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다리, 타임아웃 몰, 맥낼리, 반즈앤노블, 키노쿠니야 서점
동생도 쉬는 날이라 우리와 함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꼭 보고 싶었던 브루클린 다리도 구경하고 유명한 피자집도 가기로.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지하철이 지상철로 바뀌고 강이 보이길래 이 동네가 바뀌었나 했는데 동생의 얼굴이 굳는다.
“언니, 우리 지하철 잘못 탔어.”
완벽하지만 허술한 동생의 귀여운 실수에 그저 웃었다.
“네가 이러니까 전혀 놀랍지가 않다.”
뉴욕에서 이리 오래 살았으면서 지하철을 잘못 타는 실수를 하는 동생이 그저 귀여워 깔깔 웃었다. 벨라는 옆에서 책을 읽느라 정신이 없다. 보이는 광경이 좋아 동생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뉴욕에서 지상철도 타보고 좋네. 여기서 보는 뉴욕 스카이 라인도 좋다. 날씨도 좋고.”
브루클린 다리를 보려고 갔는데 결국 다른 동네에 도착한 우리는 구글 맵을 보며 걸었다. 한참 걷다 보니 동생 친구가 사는 건물이 보였다. 동생 친구들도 이미 성인이 되어서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럼에도 왠지 동생 친구라면 그저 어린아이들 같은 느낌이 든다. 벨라의 친구들도 매번 만날 때마다 키고 훌쩍 큰 것 같아 이상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매일 보는 내 아이는 크고 있는지도 모르다가 남의 집 아이들을 보면 부쩍 큰 것 같아 놀랄 때가 있다. 소식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동생 친구들의 근황은 나를 또 놀라게 했다. 일하는 곳도 바뀌고 또 새로운 가족도 생기고.
브루클린 동네의 유명한 책방, 마법 같은 책방 ‘책은 마법이에요 Books Are Magic’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밝은 색깔로 칠해 놓은 외관이 눈에 띄어서 놀랐다. 페인트로 상호를 크게, 또 벤치까지 꾸며놓아 사진 찍기 좋았다. 환한 아침 햇살로 가득한 책방이었다. 주말 아침이라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부터 어린 학생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 또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까지 정말 다양한 연령의 책방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책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어린아이들과 책을 읽어주는 부모들. 내가 좋아하는 전경 중 하나다. 벨라도 책을 골라 한쪽 구석에서 책을 읽고 나는 책방 구석구석을 탐험했다. 아이들을 위한 책 공간이 책방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어 인상 깊었다. 또 다양한 책도 또 책방 굿즈도 구비해 놓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벨라와 책도 고르고 굿즈도 골라 값을 치렀다.
브루클린 다리를 향해 걸어가다 유명한 스콘 집에도 들렸다. 버터밀크 스콘이었는데 버터를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고소함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함께 준 잼도 골고루 발라 맛나게 먹었다. 스콘을 사는 동안 그 사이를 못 참고 한쪽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벨라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정말 좋아했지만 벨라만 할까. 책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라 내 아이인가 싶기도 하다.
유명한 피자집이 둘이나 붙어있어 고민하다 더 유명한 그리말디 피자집에 갔다. 줄이 조금 있었는데 금세 앉을 수 있었다. 2-3층에 앉고 싶었는데 자리가 없어 그냥 일 층에 있는 바 옆에 있는 높은 테이블에 앉았다. 햇살이 다시 우리를 밝혀주어 기분이 더 좋아지기까지 했다. 샐러드와 피자 두 종류를 시켜 나누어 먹었다. 기대했던 만큼 피자가 맛있어서 좋았다. 창 밖으로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어 얼른 나왔다. 줄을 서 있으면서 서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보여서 안타까웠다. 우리처럼 곧 들어가서 맛있는 피자를 먹을 수 있길 바랐다.
최근에 본 여행 책자에서 본 일본 커피점 아라비카 커피집에 갔다. 큰 기대 없이 커피를 시켰는데 맛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더 좋은 커피 맛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루클린 다리 사진 맛집이었다! 안에서 본 바깥의 전경이 커피집 고유의 향과 멋이 곁들여져 뉴욕의 정취가 그대로 담겼다. 사진도 좀 찍고 커피 맛도 즐기고 밖으로 나와 강가로 향했다.
바람이 부니 더 추운 것 같았다. 그나마 해가 쨍해서 좋았다. 좀 더 걸어 온실에 갇힌 회전목마를 구경했다. 아마도 강바람이 세서 이리 만든 것 같았다. 회전목마를 유리성 안에 넣어놓은 것 같은 이 특별한 장소가 왠지 아이들의 추억 장소를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차가운 강가의 바람을 녹여주는 햇살을 가두는 것 같아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따스한 온실 안의 회전목마를 탄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뜨끈한 사랑을 평생 기억할까. 열흘간의 뉴욕 여행을 벨라는 평생 기억할까. 기억하지 못하면 어떠랴.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은 영원할 텐데.
