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근처 대학 간호학과 4학년 대상으로 하는 취업설명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역 의료기관의 각 부서장들이 모여 자신이 몸 담은 병원에 대해 소개하고 지금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강의실 안에 들어서니 안에 앉아 있는 가장 예쁜 학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느덧 병원 일을 한 지도 24년이 지났지만,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예전 풋풋했던 시절의 내가 그 안에서 또렷하게 보인다.
신규 시절 처음 접하는 업무는 무척이나 낯설어서 서툰 행동으로 인한 긴장감으로 두려움이 앞섰고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은남아있던당당함과 자신감마저 저만큼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그래서인지 보람을 느끼기도 전 내가 하는 일이 무언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갈수록 늪에 빠져들던시절이었다. 처음의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막중한 책임감은 낯선 사회에 내디딘 첫발의 혹독함이었다.
차근차근 다지고 해내기까지 겪어간 일들을 돌이켜 보면 눈물과 웃음과 뿌듯함과 힘겨움이 두루 공존하여 간 나날이라 할 수 있다. 마음으로 ‘할 수 있다’고 외친 만큼의 힘겨움은 시시때때로 문을 열고 다가왔다. 어느 날은 휩쓸리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자유롭게 유영하기도 한다. 휩쓸림과 떠 있음의 수많은 반복이 이룬 나의 성장은 이 자리에서 마음을 다한 지켜냄이다.
실수와 실패를 딛고, 그 사이 유독 한계가 찾아와 자신 없던 시절까지 버티어묵묵히 걸어간 만큼 하나씩 이루어간 것들로 어느새 성장해 가는 내가 되어간다. 때론 제자리걸음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더디기도 하여 무겁고 힘들더라도 어느 순간가파른 곳을 단숨에 오를 만큼 빠르고 강한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자신감과 당당함은오르내림의 연속에서 스스로 찾은 감동과 뿌듯함,해내는 과정에서의 경험 안에서 몸소 쌓여질 때 축적된다. 멈추지 않을이루어감은 쉬어가더라도 포기하지 않은작은 시도를 통한 지속적인성장을 만든다.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다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잠재의식의 저편 미지의 영역까지 헤엄쳐 결국 해내어 갈 나를 만난다. 그런 나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할 수 있음’을 수없이 되뇌는 스스로의 다짐과 함께 수도 없이 무너질 마음에서 ‘그럴 수 있음’을 알아가는 헤아림이다.
‘할 수 있음’을 외치게 되면 내가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깊숙이 물어갈 내가 있다. 그것을 답해갈 사람 역시 나이기에 입술 꽉 깨물고 나가게 할 버팀목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잘 기억을 해야겠다.
학생들과 길게 눈 맞추어 본다. 내 시절이 가득 떠올려질 만큼 가장 빛날 청춘을 가까이에서 응원하고 있는 내 마음을 전부 내어 보일 수는 없다. 허나 한 가지 내가 남기고픈 사실은 시절마다 힘껏 안아 보듬어 가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그 자체로 너무 좋다는 것이다. 예전의 나에게 내 일을 당당하게 알릴 수 있다는 자체가 큰 경험이다.
한창인 시절의 풋풋함은 있는 그대로를 빛나게 하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참아낸 숨들은 결코 빛날 일만은 아니다. 무뎌질 정도의 감정을 잡아가 넘어서도록 한 발씩 이룬 고비들은 결국 나의 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서 소명이 된다. 살기 위해서도 일을 하고 있고, 일을 하며 살기도 한다. 일을 하면서 즐거운 것들이 작은 기쁨이 되고 그것이 의미를 이루어 작은 성취가 역량으로 발전되어 가는 모습을 발견할 때 스스로 뿌듯하다. 예전의 소심함은 당참으로 바뀌고 무엇이든 해보고 배우려는 마음의 문은 커져만 간다. 그것이 나를 이룰 그릇의 크기이다.
좋은 것 안에는 좋지 않은 것들과 싸워낼 힘이 있어야 한다. 으르렁거리며 눈을 부라리고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이겨낼 힘의 원천을 내면에 가득 담는 것이다. 내가 행할 가치에 중점을 두고 주변의 시선에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가장 감사한 날들을 떠올려 본다.
나를 만나간 사람들이 가져간 것들은 회복과 안위에서의 작은 손길에 지나지 않겠지만 건네어가는 순간마다 뿌듯함은 오히려 남다르게 다가온다. 덕분에 내가 더 크게 얻는다. 무엇보다 나는 환자와 만나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고 내 손길을 전할 수 있어 그것이 마냥 좋을 뿐이다. 나는 그런 나를 믿고 사랑한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