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데타의 본질, 1시간 만에 이해하기 #9
이 브런치북을 발행하기 앞서, 2021년 미얀마 쿠데타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께 애도를 표합니다.
이 글은, 미얀마 사태를 보다 본질적으로, 그러나 어렵지 않게 보자는 취지로 만든 콘텐츠입니다.
미얀마 국민의 '진정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우리가 굳이 미얀마의 역사를 알아야할까요?��
솔직히 말해서, 미얀마의 역사를 모든 국민이 반드시 자세히 알아야 하는 건 아니죠. 다만 이들의 역사를 알면 현재 매스미디어에서 보도되는 외신의 이면이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자가 약자를 어떻게 지배하는 지에 대한, 전 인류적 공통적인 특징이 보여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통제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기에, 알아두면 쓸만하지 않을까요?
특히나 한국과 미얀마는 식민지 역사에서 가지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어요.
전편에서도 이야기했던 '이간 정책'을 받았다는 점인데요.
� 1920년대에 일제는 조선 지식인 인플루언서를 회유해, 편을 갈랐죠. 일제에 충성하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을 줬고, 식민 통치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자는 철저히 돈줄을 끊었어요. 그렇게 소수의 일제 권력은 다수의 조선 국민을 쪼개서, 자기들에게 올 화살의 총알받이로 친일파를 세웠던 거에요. 그 권력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못했죠.
역사는 늘 반복됩니다.
'편가르기'는 소수 권력이 자신에게 올 화살을 약자들에게 돌리는 전통적 전술이에요. 왜 황색언론에서 흉악범 기사를 매일같이 내는 지, 수많은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지... 그로인한 반사 이익은 어떤 광고주가 먹을 것인지... 한번 곱씹어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더라고요.
[Q. 갈등은 누가 조장하는 것일까?]
[이로인한 반사 이익은 누가 얻을 건인가?]
이 이간질의 역사를 미얀마도 비슷하게 겪었어요.
특히나, 미얀마의 국부로 추앙받는 아웅산도 민족간 이간질을 통해 키워졌던 인물이에요.
현재 구금되어있는 아웅산 수치의 아버지 말이죠.
미얀마의 슬픈 역사는
시간을 타고 나비효과처럼 태풍을 일으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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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3월, 영국이 속해있던 연합국은 승기를 잡아요. 이제 다시 독일과 싸우느라 미얀마를 일본에 빼앗겼던 대영제국이 돌아올 준비를 해요. 다시 아웅산과 한 편을 먹은 일본제국과의 대결전을 앞두고 있었죠.
이것이 바로 미얀마와 인도의 국경지역에서 일어난, 임팔전투였어요.
당시 일본은 이미 잠자는 미국의 진주만을 건드린 실책으로, 혼쭐이 나고 있었어요.
거의 전의가 꺾인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하지만 일본제국이 누군가요?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인 걸요?
국가의 생산력이 곧 전투력인 현대 전쟁에서, '정신력'을 강조하며 자살 폭격부대를 운영하던... 대담하면서도, 참 무모한 나라였어요.
전쟁의 광기는 역사 속에서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도덕을 상실해요.
춘추전국시대에는 엄마가 아이를 잡아먹고, 눈앞에서 피가 터져도 무뎌지는 상황이 돼요. 평화에 익숙한 우리는 상상이 안되겠지만 말이죠. 자국 군대의 사기를 드높이겠다고, 식민지 조선의 처녀들을 자군 성노예로 끌고 갔던 적도 있죠. 실제로 이번에 소개할 임팔전투에 뒤이은 전투에서, 우리 위안부가 연합군에 의해 구조되기도 해요.
일본은 임팔전투 패배로, 인해 제2차세계대전과 중일 전쟁에서 더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돼요. 전쟁 물자를 공급하기 위한 요충지를 빼앗겼으니, 이는 일본 제국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 없었죠. 그리고, 일본군에 의해 키워져 전투에 참여하던 아웅산 장군의 심경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미얀마를 형식적 독립만 시켜줬던 일본...
일본 제국주의는 영국과 다를 거라 믿었던 아웅산이었지만, 역시 그 본질은 착취였어요. 그 본질을 뒤늦게 맛본 아웅산은 결국 일본을 배신하고, 영국과 다시 손을 잡아요. 대신, 독립을 약속받죠. 나라도 살아야하는 어지러운 시대엔, 도덕적 논리가 통하지 않기 마련이에요. 물론 훗날 영국은 약속을 지키지도 않고요.
영국은 승기를 확실히 잡기 위해서 일본이 필사적으로 지키던 양곤을 빼앗아야 했어요.
여기서 영국은 신사의 나라답게(?) 또다시 민족간 이간책을 씁니다.
카렌족, 카친족 등 미얀마의 소수민족을 재등용해요. 다급한 김에 버마족으로부터 자치권까지 약속하죠. 이중 계약을 한 거에요. 심지어 독립까지 시켜주겠다 해요. 공수표도 이런 공수표가 있을까요? 다들 결과적으로 아시다시피, 영국의 미얀마에 대한 모든 약속은 '뻥'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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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지 않을 약속을 남발하는 건 대영제국 역사의 상징이에요. 아랍을 비롯해, 현재 무장 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아시아 대부분 전쟁의 씨앗을 영국이 심었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대표적이지만, 미얀마에서도 이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영국 - 이스라엘 간 협정]
[영국 - 팔레스타인 간 협정]
70년간 미얀마의 내전의 씨앗은
일본과 영국 제국주의가 심은 게 틀림없어요.
추축국은 악하고, 연합국은 선하다?
과연 사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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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현대 역사는 필연적으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어요.
아웅산의 버마족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일본제국과 손 잡았고,
소수민족은 버마족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영국에게 의존했죠.
이처럼, 제2차 세계대전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서, 아직까지도 치유되지 못한 역사가 바로 미얀마에요.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대영제국과 대일본제국의 충돌 이면에는, 미얀마의 종족간 혐오의 역사가 있었던 거죠.
전쟁은 언제나 광기를 불러일으킨다 말했죠?
버마족은 영국에 협조하는 카렌족과 소수민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어요. 그러면 소수민족은 이를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을 리 없겠죠? 눈앞에서 가족과 친지들의 죽음을 목도한 소수민족은, 버마족 마을에 목숨건 게릴라전을 펼치기 시작해요. 미얀마라는 한지붕에서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고, 그 역사는 지금도 청산되지 못했어요.
그 제2차세계대전 혼란 속에서, 일본은 미얀마를 정복한 지 3년 만에 물러납니다. 미얀마로 다시 돌아온 영국은 재식민화를 꿈꿨지만, 본국 국민으로부터 전후 복구사업의 명령을 받죠. 1945년 영국 총선거에서 처칠 수상은 물러나게 됩니다.
그렇게 영국은 모든 식민지에서 물러나고,
200년간 누렸던 세계 패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요.
거대했던 대영제국이 물러간 미얀마 땅엔, 영국을 위해 싸우던 소수민족이 덩그러니 남겨졌어요.
그런데, 그 반대편에는 일본이 훈련시킨 아웅산의 버마족 군대가 또한 덩그러니 남았죠.
한지붕 두가족은 출발 선상부터 위태로웠고,
결과적으로 이는 세계 최장기 내전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다음화 계속)
위 포스팅은 [1시간 만에 이해하는, 미얀마 쿠데타의 본질] (가제) 브런치북으로 발행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