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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헌 May 04. 2024

시간여행을 시켜 준 막내딸

아빠도 와서 만져봐!

"아빠도 와서 만져 봐!"

막내딸이 나에게 던진 말이다.


우리 부부는

만삭이 된 막내딸 집에 방문을 했다.

둘째 딸도 자기 딸 유니와 함께 와있었다.


가 또 움직인다. 와서 만져봐!"

막내딸은 소파에 기대어

남산만 한 자기 배를 만지며 말했다.


집사람과 언니인 둘째 딸이 달려가

배를 만져보며 “와! 그러네! 움직인다!”

라며 말했다.


나는 궁금하긴 했지만

그냥 자리에 앉아 바라보가만 하였다.

아빠라도 신랑이 있는 다 큰 딸레미

배를 만져 보기는 좀 그렇다는 생각으로


“아빠도 와서 만져봐~!”

막내딸이 아빠를 불렀다.

나는 호출당하듯 다가가 배를 만져 보았다.

진짜로 아이의 태동이 확실히 느껴져 왔다.



그 순간 나의 마음속에 30년 전의

일이 오버랩이 되어 떠오르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아야! 아야! 예가 발로 차요!

당신도 와서 한번 만져 봐요!"

30년도 더 된 그때 집사람의

내게 한 말이다.


그때 나는 집사람에게

다가가 배를 만져 보았다

정말 배안에서 아기가 발로 힘 있게 

툭툭 차는 듯한 느낌이 내 손에까지

생생히 전달이 되었다.


그때 배속에서 발로 차던 아기가

지금 만삭이 돼서 자기 배속에 아기가

움직인 다고 하는 막내딸이다.   


그때 태어난  막내딸은

아빠인 나의 붕어빵으로 태어났다.


첫째 딸은 엄마를 닮고

둘째 딸은 반반을 닮더니

막내딸은 아빠를 닮은 것이다.


그때 우리 집 막내딸이 태어 나자

“아이고 저 집에 또 딸이다. 어쩌지?”

우리 주변 사람들이 걱정해 줄 정도였다.


30년 전 그때까지 만해도  

남아 선호사상이 남아 있을 때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마음에 섭섭함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자녀는 인생에 선물이다.

선물은 주는 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는 것이다."라는

마음을 나는 늘 가지고 살아간다.


사실 나는 딸들이 더 좋다!

딸들 커가는 행복을 맛보며 살았고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막내딸부부는 산부인에서

태중에 있는 아이는 딸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남편의 입이 귀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막내딸은

고등학교과정을 홈스쿨을 하였다.

많은 날들을 아빠와 함께 공부하고 놀며 자랐다.

자금도 대화를 친구처럼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


지금 막내는 취업을 하고 짝지를 만나

결혼까지 해서 인근 도시에 독립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막내딸은 간혹 삶이 답답하거나

고민이 있으면 아빠 사는 곳으로

찾아와 데이트처럼 만나고 간다.


함께 밥도 먹고

주변에 예쁜 카페에도 가서

함께 수다 같은 대화를 하고 가면서

마음의 짐을 덜어 내는 것 같다.


얼마 전 둘째 딸의 아이인 유니가

이모의 불룩한 배에 자기 동생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지?


할아버지인 내 앞에서

“유니는 엄마 배속에서 나왔다”는 말을

손짓까지 해 가면서 열심히 설명하였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유니야! 유니는 어디서 왔다고?"

유니는 동그란 눈으로 부그러운 듯

나를 처자 보더니 “몰라”라고 한다.


생명의 탄생은

내 마음속에 항상 느끼고 있는

3대 경이로움 중에 하나이다.


광대한 우주와 정교한 질서

진선미를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와 함께 생명의 탄생은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 경이와 신비를

느끼게 하는 매력적인 관심사이다.


생명탄생, 광대한 우주의 질서,

생각하고 고뇌하는 인간은

인간 이성과 과학지식 저 넘어

“over there” 세계를 의식하게 하고

나에게 겸허함과 경외감까지 주고 있다


우리나라 생물학계에 유명교수가 있다.

생물학은 철저하게 진화론의 기반 위에

있는 학문이다.


이 분은 강의 중에

“생명에 대해서는 우연한 발생보다

어디선가 3D 프린트 같이 찍어 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라는 말을 하였다.


진회론 학자임에도

생명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창조성을 느끼고 있다는 표현이다.


오늘날은 인간보다 뛰어난

AI인간 출현을 말하는 시대지만

생명탄생은 여전히 “over there”

미지의 신비한 세계로 남게 된다.   


나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만약 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이 사람의 배속에서 나왔다"

하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예전에 어른들은 자녀들이

“엄마 나는 어디서 왔어?” 물으면

“응! 너는 다리 밑에서 주서 왔지!”라는

해학적인 대답을 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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