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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초이 Feb 01. 2023

인생 살기

혼자 살 수 있을까


 집에 혼자 남았다. 아내와 딸은 아내의 고모님 두 분, 사촌 여동생과 3박 4일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아들은 제대 후 유럽여행 중이다. 아내와 딸이 없는 동안 아파트에서 나 홀로 지낸다. 이전에도 혼자 생활했던 적이 있지만 이번엔 다르게 느껴졌다. 과연 혼자 살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었다.


 지난 1.30일 아내와 딸이 떠난 첫날에 텅 빈 아파트에서 난 집 정리에 들어갔다. 리모델링 공사로 깨끗해진 실내지만 버려야 할 물건들은 존재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주방용품, 욕실용품을 버리지 못했다. 이유는 어쩌다보니다. 대형마트를 이용하다 보면 묶음판매 용품들을 사게 되는데 그렇게 구입한 소스류, 보디용품이 싱크대 선반과 욕실 선반을 차지했다. 버려져야 할 물건들은 빠르게 버려져야 하리라.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보니 추위 때문에 빨지 못한 옷들이 그대로다.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대에 옷들을 널었다. 전업주부의 일상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치우고 닦고 먹고 설거지를 하다 보면,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 하게 된다. 저녁은 천천히 먹자고 막걸리도 마시자. 혼자니까 좀 늦게 자도 되지. 밀려드는 생각들을 정리한다.


 혼자된 첫날 저녁은 닭 한 마리를 백숙으로 먹었다. 막걸리도 한 병 마셨다. 배부른 몸을 거실에 누이고 티브를 켰다. 이리저리 리모컨을 누르다 요즘 주말 인기 드라마 '대행사'재방송 채널에서 멈췄다. 드라마가 끝나고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누웠는데 뭔가 찜찜하다. 다시 방에서 나와 출입문의 보조 걸쇠를 걸었다. 문은 잘 잠겼고 누군가 들어올 수도 없는데도 이중 잠금장치를 해버린다. 보조 걸쇠를  걸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보다 마음 편히 하자 했다.


 퇴직하면 혼자 고향 내려가서 살 거라고, 나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호언장담했었는데 보조 걸쇠라니. 가만히 방안에 누워있으니 작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위층에서 무엇인가 물건을 떨어트렸나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뭐지 무너질 것 같은 소리는. 아내라도 있었다면 무시했을 생활 소음들이 더 크게 들린다.


 난 혼자 살면 안 되나 보다. 대범해야 하는데 오히려 소심해지는 기분이다. 이러면서 혼자 살 수 있다고 큰소리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아내가 있었을 때와 같은 일상을 시작한다. 명상을 하려고 반가부좌로 앉았다. 요즘은 명상시간이 늘었다. 이완 명상을 시작한 이래 30분을 넘기기 힘들었는데 일 년 동안 하다 보니 1시간을 넘기게 되었다. 몸이 현저하게 변화된 느낌은 없지만 피곤하거나 머리가 지끈거릴 때 이완 명상을 하고 나면 편안해지는 것 같다.


최근 나만의 핸드드립 레시피를 발견했다. 원두 20g에 커피 300g을 추출한다. 드리퍼는 하리오 V60도자기를, 드립포트는 에페이오스 허밍 버드 핸드드립 커피 전기포트 EPCP001을 사용한다. 물 온도는 92도에 맞추고 50g의 물을 붓고 30초간 뜸 들인다. 이어서 50g씩 다섯 번을 푸어 오버 방식으로 추출한다. 총시간은 3분을 넘지 않도록 애쓴다.


 커피를 내려서 책상에 앉는다. 책은 노원평생학습관 문헌정보실에서 대출한다. 간혹 시내 중심가를 나갈 때가 있는데 그때는 대형서점을 둘러보다가 고른다. 작가 김훈의 글 스타일을 좋아한다. 이번 대출한 작가는 최인호의 산문과 단편집이다. 책 대출은 한 작가의 작품을 대출한도인 7권까지 선택한다. 다음엔 최인호 작가의 장편소설 위주로 골라야겠다.


 책을 읽다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주방 앞에 섰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있는 반찬으로만 먹고 밥만 하면 된다. 쌀통에서 머그잔으로 한 컵 분량을 꺼내 씻는다. 둥근 스테인리스 볼에 쌀을 담고 물을 받자마자 버린다. 첫물은 재빨리 버리라는 팁을 오래전에 들었다. 가벼운 먼지나 이물질이 묻어있는 쌀이 물을 흡수해 버리기 전에 헹구어내는 것이다.


 압력솥에 밥을 안치고 식탁을 닦고 수저를 놓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먹을 만큼만 덜어 접시에 담는다. 격식은 생략이다. 혼자 먹는데 아무렴 어떠냐 주의다. 접시나 대접을 사용하면 설거지가 문제다. 적게 사용해야 씻는 것도 줄어든다. 치우기가 싫다면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 주의다.


 청소기를 돌려도 돌아서면 또 청소기를 부른다. 치웠는데도 몇 번 움직였더니 또 치울게 나타난다. 혼잔데도 요상한 일이다. 다른 가족들이 있다면 잠시도 앉아 쉴 틈이 없을 것 같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들 삼촌들과 함께 살았던 내 어린 시절의 어머님께선 어떠셨을까 생각하니 감이 안 온다. 뭐든 자신이 직접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뼈저리게 느낀다는 의미는 이런 걸 두고 한 말인가 보다.


 수요일은 출근했다 돌아와 재활용 쓰레기를 버렸다. 베란다에 종이박스를 보며 혼잣말을 해본다. "박스테이프 좀 떼내고 두지 그냥 던져놨다냐" 500ml 생수병을 버리며 "일주일 동안 이렇게 많이 마셨다냐" 볼멘소리 한다고 도울 사람이 나타난다냐. 재활용도 다 버리고 캔 하나 따자. 에고 또 버리러 나가야 하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게 사는 것이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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