의학의 힘보다 막강할 때도 많다. 수입이 없거나 적으면 정부에서 보험을 준다. 그렇지만 수입이 적지도 많지도 않아 의료 보험 사각지대에 빠지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2023년 기준으로 캘리포니아에서는 개인 연간 수입이 $47,520 미만이거나 사인 가족의 연간 수입이 $97,200 미만이면 수입에 따라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보조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수입이 어느 정도 있더라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 나면 건강보험료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의대 시절 정부에서 운영하는 극빈자를 주로 치료하는 병원에서 실습을 돌았다. 환자의 대부분이 노숙자였다. 당시 내가 보는 환자는 4-5명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중국계 미국인이었던 미스터 리Lee가 조금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는 심한 당뇨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 영향으로 신장이 거의 망가져 있었다. 보통 신장이 할 수 있는 능력 반의 반도 되지 않아 일주일에 몇 번씩 투석을 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새파랗게 어렸던 의대생에게 곁을 내주지 않던 그도 주말까지 반납하고 그의 건강을 보살피러 온 나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프랜시스 피바디 Francis Peabody, 하버드 의대 교수가 환자를 걱정하는 의사의 마음에서 치료가 시작된다고 가르친 것처럼. 그렇게 치료에도 조금 진전이 보였다.


중국에서 이민 온 일 세대의 자제로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란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차라리 수입이 아예 없거나 극도로 낮았다면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았을 텐데, 성실함으로 무장한 이민자의 가정에는 적지만 많지는 않은 수입이 매월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보험 대신 음식을 택했다. 다행히 큰 지병이 없어 진료를 보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중년에 노숙자가 된 그에게도 의료 보험은 없었다. 수입이 없으니 당연히 본인 부담 없이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의료 보험 대상자였다. 그런데 그는 어디에서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미스터 리는 몸의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동네 병원으로 향했지만 보험도 병원비를 낼 돈도 없는 그에게 진료를 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신장이 다 망가지고 나서야 간 응급실에서 겨우 진단과 응급 치료를 받은 그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전원을 오게 되었다. 신장 기능이 너무 나빠 당장 이식 수술이 필요했지만 기증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식을 기다리며 길고 긴 투석을 받아야 했던 그는 약해진 면역체계를 뚫고 들어온 박테리아의 감염에 다시 한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그가 처음 동네 병원을 찾았을 때 보험이 있었더라면 당뇨병의 진단과 치료가 조속히 이루어져 신장의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지지 않았을지도 감염에 취약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의료 보험이 있더라도 미국 의료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 경제적 파산의 이유 1 위로 꼽히는 것은 직장을 잃어 수입이 없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예상되는 이유다. 두 번째로 꼽히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의료 비용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직장을 잃기도 하지만 직장을 잃으면 직장에서 제공하는 보험도 사라진다. 2023년도 미국에서는 파산의 첫 번째 이유는가 이제 의료 비용이 되었다. 게다가 의료 비용이 점점 더 높아지니 져 파산의 67%가 의료 비용 때문으로 집계되었다. 2015년도에는 3.1 조 달러로 집계되었던 미국 의료 비용이 2020년에는 4.1조 달러로 가파르게 올라섰다. 2028년도에는 의료 비용이 6.2 조 달러로 상승할 것이라는 예견도 나왔다. 2020년도의 의료 비용에 비교하면 50%나 인상된 수치다. 2023년도에 나온 설문 조사에 따르면 46%의 미국인이 의료 비용으로 인한 빚 때문에 자가 마련을 미루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인구의 절반 정도가 필요한 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한다.


환자의 건강이 의료 보험과 비용에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전국의 의대생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그 앎으로 다른 전공을 선택하거나 실제로 의료를 행하지 않고 다른 커리어를 선택한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다행스럽게도 미국에서는 원칙적으로 신생아중환자실의 아기들은 모두 보험이 있다(물론 엄마가 신청은 해야 한다.) 게다가 집중치료를 받는 곳이니 보험에서 병원에 지급해 주는 비용이 낮지도 않다. 진단에 필요한 테스트나 치료에 필요한 약이나 시술, 수술에 대해 보험회사로부터 인가를 받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자유도 조금 더 주어진다. 따라서 의료 비용에 대한 큰 염려 없이 환자에게만 집중해 치료할 수 있다. 신생아분과만이 아니라 다른 과에서도 누려할 자유가 아니던가. 그로부터 얻어지는 환자의 건강이, 공평하지 못한 미국 의료계의 현실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Turner, Terry. "49+ US Medical Bankruptcy Statistics for 2023." RetireGuide.com, 20 Oct 20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