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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다리 Jun 07. 2019

눈 맛이 시원한 풍경, 원적산 백패킹



한 팀에서 같이 일했던 인연이 산에서 다시 이어졌다. 


같은 팀에서 몇 년 동안 동고동락을 하다가 서로 다른 팀으로 떨어지게 되고, 이제는 다른 회사를 다니다 보니 얼굴 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술자리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나 백패킹이라는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술자리에서 같이 산행을 하자는 약속을 하고, 지키지 쉽지 않은 술 자리에서의 약속을 몇 달 후 실천하게 되었다.


그 친구의 2세가 동행을 했다. 같이 일할 때 결혼식에 참석했던 기억이 아직 선한데 아들이 벌써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하니 그 간 서로 잊고 지낸 세월이 7~8년을 훌쩍 넘어섰던 것이다.


영원사 주차장에서 만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영원사에서 원적산 능선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지만 제법 가파른 편이다.




아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라 평소보다 늘어난 짐을 때려 넣은 배낭의 무게, 간만의 산행 그리고 아직 오르막길에 적응이 안된 몸 상태에 영원사를 출발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배낭을 벗어던지고 등로 옆에 드러눞고 말았다.  


오르막 산행에 점차 몸이 적응을 하고, 짐을 조금 나눈 이후부터는 본래의 컨디션을 되찾았나 보다.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는 능선을 무리 없이 지나왔다. 그런데 산타는 실력이 이 친구보다 그 아들이 더 뛰어났다.  조그만 배낭에 든 짐의 무게가 몇 키로에 불과하지만 작은 두 다리로 오르막길도 가볍게 치고 올라가는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오르락 내리락이 계속되는 능선 길은 참나무 숲이 무성하게 자라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햇볕을 피할 수 있는 대신 숲에 가려 주변 경치를 볼 기회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 길은 계속 걷다 보면 답답하고 지루한 느낌이 날 수밖에 없는데, 원적봉을 향하는 급경사를 올라서자 극적인 반전이 펼쳐졌다. 






사방으로 확 트인 풍경이 답답했던 마음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 때마침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그 시원함은 두 배가 된다. 그동안 걸어왔던 능선길이 꽤나 먼 거리처럼 보이고 그 능선 너머 멀리 양평 추읍산이 미세먼지 사이로 조망되었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천덕봉까지의 민둥이 능선길, 말발굽 모양으로 쭉 뻗어나가는 정개산 방향의 능선도 꽤나 장쾌해 보였다. 







이제 꼬불꼬불 궤적이 또렷한 저 민둥 능선을 걸어갈 차례. 다리에 조금씩 피곤이 쌓이는 듯 하지만 조금 완만해진 능선에, 높은 땅에서 즐기는 경치 구경에 힘든 줄 모르고 계속 발걸음을 옮긴다. 


능선길 헬기장, 너른 공터마다 텐트가 알록달록 빛깔을 자랑하며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옆으로 모여 앉은 백패커들의 수다 소리가 확 트인 공간 속으로 정겹게 흩어졌다. 텐트 군집을 여러 번 지나치고 난 후 원적산 최고 봉우리인 천덕봉에 도착했다. 







수묵화처럼 겹겹이 펼쳐진 산그리메. 

높이와 위치를 조금씩 바꿔가며 봉긋봉긋 솟은 봉우리들. 

평지에 빼곡히 들어앉은 사람들의 생활터전.

그 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평소 도시숲에 가려 먼 곳을 볼 기회가 없는 우리에게 주는 통 큰 선물이었다. 

 





천덕봉 헬기장에도 벌써 텐트가 제법 들어차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남을 힘을 쏟아내며 내리막길을 내려가 천덕봉이 웅장하게 올려다 보이고, 산허리 사이로 이천 시내가 평온하게 내려다 보이는 마지막 헬기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중년 부부가 멋진 티피 텐트를 치고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고 계셨다. 우리가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웠지만 이 곳 외엔 더 이상 텐트를 칠 곳이 없어 보였다. 벌써 저녁이 되어 가는 시각. 우리는 방해가 덜 되는 곳으로 텐트를 치고, 서쪽으로 펼쳐지는 빛의 향연을 한 참 동안 바라보았다.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떠는 사이 짙은 어둠이 몰려들었다. 산 아래 평범한 불빛 하나 둘 산 위로 비춰주면서 반짝이는 모습은 일몰의 여운을 잊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남쪽으로 이천시의 화려한 야경과 서쪽으로 골프장의 강한 서치라이트가 각자 나름의 멋을 부리고 있었고, 산상에서는 텐트 안을 밝힌 불빛이 얇은 텐트 스킨을 뚫고 은은하게 새어 나왔다. 








5월 말 해는 꽤나 부지런했다. 텐트 문을 열고 나오니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벌써 원적봉 주능선 위로 해는 솟아오르고 있었고, 어제 저녁과 동일한 풍경이었지만 좀 더 밝은 톤으로, 약간의 뿌연 느낌으로 물감을 덧바른 듯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불발탄 위험판이 있는 철조망 근처에 의자를 놓고 눈 앞에 펼쳐진 너른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리 짙지 않은 안개가 걸친 이천 시내를 그윽하게 바라보면서 아직은 따스한 느낌이 나는 아침 햇살과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듯 한 산속 고요함을 한 동안 즐겼다.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하룻밤 편안하게 지냈던 그곳을 떠나 어제 내려왔던 천덕봉 능선을 다시 올랐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민둥 능선을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귀가를 위해 다시 지나가야 하는 그 길. 다리에는 긴장감이 계속되고 오르막길에서 거친 호흡과 땀을 쏟아낼 게 분명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할 길이 아니라 행복을 향해 가는 길인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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