다시 조금 걷다 핑크빛 꽃을 흩날리는 나무를 만났다. 동생, 나, 벨라는 여러 조합으로 사진을 찍었다. 곁에서 이십대로 보이는 딸과 우리보단 나이가 많은 엄마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가 둘이 함께 찍어준다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휴대폰을 건넨다. 뒤에서 멋진 사진을 위해 머리를 빗고 있던 엄마에게 딸은 어서 오라고 난리다. 어딜 가나 엄마들은 왜 그럴까. 아마 나도 십 년쯤 지나면 저런 행동으로 벨라에게 혼나겠지. 사진을 나보다 훨씬 더 잘 찍는 동생이 그 모녀의 사진을 찍어줬다. 그 장면을 보니 왠지 나와 벨라의 10-20년 뒤의 모습일 것 같아 왠지 뭉클했다. 이 작던 아이는 곧 나보다 더 큰 키로 나를 내려다보며 잔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나와의 여행을 다시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또 우리를 뚫고 지나가야 다시 저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사춘기가 지나고 대학생쯤 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타임 아웃 회사(잡지와 웹사이트로 뉴욕 문화를 전파한다)에서 만든 공간에 도착했다. 앞에는 하트 모양으로 포토존을 만들어 놓았다. 하트 뒤로 새파란 물이 보이게 사진을 찍었다. 일층에는 마켓이 들어서 있어 각종 음식이나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각종 스탠드를 둘러보고 꼭대기층으로 올라가 다시 전경을 구경하고 내려왔다.
무한도전에서 찍어 한국에서도 유명한 덤보 DUMBO(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 사진을 찍으러 발길을 옮겼다. 역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에서 괜찮은 사진 찍기란 불가능하다. 그냥 대충 찍고 다리 쪽으로 걸었다. 다리 위로 올라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 다시 맨해튼으로 돌아갔다. 사람이 바글바글했는데 드문드문 경찰도 보이고 옆으로 자전거 전용 도로도 보였다. 동생 말로는 원래 자전거 탄 사람도 많았는데 워낙 사고가 많아서 금지시켰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연인들의 자물쇠도 곳곳에 달려있다. 사랑의 증표라기에는 너무나 단순한 쇠 자물쇠라 미국에도 한국의 아기자기하고 예쁜 자물쇠가 어서 유행하기를 바랐다. 삼십 분쯤 걷자 다리 맞은편 맨해튼에 도착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타임 스퀘어 쪽으로 향했다. 벨라가 좋아했던 맥낼리 서점을 다시 들리기 위해. 주말이라 오히려 사람이 적어 보였다. 유동 인구가 더 줄수도 있나 보다, 이 바쁜 회사 주변에는. 근처에 있는 반즈앤노블 서점도 들렀다. 다른 곳보다 훨씬 더 큰 데다 음반까지 팔아서 그 크기가 더 거대했다. 화장실을 쓰고 싶으면 영수증을 보여줘야 하는 시스템도 조금 신기했다. 아마 그렇지 않으면 그저 화장실을 쓰기 위해 오는 관광객과 노숙자를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른 곳에 비해서 앉을자리도 협소한 데다 오로지 스타벅스 안에서만 의자가 놓여있었다. 도시의 삭막함이 조금 느껴졌다.
뉴욕 도서관 바로 앞에 있는 키노쿠니아 서점에 들렀다. 일층에는 갖가지 책이 정말 많았다. 이층에는 주로 만화책이 많았는데 영어로 된 책도 많지만 일어로 된 책도 많았다. 게다가 한국 웹툰을 만화책으로 엮은 책도 꽤나 많았다. 정말 요새 한국 문화 유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20여 년 전 한국을 떠났을 때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어디를 가나 한국 드라마, 가수, 그리고 음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국 문화가 자꾸 세상으로 나아가는 게 자랑스럽기도 또 개인적으로 더 즐길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지하로 내려가니 본격적인 팬시 용품과 일본어로 된 책들을 팔고 있었다. 만년필 코너도 꽤 컸는데 최근에 생긴 새로운 관심품인 만년필을 만져보고 써볼 수도 있어 좋았다.
미리 예약해 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동생 집으로 향했다. 푸전 레스토랑이었는데 역시 뉴욕에서 오래 산 동생의 고급 입맛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약간 쌀쌀했던 하루를 뜨끈한 음식으로 마칠 수 있어 그 또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