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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Nov 03. 2024

안갯속의 가족

미셀의 동공이 부풀어 올랐다. 모든 빛이 뾰족한 화살이 되어 눈 안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방금 경주를 마친 말처럼 심장이 마구 뛰었다. 눈을 뚫고 나오려는 듯 핏줄이 불거지고 머리마저 터질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말이 자꾸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담배 연기처럼 뿌연 안개가 입 밖으로 하아아 하고 나온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와 안개가 합쳐지면 저런 탁함이 나오려나. 흐릿한 안개가 입 밖으로 나왔다. 미셀의 몸이 불같이 뜨거워지다 갑자기 조금 더 뜨거운 액체가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곁에서 연거푸 하얀 가루를 코로 흡입하던 잭슨의 어깨가 들썩였다. 붉은 피를 철철 흘리는 미셀을 보고는 잭슨의 눈은 더 커졌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과 떨리는 손으로 겨우 구급차를 불렀다. 미셀이 코로 흡입한 하얀 가루는 순식간의 점막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눈 깜박할 사이에 산물로 변해 빅아일랜드 활화산 용암처럼 빠르고 뜨겁게 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어김없이 태반까지 침투한 새빨간 열정의 산물이 혈관을 수축시켰다. 태반이 떨어졌다. 태아의 생명 줄이 그렇게 툭 하고 끊어졌다. 

copyright Mayo Clinic

응급실에 도착한 미셀은 곧바로 수술실로 옮겨졌다. 서둘러 배를 가른 의사는 빨갛게 물든 양수를 헤치고 아기의 머리를 찾아 겨우 꺼냈다. 아기의 팔다리는 시든 배춧잎처럼 축 처져 있었다. 몸이 시뻘건 양수로 뒤덮여  있었다. 수술실 밖에서 약에 취해 고성을 지르던 잭슨은 경비의 손아귀에 잡혀 병원 밖으로 쫓겨났다. 전신 마취에서 깨어난 미셀은 전신마취의 여파인지 아니면 코카인과 대마초의 마법 같은 힘 때문인지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미셀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간호사가 물었다. 

“미셀, 괜찮아요? 지금 병원이에요. 방금 전신 마취해서 제왕절개 수술을 했어요.” 

미간을 찌푸리며 좁혀지지 않는 동공으로 간호사를 쳐다보다 간신히 물었다. 

“아기는…… 아기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당황한 표정으로 어떻게 말을 전해야 할지 고민하는 간호사를 보며 미셀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 덜 뜨거운 액체가 볼을 타고 흘렀다. 

“지금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는데 곧 의사가 와서 상태를 알려줄 거예요.” 

그 말에 미셀은 눈을 번쩍 떴다. 천장의 환한 형광등이 한낮 사막의 태양처럼 눈을 공격했다. 다시 한번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미셀은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병원 밖에서 경비의 차가운 눈빛을 받으며 난동을 피우던 잭슨은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한겨울 얼음장같이 차가운 매트 위에 조각처럼 누워 있던 아기에게 달린 관과 줄은 정확히 스물여덟 개였다. 작은 아기에게 연결된 기계는 다섯 대, 아기를 담당하는 의사는 세 명, 협진을 요청받은 의사는 총 네 명, 담당 간호사는 두 명이 배정되었으나 실제로 병실 안에서 돕는 간호사는 다섯 명이었다. 호흡기 치료사도 두 명이 달라붙었다. 이토록 많은 의료진의 정성스러운 치료에도 아기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의료진은 더 큰 병원으로 전원을 요청했다. 전원팀이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고 떠나기 전, 엄마의 병실로 향했다. 인기척이 들려 노크를 하고 들어간 전원팀은 빈 병상을 보고 의아해했다. 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들은 깜짝 놀랐다. 어두운 화장실 안, 작은 틈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 때문이었다. 미셀과 잭슨은 화장실 바닥에서 반쯤 앉고 반쯤 누워 있었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중얼대다 갑자기 폭발하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화장실 허공은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바닥에는 하얀 가루와 꽁초가 뒤엉켜 있었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아기는 떠나야 했다. 헬기는 아기의 미래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갈랐다. 

전원한 신생아중환자실에서는 서른 개가 훌쩍 넘어가는 관과 줄이 아기의 몸 곳곳에 드리워졌다. 수액과 강심제가 더 추가되었다. 담당의는 잭슨과의 통화를 계속 시도했다. 시간이 흘러도 받지 않는 야속한 잭슨을 대신해 미셀에게 전화를 했으나 무심한 신호음만이 들릴 뿐이었다. 결국 간호사가 병실 안으로 전화기를 들고 찾아갔다. 약에 취해 있던 미셀은 전화기를 손에 쥘 힘조차 없었다. 아기가 입원해 있던 동안 미셀과 잭슨은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아기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앱을 알려줘도 보지 않았다. 의료진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병원에서 전화 한 통도 하지 않는 유일한 부모였다. 

미국 테네시주에 살고 있는 작가, 뎁 버드샐Deb Birdsall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 <엄마의 중독을 극복하기>(Overcoming My Mother’s Addictions)에서 학대와 방치가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방대한 영향을 담담히 진술한다. 뎁은 손녀 릴리Lili의 목소리로 릴리가 겪은 십 년을 기록했다. 릴리는 10 년동안 8번에 걸쳐 다른 가족과 살아야 했다. 릴리의 엄마는 약물 중독으로 감옥에 가야 했다. 릴리는 그의 여파로 친척과 위탁 가정집을 전전해야만 했다. 릴리는 엄마의 삶은 엄마의 선택으로 엉망진창이 되었고 자신이 엄마를 도울 수 없다는 것 안다고 말한다. 영원히 엄마의 딸이지만, 엄마의 곁에 있을 수 없다고, 엄마가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전한다. 약물중독은 전 세계적인 문제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선택으로 고통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아기의 시간은 멈춰버린 혈류의 흐름처럼, 엄마 뱃속에서 태반이 떨어져 나간 순간에 딱 멈추어 있었다. 네모난 기계는 아기의 폐로 끊임없이 숨을 불어넣어 줬다. 한 번도 병원에 오지 않는 부모에게는 아직도 치료에 동의할 권리만이 남아 있을 뿐, 아기를 집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어차피 원하지 않는 아기였을런지도 모르겠다. 주지 않은 시간만큼 아기를 사랑하지 않았나 보다. 두어 차례 수술을 마친 후, 아기는 수양부모의 집으로 퇴원했다. 매일 간호사가 집으로 오는, 수많은 의료기기와 기구로 둘러싸인 집에서 아기는 호흡기 치료로 안개같이 피어오르는 네뷸라이저 치료를 받았다. 안개가 걷히고 아기의 얼굴이 문득문득 보일 때마다 약에 취해 있던 미셀의 얼굴이 얼핏 얼핏 보이는 것 같았다. 존재만 던져주고 떠난 부모의 무책임함이 미래의 흐릿함을 더 진하게 더해주는지도.


책 링크: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365962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6702420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0093194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b674f80252314021?referrer=search2Dep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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