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황 May 15. 2024

회복탄력성

오직 한 사람의 지지와 사랑, 그것뿐이다

먼지가 켜켜이 내려앉은 중환자실 한 구석, 발이 자주 스치지 않는 구석에서 나는 구슬피 울었다. 멀리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햇귀가 나의 눈이 멀게 했으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아기 몸에 속한 구멍 하나하나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던 장면이 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저 태양 빛이 핏빛으로 변하는 과정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지난밤, 꼬박 열 시간 넘게 단 한순간도 아기를 떠나지 않았는데 아기가 나를 떠났다. 결국 죽고 말았는데, 나는 아기에게 지옥을 경험하게 했을까. 편안한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너무 큰 고통을 작은 아기에게 내가 주었을까. 내가 모르는 고통도 너에게 갔을까. 갖가지 시술이 필요했던 아기라 더 아렸다. 최대한의 정성을 쏟아 최소한의 고통을 주고 싶었지만, 완벽하게 실패한 밤이었다. 아기의 생명을 구하려 했지만 끔찍한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기는 태양이 다시 뜨자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내가 구할 수 없는 생명이 있다. 내가 신이 아님으로 당연한 결과다. 다만 스스로를 담당 의사라고 일컬었던 부족한 사람에겐 자책만 남았다. 하나의 죽음은 스치고 지나기만 해도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물며 죽음을 직접 만지고 느꼈다면? 그 슬픔은 극복할 수 없다. 그냥 짊어지고 갈 뿐이다. 그런 슬픔은 내 몸의 한 일부분이 되어 평생을 함께 한다. 슬픔의 고개를 넘어 다시 마주친 살아 있는 생명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 그 희망 때문에 다시 한번 자꾸 떨어지는 고개를 들고 그 고개를 넘어간다. 매번 모든 죽음이 힘겨웠다. 그런데 이번 죽음은 더없이 힘겨웠다. 다시는 병원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회복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끝 일지도 모르겠다.’


약한 마음이 솟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렇지만 끝이 아니었다. 의외로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이 되어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곁에서도 놀랄 만큼의 빠른 회복의 공신은 단순했다.


주변의 지지.


내가 구석에 숨어 울고 있을 때, 친구이자 동료인 척Chuck이 나를 찾았다. 엉엉 우는 나를 안아주었다. 내가 슬픈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도 느끼는 감정이었으니까. 그도 겪고 있는 고통이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만 느끼는 슬픔이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진정한 위로가 나를 감쌌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아기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의료진을 모두 모았다. 으레 하는 일이지만, 모두 급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기에 더욱 절실했다. 솔직히 아무도 몰랐다. 아기의 상태가 바닥을 치고 그 바닥으로 꺼져 버릴 줄은. 우선 의학적 처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각자 마음을 다 털어놓았다. 모두의 눈이 젖었다. 눈물이 흘러나와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총괄 지휘하던 내가 가장 마음 아파하고 속상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주었다. 나의 노고와 마음을 헤아려주고 내 시술, 처치, 모두 흠이 없었다고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한 명씩 돌아가며 나를 안아주었다. 혹시나 내가 자책하고 있을까, 내가 과정은 보지 않고 결과에만 매달려 있을까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함께 오래 일해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간호사와 호흡치료사의 위로로 머리로는 믿기 시작했다. 내 잘못이 아님을, 나는 신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며칠이 지났다. 난 충분히 회복해 다시 평소의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낼 수 있게 되었다.


발달심리학자 에미 베르너Emmy Werner 주도로 40년에 걸쳐 진행된 유명한 종단 연구가 있다. 연구진은 1955년 하 와이 카우아이섬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을 추적 조사했는 데(1, 2, 10, 18, 32, 40세), 출생 전후 스트레스, 가난, 원만하지 않은 가정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고위험군으로 보았다. 성장하면서 가족의 사랑과 신뢰를 받은 아이의 회복탄력성 높았다. 그렇지만 최악의 가정환경에서 컸더라도 눈부신 성장을 한 아이들도 있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연구진은 어리둥절했다. 꼼꼼히 찾아내 밝혀낸 결과, 차이점은 놀라웠다. 아이의 입장을 전적으로 이해해 주고 받아주는 어른 한 명,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 지지자가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오직 한 사람이라도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줬다면 그 아이의 회복탄력성은 높았다.


한 사람의 지지만으로도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아이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뱁슨 대학 교수 롭 크로스 Rob Cross도 회복탄력성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아니라 단단한 관계와 연대로 강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강한 정신력 만들기(Mastering Mental Toughness: The Ultimate Guide to Developing Unbeatable Mental Strength & Resilience)>의 저자 조단 윌리엄스Jordan Williams도 회복 탄력성은 타인과의 깊은 관계를 맺고 의미 있는 연결고리를 강화함으로써 증진된다고 주장했다. ***주변의 지지는 정신질환의 유전적 또 환경적 위험성을 감소시킨다. 효과적인 대응기제를 기르고 여러 신경생물학적인 요소를 바꾸기 때문이다. **의사와 간호사들에게도 사회적 지지는 그 힘을 발한다. 동료들의 높은 지지는 정서적 고갈을 막고 번아웃을 방지한다. 그날 아침, 나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 열 명이 넘는 의료진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오직 그 차이 하나로 나는 금세 회복할 수 있었다. 회복탄력성에 더 탄력이 붙어 눈부신 회복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 Singer, Jean, and Rob Cross. “Network Impacts on Well-Being: A Review of The Research.”

** Jenkins, Richard, and Peter Elliott. "Stressors, burnout and social support: nurses in acute mental health settings." Journal of advanced nursing 48.6 (2004): 622-631.

*** Ozbay, Fatih, et al. "Social support and resilience to stress: from neurobiology to clinical practice." Psychiatry (edgmont) 4.5 (2007): 35.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